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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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모와 자태에 기품이 어려 있고, 평생 언제 어느 때나 아름다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략) 그의 눈은 밝고 맑으며 형형히 빛났다. (중략) 머리칼은 엷은 금색이고 약간 곱슬머리였다. 양쪽 눈썹은 붙어 있고, 귀는 보통 크기였다. 콧마루는 끝에서 약간 솟아 오르고 그 밑변이 안쪽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피부는 거무스름하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딱 중간이었으며, 키는 작았다. 율리우스 마라투스는 아우구스투스의 해방노예이자 기록 담당자였는데 그의 키가 5피트 7인치(173.7cm)라고 기록했다. 실제 키는 이보다 작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팔다리가 길고 몸의 균형이 잘맞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커 보였다. 누군가 옆에 가까이 서지 않는 한 그가 얼마나 작은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수에토니우스 (박광순 옮김) (1998). 《풍속으로 본 12 인의 로마 황제》
https://img.theqoo.net/pfQur
(카이사르=시저. 56세에 암살당함. 브루투스 너마저...는 셰익스피어 창작)
로마의 일인자 카이사르가 갑작스런 암살을 당하면서 그의 유언장이 공개됐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누이의 외손자인 18세 소년을 후계자로 지목함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당대의 로마사람들의 반응은 그게 누군데? 였다고 함 고대 로마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출신이 대략 나오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외가로는 최고 명문 귀족인 율리우스 가문과 닿아있지만 친가는 기사계급, 현대 기준으로는 부르주아 계급 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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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기의 옥타비아누스)
게다가 그때 로마는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이었고 최고 정치기관인 원로원에 들어가려면 30세 이상 연령제한이 있어서 옥타비아누스도 처음에는 정계에 나설수 없는 '어린애' 취급받았음. 근데 이 어린애가 유력자들을 차례로 구워삶더니 평범한 원로원 의원1도 아니고 무려 집정관 자리를 19세에 차지해버림 법적인 집정관의 최저연령은 40세였으니 21년 미달... 너무 어린 나이에 미소년인채로 정계에 데뷔한 덕분에 이게 공격거리가 됨
로마는 그리스와 달리 동성애를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겼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정적들에게 받은 공격이 어느 수준이었냐면 카이사르를 따라 전투에 참전한 16세 때 종조부와 잠자리를 한 대가로 후계자가 된거란 말까지 들음
아우구스투스의 수치스러운 소문은 그의 숙부 카이사르의 육욕에 복종하여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는 것이었다. 이는 카이사르가 직접 아우구스투스에게 깊이 빠져들었다고 마지못해 시인했다는 소문에서 나왔다. ...몇몇 이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조롱했다.《현자의 발자취와 궁정인의 경거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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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소녀처럼 예쁘장한 그의 얼굴을 보고 그가 여자 역할의 동성애자이며 '여왕'이라고 혈뜯었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30만 세스테르티우스의 거금을 대가로 히르티우스에게 몸을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히르티우스는 알다시피 기원전 43년에 무티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집정관이었다. 그는 이 둘의 연애 사건이 기원전 45년에 스페인에서 일어 났다고 했다.
(중략)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로마 군중들 사이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남자들과 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루는 극장에서 한 배우가 '모신 키벨레'의 사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가 탬버린을 연주하자, 다른 연기자가 외쳤다. "여왕의 손가락이 어떻게 북을 두드리는지 보라!"이 말은 라틴어로 "여왕의 손가락이 어떻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지 보라!"라는 뜻으로도 들을 수 있었다. 관중들은 그 말을 그날 거기서 공연을 보고 있던 옥타비아누스를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생각하고 신이 나서 박수를 쳐 댔다.
앤서니 에버렛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물론 루머임ㅇㅇ 카이사르는 걍 사람보는 눈이 비범했고 이 예쁘장하고 허약한 조카손자가 엄청난 두뇌와 그에 비례한 집념을 가졌다는걸 알아본거 뿐임 대신 얘가 군인으로는 재능이 0인것도 알아봐서 그 빈자리를 채워줄 짝으로 평민출신의 재능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붙여줌 그게 바로 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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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리파. 아그리파는 열여섯살 때 옥타비아누스를 처음 만났는데 죽을 때까지 그와 평생 친구이자 제국의 2인자가 됨 나중에는 황제의 외동딸 율리아와 결혼해서 3남 2녀를 낳는데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의 피를 모두 물려받은 후손 중 로마 황제가 배출됨 다만 안타깝게도 그 둘이 폭군 네로와 칼리굴라....ㅠㅠ 여튼 이건 한참 뒤의 일이고.
옥타비아누스의 라이벌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와 놀아나는 동안 로마의 본처 풀비아와 동생 루키우스 안토니우스가 내전을 일으킴 이때 사용한 탄환에는 상대에 대한 조롱이 글자로 새겨져있어서 사료로 남아있는데 가관임. 루키우스가 받은 공격은 '너 머머리' 수준인데 비해 옥타비아누스에 대해서는 한번 따먹고싶다 류의 성희롱 대잔치.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한 종조부의 안목을 증명하듯 미친 정치력으로 자신을 조롱하던 정적들을 싹 다 죽음으로 몰아넣고 결국 초대 황제가 됨 관용으로 유명했던 카이사르와 달리 그 과정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대숙청을 벌여서 대중에게 충격을 줬는데 일단 내전이 끝난 후에는 대놓고 자기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에게도 관대했다고 함
근현대의 미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옥타비아누스는 항상 미쳥년으로 묘사되는데 로마인임에도 금발 곱슬머리로 그려지는 건 수에토니우스 황제록의 기록 때문. 로마에도 금발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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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에서 볼 수 있는 미드 롬의 주요 캐릭터이기도 한데 HBO 드라마답게 폭력이나 성묘사 수위 높고 고증 쩔어 그대신 상상력 한계돌파 수준으로 대놓고 하는 역사왜곡도 엄청나서 실제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보는걸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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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모와 자태에 기품이 어려 있고, 평생 언제 어느 때나 아름다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략) 그의 눈은 밝고 맑으며 형형히 빛났다. (중략) 머리칼은 엷은 금색이고 약간 곱슬머리였다. 양쪽 눈썹은 붙어 있고, 귀는 보통 크기였다. 콧마루는 끝에서 약간 솟아 오르고 그 밑변이 안쪽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었다. 피부는 거무스름하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딱 중간이었으며, 키는 작았다. 율리우스 마라투스는 아우구스투스의 해방노예이자 기록 담당자였는데 그의 키가 5피트 7인치(173.7cm)라고 기록했다. 실제 키는 이보다 작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팔다리가 길고 몸의 균형이 잘맞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커 보였다. 누군가 옆에 가까이 서지 않는 한 그가 얼마나 작은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수에토니우스 (박광순 옮김) (1998). 《풍속으로 본 12 인의 로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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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시저. 56세에 암살당함. 브루투스 너마저...는 셰익스피어 창작)
로마의 일인자 카이사르가 갑작스런 암살을 당하면서 그의 유언장이 공개됐는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누이의 외손자인 18세 소년을 후계자로 지목함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당대의 로마사람들의 반응은 그게 누군데? 였다고 함 고대 로마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출신이 대략 나오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외가로는 최고 명문 귀족인 율리우스 가문과 닿아있지만 친가는 기사계급, 현대 기준으로는 부르주아 계급 정도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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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기의 옥타비아누스)
게다가 그때 로마는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이었고 최고 정치기관인 원로원에 들어가려면 30세 이상 연령제한이 있어서 옥타비아누스도 처음에는 정계에 나설수 없는 '어린애' 취급받았음. 근데 이 어린애가 유력자들을 차례로 구워삶더니 평범한 원로원 의원1도 아니고 무려 집정관 자리를 19세에 차지해버림 법적인 집정관의 최저연령은 40세였으니 21년 미달... 너무 어린 나이에 미소년인채로 정계에 데뷔한 덕분에 이게 공격거리가 됨
로마는 그리스와 달리 동성애를 불명예스러운 일로 여겼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정적들에게 받은 공격이 어느 수준이었냐면 카이사르를 따라 전투에 참전한 16세 때 종조부와 잠자리를 한 대가로 후계자가 된거란 말까지 들음
아우구스투스의 수치스러운 소문은 그의 숙부 카이사르의 육욕에 복종하여 후계자 자리를 꿰찼다는 것이었다. 이는 카이사르가 직접 아우구스투스에게 깊이 빠져들었다고 마지못해 시인했다는 소문에서 나왔다. ...몇몇 이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조롱했다.《현자의 발자취와 궁정인의 경거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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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소녀처럼 예쁘장한 그의 얼굴을 보고 그가 여자 역할의 동성애자이며 '여왕'이라고 혈뜯었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30만 세스테르티우스의 거금을 대가로 히르티우스에게 몸을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히르티우스는 알다시피 기원전 43년에 무티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집정관이었다. 그는 이 둘의 연애 사건이 기원전 45년에 스페인에서 일어 났다고 했다.
(중략)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로마 군중들 사이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남자들과 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루는 극장에서 한 배우가 '모신 키벨레'의 사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가 탬버린을 연주하자, 다른 연기자가 외쳤다. "여왕의 손가락이 어떻게 북을 두드리는지 보라!"이 말은 라틴어로 "여왕의 손가락이 어떻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지 보라!"라는 뜻으로도 들을 수 있었다. 관중들은 그 말을 그날 거기서 공연을 보고 있던 옥타비아누스를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생각하고 신이 나서 박수를 쳐 댔다.
앤서니 에버렛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물론 루머임ㅇㅇ 카이사르는 걍 사람보는 눈이 비범했고 이 예쁘장하고 허약한 조카손자가 엄청난 두뇌와 그에 비례한 집념을 가졌다는걸 알아본거 뿐임 대신 얘가 군인으로는 재능이 0인것도 알아봐서 그 빈자리를 채워줄 짝으로 평민출신의 재능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붙여줌 그게 바로 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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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리파. 아그리파는 열여섯살 때 옥타비아누스를 처음 만났는데 죽을 때까지 그와 평생 친구이자 제국의 2인자가 됨 나중에는 황제의 외동딸 율리아와 결혼해서 3남 2녀를 낳는데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의 피를 모두 물려받은 후손 중 로마 황제가 배출됨 다만 안타깝게도 그 둘이 폭군 네로와 칼리굴라....ㅠㅠ 여튼 이건 한참 뒤의 일이고.
옥타비아누스의 라이벌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와 놀아나는 동안 로마의 본처 풀비아와 동생 루키우스 안토니우스가 내전을 일으킴 이때 사용한 탄환에는 상대에 대한 조롱이 글자로 새겨져있어서 사료로 남아있는데 가관임. 루키우스가 받은 공격은 '너 머머리' 수준인데 비해 옥타비아누스에 대해서는 한번 따먹고싶다 류의 성희롱 대잔치.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한 종조부의 안목을 증명하듯 미친 정치력으로 자신을 조롱하던 정적들을 싹 다 죽음으로 몰아넣고 결국 초대 황제가 됨 관용으로 유명했던 카이사르와 달리 그 과정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대숙청을 벌여서 대중에게 충격을 줬는데 일단 내전이 끝난 후에는 대놓고 자기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에게도 관대했다고 함
근현대의 미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옥타비아누스는 항상 미쳥년으로 묘사되는데 로마인임에도 금발 곱슬머리로 그려지는 건 수에토니우스 황제록의 기록 때문. 로마에도 금발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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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에서 볼 수 있는 미드 롬의 주요 캐릭터이기도 한데 HBO 드라마답게 폭력이나 성묘사 수위 높고 고증 쩔어 그대신 상상력 한계돌파 수준으로 대놓고 하는 역사왜곡도 엄청나서 실제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보는걸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