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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실 책상에 앉자마자 솥뚜껑 같은 손이 날아오더라고. 퍽하고 치니까 의자에서 그대로 나동그라졌어요. 그 유명한 고문경찰 이근안이었죠.
‘너 같은 건 죽여서 3ㆍ8선 근처에 갖다 버려도 아무도 몰라’라면서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감각이 마비돼 밥을 먹지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밥을 먹이려고 했던 게 기억나요. ‘네가 밥을 먹어야 우리도 때릴 맛이 나지’ 그러면서.” 조사 중 혼절해 경찰병원으로 실려간 그의 몸무게는 38㎏이었다. 남영동에 끌려온 지 3주 만에 9㎏이 빠진 거였다.
- 1979년, 박미옥
처음에는 기자라며 정중히 대했다.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자 ‘사람 죽어 나간 방으로 가자’고 했다. “거기에 ‘칠성판’이라는 게 있었어요. 사지를 버클로 묶어서 결박하는 고문대였죠.
몽둥이를 든 남자 7~8명이 나를 거기에 묶고 육중한 남자가 올라탔어요. 그게 이근안이었죠.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붓기 시작하는 거예요. 숨을 쉴 수가 없었죠. 이런 고통이면 ‘안 한 것도 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신체적 고통보다 그를 오래 괴롭힌 것은 성적 모멸감이었다. “남자와 자봤느냐, 담배를 피우느냐, 의도가 빤히 보이는 시답잖은 질문은 둘째치고… 숨겨주었던 김홍 선배와 저의 사적인 관계를 의심하고 도덕적인 훼손을 가하려고도 했죠.”
- 1980년, 유숙열
노동운동을 하다 붙잡혀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딱 이틀째, 사나웠던 고문과 구타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그 즈음 또래 대학생이 고문 도중 숨졌다는 소식을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참담했어요. 철창 안에서 그를 애도하는 노래를 불렀죠.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현장에서 데모할 때 함께 부르던 민중가요였죠.”
“욕조에 처박힐 땐, 이성이 마비되고 자기확신이 흐려지더군요. 수사관들이 잠시 나가고 변기에 앉아 있는데 욕조에 가득한 물 위에 제 머리카락이 둥둥 떠 있더라고요.”
- 1987년, 황정옥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2006091312316520
‘한 형사가 나의 두 팔을 뒤로 돌려 수박을 채웠다. 그러자 다른 형사가 무릎 사이에 봉을 끼웠다. 그들은 서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논도 하지 않으면서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같은 형태의 봉으로 넙적다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몹시 아팠다.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하나의 벽을 넘어서> 37쪽
‘이토록 철저하게 모욕당하다니.. 차라리 그가 날 죽여 주는 것이 훨씬 깨끗하고 고마울 것 같았다. (중략)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짓거리를 했다. 나는 이미 정신을 갖고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 <하나의 벽을 넘어서> 41쪽
- 1986년, 권인숙(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여성 수감자들도 고문을 했으면 더 했지 봐주지도 않았음
“조사실 책상에 앉자마자 솥뚜껑 같은 손이 날아오더라고. 퍽하고 치니까 의자에서 그대로 나동그라졌어요. 그 유명한 고문경찰 이근안이었죠.
‘너 같은 건 죽여서 3ㆍ8선 근처에 갖다 버려도 아무도 몰라’라면서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감각이 마비돼 밥을 먹지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밥을 먹이려고 했던 게 기억나요. ‘네가 밥을 먹어야 우리도 때릴 맛이 나지’ 그러면서.” 조사 중 혼절해 경찰병원으로 실려간 그의 몸무게는 38㎏이었다. 남영동에 끌려온 지 3주 만에 9㎏이 빠진 거였다.
- 1979년, 박미옥
처음에는 기자라며 정중히 대했다.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자 ‘사람 죽어 나간 방으로 가자’고 했다. “거기에 ‘칠성판’이라는 게 있었어요. 사지를 버클로 묶어서 결박하는 고문대였죠.
몽둥이를 든 남자 7~8명이 나를 거기에 묶고 육중한 남자가 올라탔어요. 그게 이근안이었죠.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붓기 시작하는 거예요. 숨을 쉴 수가 없었죠. 이런 고통이면 ‘안 한 것도 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신체적 고통보다 그를 오래 괴롭힌 것은 성적 모멸감이었다. “남자와 자봤느냐, 담배를 피우느냐, 의도가 빤히 보이는 시답잖은 질문은 둘째치고… 숨겨주었던 김홍 선배와 저의 사적인 관계를 의심하고 도덕적인 훼손을 가하려고도 했죠.”
- 1980년, 유숙열
노동운동을 하다 붙잡혀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딱 이틀째, 사나웠던 고문과 구타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그 즈음 또래 대학생이 고문 도중 숨졌다는 소식을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참담했어요. 철창 안에서 그를 애도하는 노래를 불렀죠.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현장에서 데모할 때 함께 부르던 민중가요였죠.”
“욕조에 처박힐 땐, 이성이 마비되고 자기확신이 흐려지더군요. 수사관들이 잠시 나가고 변기에 앉아 있는데 욕조에 가득한 물 위에 제 머리카락이 둥둥 떠 있더라고요.”
- 1987년, 황정옥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2006091312316520
‘한 형사가 나의 두 팔을 뒤로 돌려 수박을 채웠다. 그러자 다른 형사가 무릎 사이에 봉을 끼웠다. 그들은 서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논도 하지 않으면서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그리고 같은 형태의 봉으로 넙적다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몹시 아팠다.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하나의 벽을 넘어서> 37쪽
‘이토록 철저하게 모욕당하다니.. 차라리 그가 날 죽여 주는 것이 훨씬 깨끗하고 고마울 것 같았다. (중략)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짓거리를 했다. 나는 이미 정신을 갖고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 <하나의 벽을 넘어서> 41쪽
- 1986년, 권인숙(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여성 수감자들도 고문을 했으면 더 했지 봐주지도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