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필자는 85년생 소띠로 현재 와이프와 아들셋(9살7살5살)을 부양하고 있다.
2015년9월 둘째가 태어난 이후 2016년 9월이 다가올 즈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큰아들을 재우고 나온 뒤, 와이프는 묵언과 함께 무언가를 나에게 전해준다.
그것은 바로 선명하게 나온 두줄로 된 임신테스트기였다.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한 필자와 와이프는 한동안 멍했다.
아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와이프는 아들셋을 모유수유하였고, 모유수유중에는 자연피임이 된다.
근데, 모유수유를 딱 마친 그 시점에 막내가 생긴 것이다(두둥)
한동안 말이 없던 우리 부부는 수 분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제 둘째가 12개월인데, 셋째임신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와이프와 이와 달리 수유가 끝나자마자 셋째가 생긴걸 으쓱해 하는 필자의 생각은 상반된 반응이었다.
물론 필자도 걱정은 했지만, 걱정보다 기쁨이 앞섰다.
셋째가 딸이라는 생각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이내 필자는 기쁜마음을 진정하고 불안해 하는 와이프를 진정과 동시에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 삼고초려도 아니지만, 설득에 설득을 걸쳐 우리 가족은 셋째를 맞이 할 준비와 동시에 그 해 추석 일가친척들에게 셋째 임신사실을 알렸다.
셋째가 와이프 배속에서 안정기에 접어든 2016년 11월 무렵, 불현 듯 머릿속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셋째 이후의 임신여부였다.
그렇다.
금술이 좋은 우리 부부가 셋째가 태어난 이후 혹시나, 혹여나 넷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친 것이다.
이걸 어떻하지, 나중에 이러다 또 넷째가 생기는건 아닌가, 나는 외벌이인데, 수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 불현 듯 눈에 띈 광고가 있었다.
그것은 동네의 한 비뇨기과 광고였다.
남성확대, 조루클리닉!!
이것을 본 내 머릿속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광고 속 비뇨기과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난 정관수술에 대해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3군데의 비뇨기과가 있었는데, 3군데 다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그 중 제일 가까운! 비뇨기과로 정관수술 상담예약을 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비뇨기과도 원장 따로 상담사 따로 있었는데, 이 비뇨기과는 상담사와 간호사가 전부 남성으로 구성되 있었다.
이에 난 부끄럼없이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는 정관수술을 하는 이유부터 묻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셋째가 임신중입니다!
이 한마디 후 수 초간 정적이 있은 후, 상담사는 와이프분 허락은 받으셨냐는 물음에
당연히 허락 받았다는 대답과 함께, 다음 사항인 비용에 대해 상담이 이뤄졌다.
비용은 30만원이라고 했고, 이 동네 가격이 다 이정도 형성되 있다는 대답과 함께
현금결제는 3만원 DC라는 말에 냉큼 수술예약을 잡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와이프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던거 같다.
상담 받았을 즈음에는 산부인과에서 성별이 나왔을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과감하게 이번 생은 아들셋으로 마감하기로 결정한 터라
마음은 홀가분했다.
수술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더해졌다.
엄마따라 포경수술하러 간 이후론 비뇨기과를 간 적이 없다.
이에 어린마음에 따라간 비뇨기과의 좋은 추억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참고 이겨내니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수술 후에도 과한 움직임만 없으면 문제없다는 상담사의 말에 오후6시에 수술예약을 한 필자는 조퇴 후 냉큼 비뇨기과로 달려갔다.
두근거림과 동시에 난 전체 탈의 후 수술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은 에어컨, 온풍기 등을 전혀 가동할 수 없다.
이에 수술가운만 입은 나로는 매우 추울 수 밖에 없었다.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두꺼운 담요를 내 상체쪽에 덮고 눈을 가렸다.
드디어 시작인 것이다.
좌,우 고환주변에 마취주사를 놓음과 동시에 수술을 시작했다.
주사를 놓고 난 후 난 비명을 질렀다.
악!!
비영에 놀란 원장은 “아직 마취가 안됬나요??” 물었고 나는 아직 아프다고 대답했다.
진짜 아펐다.
고환을 꽉 쥐었기 때문에!
이는 남자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1분인가 지났을까, 소중이의 감각은 사라져버렸다.
그 후 수술은 조용한 환경에서 시작했다.
적막감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 나는 긴장감을 해소하고자 의사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수술실이 적막하니 노래라도 틀어주세요” 라고 제안을 했다.
이에 원장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노래를 틀고 곧 수술을 재개했다.
수술은 성기 바로 아래의 뿌리부분을 약 2mm를 절개 후 정관을 꺼내고 나서 절개 후 레이져로 지지고 봉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상담시 설명들었다.
수술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 중 갑자기 발판을 누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왜 수술 중 발판을 누르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갈 즈음 바로 미세하게 탄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레이져로 정관을 지지고 있는것이었다.
상담받을 때 정관을 절개 후 레이져로 지지고 난 후 다시 봉합한다는 상담사의 설명이 실현되고 있었다.
수술실은 내 정관의 타는 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했었다.
레이져가 끝나고 드디어 봉합도 끝나고 수술이 끝났다.
수술실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는 회복실로 이동하여 옷을 갈아입고 유의사항을 듣기 시작했다.
유의사항은, 수술 후 2주간(기억이 가물가물) 과한운동은 안되고 2주 후 적어도 20회 이상 사정을 하여 체내에 있는 정액을 분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후 3개월 뒤에 정자검사 방문 예약으로 비뇨기과를 나온 나는 처방받은 진통제 수령과 동시에 곧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2주가 지난 후 유의사항을 실천한 나는 예약날짜에 다시 비뇨기과를 방문했다.
차후 방문목적은 수술부위 확인과 정자검사였다.
정자검사!!
이게 말로만듣던 현타가 온다는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예약시간에 비뇨기과에 도착한 필자는 수술부위 부작용여부 등에 대한 질의응답이 끝난 후 핸드폰을 들고 따라나오라는 간호사의 설명에 발걸음을 이어갔다.
간호사는 비뇨기과 구석에 위치한 어느 한 진료실로 나를 안내했고, 그의 손에 있던 휴대폰으로 빠르게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조작이 끝나고 핸드폰과 연결된 이어폰을 건내준 후, “여기에 사정하고 나오세요”라는 짤막한 말과 동시에 진료실의 문을 닫고 빠져나갔다.
나는 순간 ‘아! 이제 이시간이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수술 후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름 빠르게(?) 간호사가 원하는 것을 간호사 손에 안겨줬다.
간호사는 담담히 물건(?)을 받은 후 현미경으로 검사하기 시작했고, 나는 병원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5분, 10분이 지났을까, 간호사는 조용히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간호사는“현미경으로 자세하게 관찰한 결과 정자는 안보입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이제 가셔도 된다는 말과 함께 진료실을 나갔고 나도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이렇게 필자의 생에는 아들셋이 마지막이 되었고, 지금은 와이프와 아들셋과 신나게 지지고 볶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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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아내분 반응 이야기는 아들이 이미 둘 있어서 내심 딸을 바랐다고 하심
주)필자는 85년생 소띠로 현재 와이프와 아들셋(9살7살5살)을 부양하고 있다.
2015년9월 둘째가 태어난 이후 2016년 9월이 다가올 즈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큰아들을 재우고 나온 뒤, 와이프는 묵언과 함께 무언가를 나에게 전해준다.
그것은 바로 선명하게 나온 두줄로 된 임신테스트기였다.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한 필자와 와이프는 한동안 멍했다.
아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와이프는 아들셋을 모유수유하였고, 모유수유중에는 자연피임이 된다.
근데, 모유수유를 딱 마친 그 시점에 막내가 생긴 것이다(두둥)
한동안 말이 없던 우리 부부는 수 분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제 둘째가 12개월인데, 셋째임신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와이프와 이와 달리 수유가 끝나자마자 셋째가 생긴걸 으쓱해 하는 필자의 생각은 상반된 반응이었다.
물론 필자도 걱정은 했지만, 걱정보다 기쁨이 앞섰다.
셋째가 딸이라는 생각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이내 필자는 기쁜마음을 진정하고 불안해 하는 와이프를 진정과 동시에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 삼고초려도 아니지만, 설득에 설득을 걸쳐 우리 가족은 셋째를 맞이 할 준비와 동시에 그 해 추석 일가친척들에게 셋째 임신사실을 알렸다.
셋째가 와이프 배속에서 안정기에 접어든 2016년 11월 무렵, 불현 듯 머릿속을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셋째 이후의 임신여부였다.
그렇다.
금술이 좋은 우리 부부가 셋째가 태어난 이후 혹시나, 혹여나 넷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친 것이다.
이걸 어떻하지, 나중에 이러다 또 넷째가 생기는건 아닌가, 나는 외벌이인데, 수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 불현 듯 눈에 띈 광고가 있었다.
그것은 동네의 한 비뇨기과 광고였다.
남성확대, 조루클리닉!!
이것을 본 내 머릿속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광고 속 비뇨기과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난 정관수술에 대해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 3군데의 비뇨기과가 있었는데, 3군데 다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그 중 제일 가까운! 비뇨기과로 정관수술 상담예약을 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비뇨기과도 원장 따로 상담사 따로 있었는데, 이 비뇨기과는 상담사와 간호사가 전부 남성으로 구성되 있었다.
이에 난 부끄럼없이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는 정관수술을 하는 이유부터 묻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셋째가 임신중입니다!
이 한마디 후 수 초간 정적이 있은 후, 상담사는 와이프분 허락은 받으셨냐는 물음에
당연히 허락 받았다는 대답과 함께, 다음 사항인 비용에 대해 상담이 이뤄졌다.
비용은 30만원이라고 했고, 이 동네 가격이 다 이정도 형성되 있다는 대답과 함께
현금결제는 3만원 DC라는 말에 냉큼 수술예약을 잡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와이프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던거 같다.
상담 받았을 즈음에는 산부인과에서 성별이 나왔을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과감하게 이번 생은 아들셋으로 마감하기로 결정한 터라
마음은 홀가분했다.
수술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더해졌다.
엄마따라 포경수술하러 간 이후론 비뇨기과를 간 적이 없다.
이에 어린마음에 따라간 비뇨기과의 좋은 추억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참고 이겨내니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수술 후에도 과한 움직임만 없으면 문제없다는 상담사의 말에 오후6시에 수술예약을 한 필자는 조퇴 후 냉큼 비뇨기과로 달려갔다.
두근거림과 동시에 난 전체 탈의 후 수술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은 에어컨, 온풍기 등을 전혀 가동할 수 없다.
이에 수술가운만 입은 나로는 매우 추울 수 밖에 없었다.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두꺼운 담요를 내 상체쪽에 덮고 눈을 가렸다.
드디어 시작인 것이다.
좌,우 고환주변에 마취주사를 놓음과 동시에 수술을 시작했다.
주사를 놓고 난 후 난 비명을 질렀다.
악!!
비영에 놀란 원장은 “아직 마취가 안됬나요??” 물었고 나는 아직 아프다고 대답했다.
진짜 아펐다.
고환을 꽉 쥐었기 때문에!
이는 남자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1분인가 지났을까, 소중이의 감각은 사라져버렸다.
그 후 수술은 조용한 환경에서 시작했다.
적막감이 흐르고 있는 와중에 나는 긴장감을 해소하고자 의사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수술실이 적막하니 노래라도 틀어주세요” 라고 제안을 했다.
이에 원장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노래를 틀고 곧 수술을 재개했다.
수술은 성기 바로 아래의 뿌리부분을 약 2mm를 절개 후 정관을 꺼내고 나서 절개 후 레이져로 지지고 봉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상담시 설명들었다.
수술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 중 갑자기 발판을 누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왜 수술 중 발판을 누르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갈 즈음 바로 미세하게 탄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레이져로 정관을 지지고 있는것이었다.
상담받을 때 정관을 절개 후 레이져로 지지고 난 후 다시 봉합한다는 상담사의 설명이 실현되고 있었다.
수술실은 내 정관의 타는 냄새로 진동하기 시작했었다.
레이져가 끝나고 드디어 봉합도 끝나고 수술이 끝났다.
수술실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는 회복실로 이동하여 옷을 갈아입고 유의사항을 듣기 시작했다.
유의사항은, 수술 후 2주간(기억이 가물가물) 과한운동은 안되고 2주 후 적어도 20회 이상 사정을 하여 체내에 있는 정액을 분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후 3개월 뒤에 정자검사 방문 예약으로 비뇨기과를 나온 나는 처방받은 진통제 수령과 동시에 곧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2주가 지난 후 유의사항을 실천한 나는 예약날짜에 다시 비뇨기과를 방문했다.
차후 방문목적은 수술부위 확인과 정자검사였다.
정자검사!!
이게 말로만듣던 현타가 온다는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예약시간에 비뇨기과에 도착한 필자는 수술부위 부작용여부 등에 대한 질의응답이 끝난 후 핸드폰을 들고 따라나오라는 간호사의 설명에 발걸음을 이어갔다.
간호사는 비뇨기과 구석에 위치한 어느 한 진료실로 나를 안내했고, 그의 손에 있던 휴대폰으로 빠르게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조작이 끝나고 핸드폰과 연결된 이어폰을 건내준 후, “여기에 사정하고 나오세요”라는 짤막한 말과 동시에 진료실의 문을 닫고 빠져나갔다.
나는 순간 ‘아! 이제 이시간이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수술 후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름 빠르게(?) 간호사가 원하는 것을 간호사 손에 안겨줬다.
간호사는 담담히 물건(?)을 받은 후 현미경으로 검사하기 시작했고, 나는 병원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5분, 10분이 지났을까, 간호사는 조용히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간호사는“현미경으로 자세하게 관찰한 결과 정자는 안보입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이제 가셔도 된다는 말과 함께 진료실을 나갔고 나도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이렇게 필자의 생에는 아들셋이 마지막이 되었고, 지금은 와이프와 아들셋과 신나게 지지고 볶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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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아내분 반응 이야기는 아들이 이미 둘 있어서 내심 딸을 바랐다고 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