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사와 악사
| 구분 | 단편 소설 |
|---|---|
| 저자 | 홍성원 |
| 발표매체 | 한국문학 |
| 발표일 | 1976. 7. |
유화 붓을 신나에 빨고 있을 때 내가 주례를 서준 손중호로부터 김기범의 사망소식이 전해 왔다. 손씨의 차에 치인 그는 뇌진탕으로 죽었고 그의 주머니에는 46만 원과 부적 같은 종이 그리고 내 명함이 발견된다. 그날 사흘씩이나 비워둔 연구실에 왜 가고 싶었을까? 그냥 우두커니 커피잔을 바라보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나더니 그가 들어섰다.
평생을 친구인 그와 나는 아주 드물게 만났다. 굵은 음성에 왕방울 눈, 그러나 성토하던 기백 대신 탁음과 헛기침을 가지고 나타난 13년만의 만남이었다. 그는 자주 말을 중단했고 초조해 보였다. 대화는 자주 끊겼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평생의 버릇 방랑벽이 도졌나? 생각할 뿐이었다. 회포나 풀자 하기에 집으로 오라며 건네준 명함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시신은 깨끗했다. 그런데 그가 언제 가발을 썼던가? 시신의 머리는 중의 그것과 똑같았다. 경찰은 수차례 조회 끝에 그의 신원확인을 포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손중호가 신문 광고를 냈다. 결과는 같았다. 사흘 후 시신을 가매장하라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간단히 그 일을 해치웠다. 그러나 나는 김기범의 고향에 내려가야 했다. 도의적 책임을 느낀 손중호가 그렇게 하기를 간청해 왔기 때문이다.
내 고향 S군에서도 40리나 더 골짜기에 산 기범을 만난 건 4학년 때이다. 서당에 다니다 2학년에 편입을 한 그는 무명한복에 짚신을 신은 똥똥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흡사 곡마단의 난쟁이 익살꾼과 오뚝이를 합친 모습이었다. 그는 거푸 월반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그의 총명함과 기행들은 그 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한시를 암송하던 선생이 시구를 잊을 때면 그는 침묵을 깨고 뒤를 이어 낭독을 했고 휘적휘적 칠판에 그린 그림은 대번에 누구인지 알만큼 특징을 잘 잡은 데생을 이미 마스터한 솜씨였다. 그러나 그 중 손꼽히는 일화는 예배당 사건이다. 우리보다 두 살 위인 처녀티가 완연한 선배에게 기범은 관심이 있었던가 보다.
그 날 예배당은 여신도들로 꽉 차 있었다. 목사가 술의 백해무익을 설파한 후 막 물 컵을 들었을 때 기범이 질문을 했다. 술이 백해무익하다는 말은 지나칩니다. 제가 알기론 술은 꼭 한 군데 필요한 용처가 있습니다…… 남녀가 성교를 하기 전에 마신 술은 혈액순환에 좋습니다. 그 후 우리는 예배당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미인 선배가 우리를 볼 때마다 얼굴을 붉혔음은 물론이다. 두 차례의 주민증 갱신도 피해간 그의 행적을 찾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우리는 한약방을 하는 기범의 사촌형을 찾아냈다. 그 노인과의 만남은 삭막했다. 다만 4,5년 전 감이 많이 나는 전라도 어디, 고을 이름에 천(天)자가 들어간 곳에서 누가 봤으나 알은 척을 하니 딱 잡아떼며 가 버렸다는 소득만을 건졌다. 일본에서 법문학부를 나온 그가 산골에 박혀 한 일이 무엇일까 궁금한 우리는 천자가 들어간 고을을 찾아 나섰다.
상당한 호농이었던 그의 집은 유학을 하면서부터 가산이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본의 패색이 짙어 우리는 모이면 우국토론이었다. 그러나 기범은 큰 눈만 껌벅이고 좀체 끼여들지 않았다. 그런 그가 우리를 구해준 진면목을 발휘했다. 19×년 9월 어느 날 대동아전쟁과는 관련도 없는 우리는 징집이 되었다. 울분과 치욕에 침을 튀며 성토를 하던 중 누군가 조선의 기백을 보여주자는 말에 우리는 거사를 결의했다. 그런데 3.1운동이나 광주학생 사건과 맞먹는 그 사건에 만세의 선창자로 기범이 자청을 했다.
장행회장은 입대장정의 가족들과 동원된 여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도지사의 축사를 끝으로, 동지들의 잔기침을 시작으로, 만세를 부르기로 한 약속은 그러나 이행되지 못했다. 축사가 끝났지만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나는 절절맸다. 돌아보니 주위의 동지들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와 긴장이 안도와 기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에 다시 공포로 뒤집혔다. 조센 반자이! 기범이 맨 앞자리에서 외쳤다. 길었는지 짧았는지 분간 못할 시간이 흘렀다. 헌병들의 손이 일제히 칼자루에 멈췄다. 닛본 반자이! 침묵은 계속되고 헌병들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다이토아 반자이! 식장을 지배하던 긴장은 이로써 깨끗이 해소되었다. 막중한 중임을 자처한 그의 심미안은 놀라웠다.
그 후 나는 국민군의 포로가 되어 야미배를 타고 귀국한 기범을 우연히 만났다. 끼니가 어렵다는 말에 같이 지낸 지 1주일, 낯선 두 사내의 방문을 받은 나는 그가 친일파를 변론하는 기사를 쓴 죄로 피신 중임을 알았다. 두 달 후 만난 그는 친일파에게 죄가 있다면 살아남은 죄밖에 없다는 궤변을 토했다. 이중성격자, 사기꾼, 기회주의자, 배신자. 그를 칭하는 그런 말들을 그러나 나는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진 간질병을 지닌 미인 아내. 그 아내가 부정을 했을 때 끝까지 모른 척 하려고 한 행위가 그녀의 고백으로 무산되자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괴짜지만 인생의 유머를 속속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화는 또 있다.
혹독하게 추운 날 기범의 적수 일규를 묻고 우리는 술을 퍼마셨다. 단 한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는 일규. 그러나 그 자리는 기범이 일부러 내준 것이었다. 일규의 절교 선언에도 불구하고 기범은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그 유명한 민의원 사건. 일규를 위해 선전부장으로 맹투쟁하다 선거를 사흘 앞두고 상대의 당에 들어가 버린 기범. 친구를 패배시켜버린 그 배반을 놓고 기범은 중얼거렸다. 한번 진 것이 그렇게 아팠을까? 중얼거렸다. 극과 극의 만남, 그러나 그들은 양극과 음극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탐냈다. 기범은 일등은 놓칠망정 친구는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광대 같은 주인, 우리들이 살아갈 간판 구실을 해줄 무사, 그것이 일규이고 그가 필요로 하는 악사 같은 존재,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어이 기범의 거처를 찾았다. 척박한 땅과 숲과 괴석에 찬 기류가 흐르는 그곳은 화전민 부락을 연상케 했다. 황도인이 된 기범은 약포를 운영하며, 병자를 치료하며, 10년 넘게 산 흔적으로 묘한 풀들이 심어진 골짜기와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사람들을 남겨 놓았다. 폐병으로 죽어 가는 자신을 구제해준 인연으로 기범과 같이 살게 된 임씨로부터 일규의 철학 모두 썩어라, 철저히 썩어라, 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미련한 짓 그만하고 옳게 살고 싶다며 서울행을 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미련한 짓이란 정상인의 짓이며 옳게 살겠다는 말은 우리에게는 불길한 징조이다. 더구나 이제는 더 썩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다 썩고 없다면 인간은 그의 말대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자구책을 쓴다는 말이 된다. 비로소 때, 그가 말하는 때가 온 것인가? 황도인이 해야 할 몫은 무엇이었을까?
[네이버 지식백과] 무사와 악사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5696&cid=41708&categoryId=41737
생각보다 내용이 어렵네................
단, 저 부분은 찐사 맞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