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씁니다.txt
4,520 73
2021.05.20 00:33
4,520 73

1447d107f0ba93c8a782638d1995af29df6a7954


더 잘 살기 위해 더 많이 읽고 씁니다
사는 건 그냥 살 수 있는데 잘 사는 건 어렵다. 뭐가 잘 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2018 . 11 . 23

얼마 전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대학 졸업 연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은 ‘이것은 물이다’. 그는 한 대학의 졸업식장에 초청되어 이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이제 사회로 내던져질 졸업생들에게 당부한다.

축제의 시간은 짧고, 인생은 길다.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 사회를, 이 삶을,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타인들을,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건 그냥 살 수 있는데 잘 사는 건 어렵다. 뭐가 잘 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급하게 의견을 쏟아내고 강하게 주장을 펼친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않아야 할지 결정하기도 어렵다. 나보다 나은 사람 때문에 배가 아프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의식을 느낀다. 그 와중에 내 뒤에 있는 사람, 나로 인해 뒤처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기란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저 ‘사는 기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나를 과연 나는,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원래 책을 별로 안 읽었다. 책을 싫어한다거나, 책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에 한두 권 읽으면 많이 읽는 수준이었다. 그때 내가 책을 잘 안 읽었던 이유는 세상은 몸으로 부딪치는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책을 잡고 있을 시간에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행동하고 싶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세상을 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이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기 성찰이라기보다는 자아비판이나 자기방어에 가까웠다.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30대가 되면서부터였다. 갑자기 내가 너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좀 더 알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상담이라도 받고 싶었는데, 상담은 부담스러우니 책이라도 읽어야 했다. 그렇게 30대의 10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책을 손에 잡고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이 고구마 줄기라도 캐듯 줄줄이 딸려 나왔다.

책은 직접적인 문장으로 내게 무언가를 일러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나 스스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책 속의 인물들에 나를 이입했고, 그러다 보면 ‘나라고 해도 별수 없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어떤 아름답고 추하고 사악하고 선한 것들이 숨어 있는지를 깨달을 때도 있었다.


7b48f82e746236965ec65a9198af2516c71facee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말한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전보다 1mm라도 나은 사람이 되는 쪽으로 움직였다면 그것은 모두 책 덕분이다.

얼마 전에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하루하루는 버스 바퀴처럼 굴러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다른 꿈을 꾸는 아내가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패터슨은 버스 회사까지 걸어가 하루 종일 같은 노선을 빙빙 돌며 버스를 운전하고 승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매일 달라지는 그녀의 꿈(여기에서의 꿈은 미래의 계획)을 듣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가는 길에 단골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마신다. 이렇게 똑같은 생활 틈틈이 그는 시를 쓴다.

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들과 놀라운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패터슨이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사람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시인 김소연의 표현대로라면 ‘겹눈’이 생긴다. 좀 더 과장하자면 그로 인해 그의 삶은 고결해진다. 그가 고결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 고결하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것. 그게 뭐 밥 먹여주느냐,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런 냉소적인 말에는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고 쓰는 일을 통해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도 의미를 얻는다. 우리의 인생에는 성취의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살아갈수록 원하는 것을 영영 손에 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거나, 가진 것들마저 하나씩 잃어갈 것이다.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우리가 이룬 것들, 그리고 끝내는 우리 자신까지도.

그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끝까지 이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의미를,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찾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노력해 왔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 그 의미를 마음에 품은 사람은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너무 똑똑했던 사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스스로 생을 끝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871호 – think]
Writer 한수희 kazmikgirl@naver.com
책 『온전히 나답게』,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저자
illustrator 강한

댓글 7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더쿠 X 벨먼 크리미 스크럽 바디워시 체험단 30인 모집 288 07.10 23,086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794,894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282,410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691,454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550,697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89,33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0 21.08.23 8,647,929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548,75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9 20.05.17 8,773,34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55,56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70,028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13503 유머 구교환 성대모사하는 방법 1 09:08 127
3113502 이슈 홀란드와 벨링엄 24 08:56 2,730
3113501 이슈 윈터의 반려견 뽀뇨에게 레몬옷 선물한 트와이스 나연 3 08:54 2,260
3113500 이슈 [KBO] 올스타에는 낭만이 있다 10 08:50 2,098
3113499 이슈 [경기종료] 노르웨이 1 : 잉글랜드 2 90 08:47 6,023
3113498 유머 부서마다 이렇게 업무분장 때 기피업무를 겸허히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음 16 08:39 5,660
3113497 유머 해외에서 주드 벨링엄 부모님이 유명한 이유 71 08:34 11,086
3113496 유머 어제 지하철역에 존예여자랑 못생긴 남자랑 팔짱끼고 가는데 어떤 할배가....jpg 88 08:18 17,324
3113495 정보 신한플러스/플레이 정답 9 08:18 394
3113494 이슈 [실시간] 노르웨이 1 : 잉글랜드 2 27 08:10 3,745
3113493 정보 네이버페이12원 34 08:06 1,806
3113492 기사/뉴스 [속보] 이란 혁명수비대 "호르무즈 해협, 추가 공지시까지 폐쇄" 22 07:50 2,794
3113491 유머 🐱🐹🐶너 어디출신 귀여워야? 20 07:45 2,466
3113490 이슈 [김부장] 소지섭 : 민지야 아빠왔다, 집에 가자 5 07:43 3,952
3113489 유머 이광수 : 난 보통 말을 끌고다니는 역할이였어.. 너같은 섀퀴들이 뒤에 타있고..ㅋㅋ 16 07:43 4,253
3113488 기사/뉴스 [단독]송혜교, AAP 출신이 세운 새 소속사로 이적 7 07:39 4,867
3113487 이슈 남편이 진행하는 예능에 드라마 홍보하러 나온 아오이 유우 23 07:27 7,267
3113486 이슈 SBS 김부장 시청률 추이 95 07:18 15,227
3113485 이슈 [실시간] 노르웨이 2 : 잉글랜드 1 - VAR 후 득점 취소 다시 1:1 22 07:17 4,689
3113484 유머 눈 온 날 폴라로이드로 하얀 개를 찍으면 나오는 사진 14 07:12 5,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