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16일, 경북대 고분자공학과 대학생 4명 엄군, 이군, 박군, 김군이
충분한 사전조사 및 준비 없이 설악산 공룡능선에 올랐다가 조난당한 사건.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안타까운 사건인데 안전한 산행을 위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종종 끌올 되는 사례.
설악산 공룡능선은 그 능선의 모습이 공룡의 등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전문 산악인들도 충분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한, 사고가 잦은 고난이도 절벽길 코스임.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직접 가서 촬영한 영상들 많은데, 간접적으로 봐도 정말 아찔하고 다신 안 간다 하는 사람들 많음.
(슬의 주인공들이 극 중에서 좋은데? 가볼까? 하는 거기임...)
1993년 겨울 엄군 일행은 원래 오대산을 종주하려고 했는데 시기가 안 맞아서 갑작스럽게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갈아타게 돼.
이 과정에서 공룡능선이 얼마나 위험한 코스인지 충분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던 게 사고의 원인이 됨.
공룡능선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마등령부터 희운각 대피소까지 약 5km 구간을 공룡능선이라고 해.
말이 5km지 절벽길 난코스 5km인데다 바로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어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인 구간.
적어도 오전 8시~9시에는 마등령에 도착해야 충분히 시간을 갖고 산행을 할 수 있음.
그런데...
엄군 일행은 17일 오전 8시에 백담 대피소를 출발
오세암을 거쳐 마등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2시였음.
지도처럼 마등령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날씨가 좋다는 전제 하에 산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도 최소 5시간은 걸림.
엄군 일행이 서둘러 출발해도 밤 7시는 돼야 희운각에 도착하는 스케쥴이었는데
겨울 치고 기상조건이 크게 나쁘지 않아 보여서 엄군 일행은 방심하게 돼.
한여름에도 소나기 한 번 맞으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산이고
심지어 겨울이라 해도 빨리 떨어지는데 그런 부분을 간과한 거지.
오후 4시경 1275봉을 통과한 엄군 일행은 초행길에 충분한 경험이 없어서 자꾸 길을 헷갈리게 되고
부지런히 가도 오후 7시는 돼야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스케쥴이 점점 지연되기 시작함.
결국 희운각 대피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상태에서 해가 져버림.
날씨는 어마어마하게 추워지고 오전 8시부터 이어진 산행으로 일행은 체력까지 바닥나버려.
먼저 김군이 잠이 온다며 바닥에 자꾸 주저앉기 시작. (동사의 전형적인 증상1)
설상가상으로 이군은 다리를 헛디뎌 발목을 삐고 아프다면서 신발을 벗어던지기 시작함. (동사의 전형적인 증상2)
박군과 엄군은 자기들도 지쳤지만 살아야 하니까 꾸역꾸역 친구들을 어르고 달래며 어떻게 계속 나아갔어.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저만치 앞에 희운각 대피소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함.
이들 말로는 착각이 아니라 진짜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반짝거리고 있었다고 함. (실제로 가까이 있었음.)
이 때가 밤 9시쯤이었는데, 너무 가까이 대피소가 보이니까 일행들은 안도했어.
그런데 김군과 이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니까 고민을 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돼.
발목을 다친 이군을 비교적 상태가 좋은 박군이 남아서 옆에서 지키고
춥다고 자꾸 정신을 놓는 김군을 엄군이 가까운 대피소까지 얼른 데리고 가서 눕히고 구조요청을 하는 것.
그래서 이군과 박군은 텐트 플라이를 뒤집어 쓰고 그 자리에 남고
김군과 엄군이 더듬더듬 희운각 대피소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어.
그런데 여기서 상황이 기대와는 달리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됨.
"불빛은 보이는데, 길은 절벽으로 끊어지곤 해서 귀신이 장난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엄군과 김군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길이 너무 깎아지른 절벽길이라
칠흙 같은 어둠 속의 공포, 친구들을 구해야 한다는 다급함, 바닥난 체력 등...
여러 혼란 속에서 길을 또 헤매게 돼 ㅜㅜ...
절벽을 피해 아슬아슬 걸어가던 엄군과 김군은 등산로쪽 발자국들을 보고 그쪽이 희운각 방향인 줄 착각하고
결국 바로 앞에 희운각을 두고 반대쪽 가야동 계곡으로 향하게 돼.
넘어지고 구르며 한참을 나아가도 대피소는 보이지도 않고...
등산로에서라도 희운각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면 20분이면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했을 건데
결국 엉뚱한 방향(가야동 계곡)으로 이미 바닥난 체력을 이끌고 한참을 더 헤매기 시작함.
얼마나 헤맸을까 원래부터 상태가 안 좋던 김군이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엄군 혼자라도 얼른 가서 구조를 요청하라는 말에 엄군 혼자 필사적으로 길을 나아가게 돼.
친구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걸었지만 가도가도 대피소는 안 나오고...
결국 엄군도 자리에 주저앉아 살아남기 위해서 바위 아래 불을 피워.
나뭇가지를 모아올 여력도 없어서 가지고 있던 라면, 쌀 등을 태웠다고 함.
그렇게 필사적으로 버티다가 드디어 아침이 됐어.
가까스로 다시 정신을 차린 엄군이 걷다걷다 오전 8시경 마침내 대피소를 발견하고 그 앞에서 실신하게 되는데
거기는 희운각 대피소가 아니었어.
어처구니 없게도 거기가 어디였냐 하면...
바로 희운각 대피소에서 5km 가량 떨어진 수렴동 대피소였음.
길을 잘못 들어서 무려 잘못된 방향으로 5km를 헤매면서 나아갔던 거야.
실신한 엄군은 안타깝게도 2시간 뒤에야 정신을 차렸고 그제서야 구조대들도 일행이 있었다는 걸 알게 돼.
정신없이 불을 피워서 허벅지 안쪽이 다 타있었대.
그럼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됐느냐...
다리를 다쳐서 박군과 함께 희운각 대피소 근처에 남았던 이군은 결국 자정 무렵 박군의 품에서 동사.
박군은 사망한 이군을 안고 기다리던 중 이튿날 동틀 무렵 다행히 40대 산악인 2명에게 발견돼 구조됐어.
김군은 실종됐다가 희운각에서 2km 가량 떨어진 가야동 계곡 상류 지점에서 동사한 상태로 발견.
4명의 신체 건강했던 대학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나섰다가 2명이 동사하게 된 안타까운 사고야.
심지어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헤매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안타까웠고.
산행할 때는 지도와 장비는 물론 충분한 사전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임.
이것 말고도 공룡능선에서 산사태도 있고 이런저런 사고들이 많았는데...
공룡능선이 유독 위험한 코스이긴 하지만 그래도 산의 무서움을 잘 알고 대비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지고 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