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김주승
80년대 미남 배우 중 한 명이었으나 그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장모가 '희대의 사기꾼' 장영자이기 때문이었음
(참고로 장영자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계기)
1982년,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라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장영자의 어음 사기 금액은 무려 6000억 원대였다.
그 당시 정부 1년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장영자의 딸과 결혼한 이후 김주승의 인생)
김주승은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로 데뷔해 ‘첫사랑’ ‘애정의 조건’ ‘순심이’ ‘야망의 세월’ ‘연인’ ‘여자의 남자’ 등에 출연하며 80~90년대를 휘어잡은 스타다.
1990년 장영자의 딸 김모씨와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김주승은 결혼 후 사업가로 활동했지만
1994년 장영자의 사기사건의 여파로 사업에 실패해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또 암 투병이라는 시련까지 겪었다.
그는 2005년 제작자로 변신해 ‘그녀가 돌아왔다’ ‘나도야 간다’ 등을 제작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탓에 재정난에 시달리던 김주승은 2007년 이혼한 후 재발한 췌장암 탓에 요양생활을 하다 같은 해 8월 사망했다.
tmi: 장영자의 근황(?)
대학시절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와 화술이 우수(?)했다는 장영자
장영자는 세상을 들썩인 이후, 1992년 가석방됐다.
그로부터 1년 7개월 후 두 번째로 구속된 장영자.
금융실명제로 본인 명의로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장영자는 주변 사람의 이름을 빌려 어음 사기를 쳤다. 당시 사기 금액은 140억원이었다.
당시 장영자가 명의를 빌린 사람 중에는 사위였던 故김주승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장영자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장영자는 또 다시 사기 사건으로 구속됐다. 구권 화폐 사기였다.
당시 장영자는 수조원대 구권 자금이 있다며 신권을 주면 구권에 50%를 얹어주겠다며 220억원을 챙겼다.
가석방 당시 남아 있던 형량까지 더해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장영자는 5, 60대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고, 2015년 만기 출소했다.
=> 사기 버릇 못 고치고, 계속 몇백억씩 사기 치다 걸려서 계속 옥살이를 하다가, 현재 출소했음
아마 꿍쳐둔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면서 제 버릇 남 못 주고 또 사기치고 있을 확률이 높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