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까만 머리에 키는 작고 못생긴데다 성질은 개떡 같은 애.”
얼핏 들으면 영락없는 비하 발언이다. 하지만 누가 어떤 맥락에서 이 캐릭터를 설명했는지 들으면 수긍이 간다. 1980년대 국내 TV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이끈 작품 속 주인공에 대한 원작자의 설명이기 때문이다.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로 ‘하니 시리즈’의 인기를 정상에 올려놓은 만화가 이진주 작가(70·본명 이세권)가 말한 주인공 ‘하니’의 캐릭터는 딱 이 모습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달릴 거’라던 하니는 제멋대로인 성격 때문에 그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도, 열 받게도 하지만 결국 아픔을 이기고 엄마에게 우승 메달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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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못난 애라도 주변의 도움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는 것이 이 작가가 말하는 하니의 인간승리 스토리의 배경이다. 4월 19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부가 각자 필명을 두 딸의 이름을 따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아내(고 이보배 작가)가 둘째 이름으로, 나는 첫째 이름으로 필명을 지었다. 데뷔 당시에는 다른 이름을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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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시리즈’의 초창기 순정만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순정을 집사람이랑 둘이 같이 해보자 그래서 하니를 주인공으로 하고 <하니와 황태자의 첫사랑> 같은 작품을 그 시절 그렸다. 처음엔 하니가 아니라 포니란 이름으로 해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포니 자동차가 있어서 안 된다 하더라. 그래서 영어로도 읽을 수 있는 하니(Honey)로 하고 한자로도 ‘물 하(河), 진흙 니(泥)’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15권짜리 <하니의 동그라미 사랑>도 하게 됐고.”
-<하니의 동그라미 사랑>은 보통 순정만화와는 달리 좀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그때부터 순정만화 바탕에 엉뚱한 캐릭터들을 쓴 코믹요소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의 풋사랑 얘기를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가벼운 쪽으로 승부하려던 때였다. 그 무렵부터 순정풍 작품은 집사람한테 주고, 나는 일본만화 <터치>처럼 상큼한 청소년들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때부터 하니 시리즈가 떠서 매달 고료도 알아 올려주고, 집으로 라면박스 한상자씩 편지가 올 정도로 인기였는데 집배원은 한숨 쉬더라.”
-그런 변화를 보이면서 <달려라 하니>부터 대박을 쳤다.
“말했듯이 하니 시리즈 순정물은 집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본격적인 청소년 만화로 가려던 참이라 <달려라 하니> 처음 구상할 때는 하니 캐릭터 대신 나애리를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다. 가제도 <새벽을 달려라>라고 붙여놓았지. 그런데 <보물섬> 쪽에서 하니를 주인공으로 넣어 달래. 작품이 좀더 연령대 낮은 아이들에 맞춘 거라, 결국 키 작고 못 생기고 성질 개떡 같은 캐릭터로 바꿨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만화가들 사이에서 ‘육상 만화는 망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스포츠물은 복싱·야구·축구만 있던 때라. 그래도 코믹 감각 넣어서 만들고 1986년에 아시안게임 임춘애 선수 금메달 딴 일도 있어서 1987년 연재 끝날 때까지 인기 끌었다.”
-연재 종료 후 곧이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계속 인기가도를 달렸다.
“88 서울올림픽도 열리고 당시 육상이 인기가 있어서 KBS가 13부작으로 만들자고 하더라. 올림픽 주최하는데 외국인들이 한국 와서 TV 틀면 일본 만화나 디즈니만 나와선 안 되겠다고 한 거지. 그때는 원작 제공해주고 콘티 만들 때도 참견했다. 녹음실도 같이 가고. 결국 히트 치니까 인터뷰 요청이 엄청 들어왔다. 집사람 보고 인터뷰 나가라고 했는데 집사람은 나보다 더 은둔형이라 ‘책상에 박혀 죽으면 죽었지 못 나간다’ 그랬다. 결국 내가 인터뷰에 나가면서 하니 시리즈 그린 이진주 역할을 계속 맡게 됐고, 집사람은 이보배란 이름으로 따로 ‘깨몽 시리즈’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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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선 여성 주인공이 전면에 나오는 게 흔치 않았다.
“둘째 딸 낳고 애들이 모두 여자이니까 주인공도 여자로 했다. 하니는 따지고 보면 삐딱한 애야. 라이벌들이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애들이고. 하니는 주변에서 감싸 안아줘 성장할 수 있게 된 거지. 목에 힘을 안 준 그런 캐릭터는 우리 딸이나 조카들처럼 주변에 있는 흔한 아이들 모습을 반영했다. 딸이 수학공부는 잘 못 하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넣은 거다. 그밖에도 주변 사람들을 캐릭터 녹여야 나는 스토리가 잘 풀리더라. 반면 홍두깨 선생님은 어릴 적 선생님이 있는 집 자식만 대우해주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어 ‘저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었고. 하니 새엄마 유지애는 당시 잘나가던 배우 유지인씨 보고 캐릭터를 잡았다.”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가 인기를 끈 뒤 나온 차기작이 <천방지축 하니>였는데 둘 다 성공했다.
“<달려라 하니>가 인기를 끄니까 방송국에서 바로 속편을 달라고 하는데, 그때는 마라톤을 하는 하니로 속편 생각했다. 그런데 워낙 시일이 촉박하니까 결국 이전에 <천방지축 오소리>라고 하니와 비슷하지만 다른 캐릭터가 나온 2권짜리 출판만화에 양념을 더 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좀 어리둥절했지. 두 작품이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니까. 일이 너무 몰리니까 여기저기서 의뢰는 많이 들어오는데 다 받을 수가 없어 거절하다 보니 ‘많이 컸네’ 그러면서 업계에서 욕도 많이 먹었다.”
-이후 하니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차기작을 만들려는 시도도 계속 있었던 것 같다.
“시놉시스까지 다 짜놓았다. 케냐에 동물보호 자원봉사를 간 하니가 동물들과 교감하고 동물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줄거리다. 그런데 지자체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해놓고 시간 지나니 사업이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또 다른 제작사들도 찾아왔다가 실패할 걱정 때문에 저예산으로 하자 그러니, 내 입장에선 하니를 노처녀로 끼고 살면 모를까 아무 데나 보내긴 싫어 관뒀다. 한때는 지브리 스튜디오처럼 내가 직접 나서서 기념관도 꾸미는 게 꿈이었는데 국내 여건에선 그것도 힘들더라.”
김태훈 기자 anarq@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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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보기 https://news.v.daum.net/v/20210524100620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