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는 김완선의 데뷔

1. 김완선은 이모이자 매니저, 프로듀서인 한백희에 의해 한국 최초로 연습생 시스템으로 데뷔한 아이돌임

중학교 때 이모한테 캐스팅 되어서 3년간 이모네 집에서 지내며 하드 트레이닝을 받음.

당시 이름 날리던 젊은 댄서들한테 한백희 소유의 연습실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김완선을 트레이닝 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검. 그리고 김완선은 매일 발레, 스트리트 댄스, 현대 무용, 작곡, 외국어 등을 혹독하게 트레이닝 받음. 연습 끝나면 힘들어서 기어서 방에 들어갔을 정도.
그리고

17살에 데뷔함. 만 16세.

2. 음악 스타일도 확실하게 잡음. 당시 전담 프로듀서, 작곡가들이

산울림 김창훈(사진 속 가운데 인물)

신중현

이장희

전인권 (보컬 트레이너였음)

손무현 (임재범과 같이 활동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락커들이 프로듀싱을 함 ㅇㅇ
그래서 록 성향의 음악을 했고 이들에 의해 획기적인 시도도 하게됨.

거의 한국 최초로 컴퓨터로 만들어진 음악을 선보였고, 랩도 함. 이모 한백희는 초창기에, 너무 잘하기만 하면 관심이 안 온다고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일부러 고음역대의 곡을 주어서 고의적으로 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함. 근데 이게 또 먹힘

3. 그냥 아무 옷이나 입힌게 아니라 한백희와 전문 디자이너가 직접 컨셉을 맞추고 제작한 옷을 입힘.




흔하지 않은 80년대 패션...

4. 뮤직 비디오에도 공을 들였음. 이젠 잊기로 해요 뮤비는 현재에도 명작으로 통한다고 함

5.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건데... 요즘 아이돌들이 당하는 식단관리와 사생활 관리를 처음으로 당한 아이돌임. 당시 한백희가 우유 한컵과 과자 몇 조각만 줬었고 , 늘 같이 다니면서 다른 연예인들도 못 만나게 했다고 함.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쌀을 아예 안 먹는다고 밝혔는데 지금 시점은 또 모르겠음
6. 오늘날 흔히들 하는 해외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가수. 연습생때 부터 외국어를 교육받았음. 근데 충격적이게도 노이즈 마케팅으로 해외진출을 했는데

거짓 은퇴 선언을 시킨 후 홍콩, 일본, 대만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킴. 이게 크게 성공해서 대만에선

국빈 대접 받음 ㅇㅇ

하지만 이모에게 제대로 돈도 받지 못하고 해서 결국 이모와 결별.

이모 한백희는 뛰어난 가창력과 독특한 미모로 이름을 날렸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가수였는데 자신의 꿈을 조카가 대신 이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인순이를 발굴하고 키운것도 이 사람.
김완선의 부모와 이야기해서 김완선의 돈으로 남편과 사업을 했는데 이게 망함... 돈도 날리고 결국 말년에 지병으로 돌아가심.

이모에 대해서는 현재에도 마음이 복잡하지만 그 획기적인 트레이닝과 홍보는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한다고 함.
이게 대단한 사건인 이유가

이수만이 미국 유학갔다가 기획사하려고 한국와서 공부할때 많이 만난 사람이 한백희임. 즉, 이수만은 이 기획과 데뷔 과정을 다 봄.

보면 알겠지만 김완선의 데뷔과정과 기획, 시스템, 홍보는 sm을 비롯한 현재 아이돌 육성, 활동 시스템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함.

이수만 등의 많은 후배들이 이 사람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오늘날 아이돌 시스템을 확립시키게 됨.

즉, 이 사람이 한국 가요계의 연습생 시스템과 육성, 마케팅, 해외 진출 시스템을 고안한 창시자. 지금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보면 연예 기획자들 중에 이 사람 영향 안받은 사람이 없고, 오늘날 연예 기획사계 거물이 된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 밑에서 일 시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