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theqoo.net/JHoeA
이곳의 모든 야자수와 식물은 제주도에서 옮겨 왔다. 공사 기간만 4년을 넘겼다. 제주에서 나무를 계약하고 배로 이동했다.
처음 제주 사람들의 경계심(?)과 파도와 바람 등 기상은 나무를 싣은 화물선의 발을 묶고 일정에 차질을 주었다. 그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이었다.
박 사장은 “하지만 제주 사람들도 사업의 진실을 알고 난 후 지인을 자처하며 도움을 줬다”고 회상했다.
1차례 사업 실패로 방황하던 박 사장은 우연히 지인에게 야자수 몇 그루를 선물 받아 키우던 중 동네 아이들이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해 서해에서도 보온하면 야자수가 잘 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4년을 준비했다. 15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도 투입했다.
기사전문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1078609
씨랜드 참사 당시 운영자로 겨우 징역 5년을 살고 나온 후
야자수마을 카페라는 이름의 식물원 카페를 짓고 참사 자리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사장 박재천씨 인터뷰
이곳의 모든 야자수와 식물은 제주도에서 옮겨 왔다. 공사 기간만 4년을 넘겼다. 제주에서 나무를 계약하고 배로 이동했다.
처음 제주 사람들의 경계심(?)과 파도와 바람 등 기상은 나무를 싣은 화물선의 발을 묶고 일정에 차질을 주었다. 그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이었다.
박 사장은 “하지만 제주 사람들도 사업의 진실을 알고 난 후 지인을 자처하며 도움을 줬다”고 회상했다.
1차례 사업 실패로 방황하던 박 사장은 우연히 지인에게 야자수 몇 그루를 선물 받아 키우던 중 동네 아이들이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해 서해에서도 보온하면 야자수가 잘 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4년을 준비했다. 15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도 투입했다.
기사전문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1078609
씨랜드 참사 당시 운영자로 겨우 징역 5년을 살고 나온 후
야자수마을 카페라는 이름의 식물원 카페를 짓고 참사 자리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사장 박재천씨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