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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눈물주의) 배우 이준혁이 쓴 칼럼, '내가 게임을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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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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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부산에 있었다. 영화 〈야구소녀〉가 2019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덕이었다. 막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된 때였고, 부산의 하늘은 맑았다. 오후로 예정된 무대인사를 기다리며 대기 중일 때 전화가 왔다. 팝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얘기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 무렵 팝콘이는 계속 아팠다. 고칠 방법도 없었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 수 없다고 했다. 함께한 세월만 벌써 11년이었으니,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팝콘이는 유독 나를 잘 따랐다. 긴 촬영을 마치고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도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동생 같은 존재였다. 그런 팝콘이가 세상을 떠났다는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몇 시간 후에는 관객들과 만나야 했고, 영화제 기간 내내 부산에 머무르며 해야 할 일정이 있었다. 그 순간엔 눈물을 조금 흘린 것도 같은데, 몇 시간 후엔 무대에 올랐다. 웃는 얼굴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가 여느 예술가들과 다른 건,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선택해서 표출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탓에 다른 감정보다 내 감정을 표출하는 데 서툴렀다. 영화제가 끝나고, 팝콘이가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서울에 돌아왔다. 이미 팝콘이에 대한 물리적인 정리는 모두 끝나 있었다. 제대로 슬퍼하거나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스케줄이 밀려들었다. 그 시기 나는 MBC 드라마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과 tvN 〈비밀의 숲2〉 두 편의 작품을 동시에 촬영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볼 시간조차 모자랐다.




https://img.theqoo.net/EYaio




그 후로도 바쁜 나날이 한참이나 계속됐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휴식이 갑자기 찾아왔다. 역할에 몰입할 필요가 없는, 오랜만에 갖는 여유였다. 동시에 내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추모를 하지도 못한 채 팝콘이를 떠나보냈지만, 무의식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팝콘이를 잃어버린 슬픔이 점차 자란 건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텅 빈 듯 허전한 마음이었다. 강형욱 훈련사가 출연해 개와 교감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11년 동안 나는 팝콘이에게 좋은 가족이었을까? 팝콘이는 분명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었고 우리는 너무 행복하게 잘 살았지만, 일 때문에 계속 집을 비웠던 탓에 팝콘이에게 해준 것보단 못 해준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떠나보내는 과정만큼은 제대로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한 게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감정 표현에 능한 편이었다면 팝콘이를 향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는 식으로 마음을 정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팝콘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없어?’라고 물어보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팝콘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른 종류의 무언가였다. 이를테면, 어떤 플랫폼을 통해 나와 팝콘이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비슷한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것. 직접적인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적어도 그 플랫폼 안에서는 팝콘이가 살아생전의 모습처럼 마음껏 움직이고, 활달하고,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가장 적합한 플랫폼은 게임이었다. 영화나 동화도 생각했지만, 나와 팝콘이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독자나 관객에게 주입하는 듯해 마음이 가지 않았다. 게임은 달랐다. 다양한 엔딩을 만들 수 있고, 유저가 직접 능동적으로 팝콘이를 움직여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으니 공감을 형성하기 좋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게임을 만들어본 적이 없고, 프로그래밍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니 시작부터 높은 퀄리티의 게임이 나올 수는 없었다. 우선은 초등학생 교육용으로 나온 프로그램을 활용해 팝콘이 캐릭터가 달리는 게임을 직접 제작했다. 만들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퀄리티의 게임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 실력으로는 부족했기에, 개발자를 고용했다. 여기에 내가 쓴 스토리를 각색해줄 작가님을 모셨고 음악을 하는 친구에게 OST 작업을 맡겼다. 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함께 작업하는 이들이 늘고, 규모가 커지고 말았다. 어느 순간 이 게임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아트 디렉터가 된 나는 하루에 6~8시간씩 이 작업에 매달려 함께 작업했다. 온전한 휴식이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았다. 슬슬 특별출연 스케줄이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긴 촬영 분량 탓에 시간이 부족해졌다. 연기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어느새 게임 완성에 대한 압박감이 팝콘이에 대한 뭉클함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팝콘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의 눈으로 새로운 버그를 잡아내는 게 더 급했다. 점차 늘어나는 제작비와 출시일까지의 타임라인에 부담을 느끼는 날이 늘었다.


그런 과정 끝에 완성된 게임이 바로 ‘안녕! 팝콘’이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게임을 처음 실행했을 때 느낀 건 그리움이나 애틋함이 아니었다. 이상했다. 그건 뿌듯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팝콘이의 반려인이라기보단 창작자로서의 마음이 좀 더 컸던 걸까? 나는 게임을 준비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며 어쩌면 무의식 상태에서 저절로 나의 마음이 정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이 공식 출시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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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출시 당일부터 수많은 사람이 게임을 해보고 리뷰를 남겨주었다. 작품을 끝내고도 리뷰를 찾아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하루 종일 리뷰만 보고 있었다. 그제야 갑자기 목 아래가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몇 년 사이, 그렇게 펑펑 울어본 건 오랜만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만 뒀던 슬픔이 터졌다.

모든 종류의 개를 사랑하는 반려인도 아니었으면서 어떻게 이런 게임을 준비했던 걸까. 나에게 ‘안녕! 팝콘’을 만들고 공개하는 과정은 내 마음에서 팝콘이를 떠나보내는 긴 장례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장례의 긴 과정을 거치며 남은 사람들은 보내는 이를 향한 감정을 정리한다. 게임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장례 절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오열하기만 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식을 잘 치르고 난 다음에 모두가 감정을 잘 추스르는 것처럼. 지난한 장례 과정을 거친 뒤에는 슬픔보단 떠난 이가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는 법이다. 나에게는 ‘안녕! 팝콘’의 제작 자체가 그 모든 의식이었다.

‘안녕! 팝콘’은 나의 감정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기록까지 남겨주었다. 공개 직후 앱스토어 무료 인기 게임 순위 1위에 오른 것이다. 내가 보유할 줄 알았던 최고 점수가 다른 분들께 넘어간 게 살짝 아쉽긴 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팝콘이와 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팝콘이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그리고 나의 스마트폰 속에서 잊히지 않고 아주 긴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https://img.theqoo.net/kNdst


안녕팝콘의 엔딩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팝콘이한테 정말 좋은 주인이자 오빠였던듯...


출처: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59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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