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베트남-134] 지난 26일 국가정보원이 보유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의혹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가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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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미국 기밀문서 비밀 해제로 진상이 드러난 당시 상황은 끔찍합니다. 사건 당일 한국군은 이 마을을 지나가다 총격을 받았고 분개한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가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공개된 사진을 촬영한 미군 상병은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을 당하거나 대검에 찔려 죽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젊은 남자 주검은 없었고 노인이거나 여성, 아이들이었다'고 얘기합니다. 베트콩이 한국군을 상대로 사격 후 떠나간 자리에 남은 마을 사람들을 놓고 광기의 학살을 벌인 정황이 뚜렷합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하고 잘못을 물을 수 있으면 물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의 판결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전쟁 당시를 바라보는 베트남 정부의 입장은 한결같습니다. 공식석상에서 나오는 발언의 온도는 변화가 없습니다. 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이 발언이 베트남 경제 성장을 위한 정부 차원의 '인내'라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라고 과거 잘못된 학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싶겠습니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고 국제사회를 통해서 지지의 목소리도 이끌어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발목 잡혀 옛날얘기를 꺼내면 투자를 받거나 공장을 유치하는 데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쉬쉬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완전한 착각이란 걸 깨달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한 원로 언론인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한국 나이로 아흔이 넘은 그는 베트남전의 상흔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이였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이슈는 베트남전쟁 당시로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관계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트남은 일찍이 통일을 이뤄서 단합된 나라로 잘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남과 북으로 갈려 서로 싸우고 있지 않느냐. 참 안된 일이다. 아무쪼록 서로 노력해서 통일을 이루기를 바란다. 베트남도 응원하겠다."
혹시라도 이슈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만행으로 흘러가면 사과의 뜻을 전해야겠다는 제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위로하는 것은 그였고 저는 위로받는 입장이었습니다.
이후 베트남 정서에 능통한 전문가 여럿을 만나 전해들은 베트남 지식인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베트남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과 싸워서 이긴 승전국입니다. 한국군은 미군을 도와 파병한 용병 개념이었습니다. 따라서 베트남전 당시 한국은 패전국의 용병 개념이라고 베트남 지식인들은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 입장에서 패전국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넘어가겠다는 게 베트남 정부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 분노를 참고 과거를 묻어두는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뒤 베트남에 대한 제 이해도는 훨씬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대사로 접어들며 프랑스와 중국, 미국과 싸워 모두 이긴 나라가 베트남입니다. 지금이야 1인당 GDP 3000달러에 그치는 중진국이지만 내면에는 맹렬한 자부심으로 뿜뿜 뭉친 나라입니다. 베트남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이 같은 심리를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마치며 이번 대법 판결을 통해 공개되는 정보가 그리고 그로 인해 밝혀지는 진실이 유족을 위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