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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웬디-태일, ‘김민기 헌정 앨범’에 참여하게 된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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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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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사진제공=학전

“그럴만한 노래들도 아니고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헌정'이라는 것은 왠지 부담스럽고 싫다.”

계간지 '리뷰' 1998년 여름호에서 음악평론가 강헌에게 김민기는 말했다. 이는 당시 양희은이 홀로 발표한 자신의 헌정 앨범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는 천생 나서거나 기려지길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세상에 내놓은 음악도 더는 자신의 것이 아닌 '대중의 것'이라고 늘 못 박아온 인물이었다.

싱어송라이터 김민기는 미국에서 ‘모던 포크’로 불리는 장르의 한국적 시발점이었다. 그는 통기타 음악이 이끈 70~80년대 청년문화의 대변자이자 저항문화의 상징이었다. 그의 시와 음악은 진보의 기치 아래 자유와 젊음, 민주와 민중, 생명을 품은 '저항의 포크'로서 시대를 표류했다.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시인 김지하는 그런 김민기의 음악이 쓸쓸함과 맑음, 쾌활함, 버림받은 외로움과 슬픔을 모두 품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지하는 또 김민기의 대표곡 '아침이슬'의 마지막 소절을 두고선 "약속과 창조의 땅으로 나아가는 고달픈 유랑민의 복음"이라고 썼다.

2021년. 그런 김민기에게 또 한 번 헌정 제안이 왔다. 제안자는 다름 아닌 가수 박학기와 지금은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는 음악평론가 강헌이었다. 둘은 네 차례로 나눠 발표할 '김민기 헌정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를 맡을 터였다. 구체적으론 박학기가 총감독을 맡고 강헌은 기획(헌정 음반을 내자고 한 사람이 강헌이었다)과 제작을 도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헌정 당사자인 김민기는 1997년 양희은이 자신에게 헌정한 앨범에 대해 그랬듯 "쓸데없는 일"이라며 이 프로젝트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과연 김민기의 성정 상 예상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대표곡 '아침이슬'이 50주년 되는 해를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 강헌과 박학기는 "막걸리 10병"을 들고 다시 김민기를 찾아가 애원 끝에 겨우 반승낙을 얻어낸다. 단, 김민기 본인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박학기가 이번 일을 맡게 된 건 그가 데뷔 후 김민기가 운영한 학전소극장(1991년 개관)에서 콘서트를 자주 열었기 때문이다. 학전은 박학기의 절친이었던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을 달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렇게 학전의 전설이 된 김광석은 생전 김민기의 '친구'를 즐겨 불렀다. 그리고 김광석의 애창곡 '친구'는 그의 친구 박학기가 이번 헌정반에서 다시 부르게 된다.

1999년 가을 장충체육관 '김민기 헌정 콘서트'의 음반화인 동시에 김민기라는 인물의 그늘에서 성장한 한 세대 예술가들에겐 일종의 '빚 청산'이 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사람은 모두 17개 팀. 학전 출신 배우 황정민을 비롯해 정태춘, 한영애, 권진원, 윤도현, 노래를찾는사람들, 박학기, 이은미, 유리상자, 이날치, 메이트리(Maytree), 장필순, 윤종신, 알리(ALi), 나윤선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은 과작이되 역사적이었던 김민기의 음악 궤적을 제법 충실히 되밟아나갔다. 한국 '싱어송라이터' 역사에서 한대수 1집과 쌍벽을 이루는 김민기 1집을 비롯해 절박했던 70년대 노동운동의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 1978년 발표 당시 국방부가 금지곡으로 지정한 '늙은 군인의 노래'와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를 위해 만든 '주여, 이제는 여기에' 등 군부정권 시대에 부침을 겪은 노래들, 그리고 1993년 학전 운영비를 위해 발매를 결정한 4장짜리 전집까지. '아침이슬 50주년'을 내세운 김민기 헌정 음반은 그의 음악적 연대기를 두루 담은 전기(傳記)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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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왼쪽) 태일.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미리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 기획의 참여자 명단엔 웬디(레드벨벳)와 태일(NCT)도 포함됐다. 웬디는 김민기 전집에 실린 '그 사이'를 불렀고 태일은 '아름다운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은 김민기의 위대한 멜로디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박학기가 SM엔터테인먼트에 직접 요청해 섭외됐다. 하지만 뭔가 어색하다. 김민기와 아이돌이라니. 분명 오해의 여지가 있는 이 낯선 섭외는 과연 어떤 의미를 띠는가. 

그나마 정태춘은 김민기의 음악을 들으며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고 포크 그룹 해바라기 출신인 한영애는 이번 헌정 기획 총감독 자리를 박학기에게 제안한 사람이다. 권진원과 노래를찾는사람들은 과거 김민기가 제작한 앨범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들이며, 윤도현과 나윤선은 과거 학전 뮤지컬을 통해 데뷔를 치렀으니 여기에 당연히 이름을 올려야 할 스타들이다.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글로벌 팝 밴드 이날치도 '겨레'라는 단어를 매개 삼으면 얼마든지 김민기 헌정의 명분을 얘기할 수 있는 팀이다. 하지만 웬디와 태일은? 단순히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헌정을 위해 섭외했다는 박학기의 이유는 너무 원론적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아이돌 소속사도 많은데 굳이 SM엔터테인먼트였던 걸까.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선 레드벨벳과 NCT의 소속사 창립자 겸 총괄 프로듀서인 이수만이라는 인물을 먼저 짚고 가야 한다.

1971년 1월 18일.(1971년은 김민기가 데뷔 앨범을 발매한 해이기도 하다.) 이수만은 서울대 농과대학 농업기계학과에 입학했다. 10대 때부터 꾸준히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어느 날 '통기타 물결의 자궁'이었던 명동 청개구리홀에서 충격적인 공연을 보게 된다. 바로 김민기와 양희은의 무대였다. 아직 백순진과 포크 듀오 '4월과 5월'을 결성하기 전인 대학 새내기 이수만에게 당시 김민기는 "기타 잘 치는 남자"였고 양희은은 "노래 끝내주게 잘 부르는 여자"였다. "천상의 소리"였던 두 사람의 호흡 앞에 이수만은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렇게 김민기는 음악의 길 중 하나를 제시한 사람으로 나중에 케이팝의 대명사가 될 한 청년의 가슴에 남게 된다. 이 관람을 계기로 이수만은 이후 양희은의 '고운노래모음' 2집에 수록된 '인형'의 코러스에도 참여했다. 김민기 헌정 음반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이 참여한 것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 김창남은 자신이 엮은 책 '김민기'의 서문에서 "한 시대 수난과 저항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 예술가의 창조적 이력이라는 차원에서" 김민기가 새롭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썼다. 헌정 앨범을 총지휘한 박학기는 이번 헌정 앨범이 '아침이슬'을 아는 사람들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리라 얘기했다. 2004년 '공장의 불빛'에 충격받아 그 음반을 재해석한 정재일 역시 "'아침이슬'을 모르는 또래도 이런 삶, 작품, 예술가가 있었다는 걸 알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김민기의 음악이라고 해서 무조건 엄숙하고 경건하게, 하물며 특정 세대의 정서만을 대변해 헌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젊은 층을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이 김민기를 알게 되면 그때야말로 헌정반은 비로소 임무를 다 한 것이다.

세상에 헌정 앨범이 어떠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누가 참여해야 하고 누가 참여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다. 헌정 앨범의 가치와 의미는 어디까지나 헌정을 당하는 음악가의 공적을 후세에 알려 기억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뤄진 선곡과 참여자들의 면면, 리메이크 수준은 부차적인 것이다. 물론 그 수준이 다수가 만족하고 인정할 만한 것이면 더 좋긴 하다. 허나 그 판단조차도 결국엔 개인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옛 세대와 지금 세대를 어우른 17팀이 김민기의 노래를 불렀고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김민기라는 사람, 그 사람의 업적을 알렸다는 사실이다. 이는 물론 이수만을 대신해 참여한 웬디와 태일이 제 역할을 한 덕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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