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비밀결사 광복군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1888년 출생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이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일본군에 복무한다
이후 무타구치 렌야는 일본군에 있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되는데 그 시작은 중일전쟁이었다
https://img.theqoo.net/hHDEF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일본은 중국 국민 정부와 외교적 협상 결렬때문에 베이징에 주둔한 일본군들에게 사격훈련을 시키며 무력시위를 한다
어느날 밤 주둔지 인근에서 총성이 났고 급히 점호를 하게되는데 인원한명이 부족했고 중국이 공격했다고 생각한 무타구치는 무작정 공격명령을 내린다
1937년 7월 이 일개 연대장의 명령으로 일본은 중국을 공격하였고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게다가 이 노구교사건 직후 작전회의에선 공격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팔에 붕대를 차고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엄청난 이야기도 겨우 무타구치의 데뷔전일 뿐이었다 이후 태평양전쟁에선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
https://img.theqoo.net/pmYdO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그는 노구교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을 터트렸지만 의외로 멀쩡하게 일본군에 복무했고 진급도 순조로웠다
그는 태평양 전쟁중 많은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보급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법이다”
“무기의 부족이 패배의 원인이 될수없다”
“ 탄환이 없다면 총검이 있잖은가. 총검이 없다면 맨손으로 싸우는 거다. 맨손도 쓸 수 없다면 발로 걷어차라. 발도 쓸 수 없다면 입으로 물어뜯어라. 일본 남자에게 야마토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식량은 자동차대신 소나 말에 싣고가다가 포탄을 다쓰면 필요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일본은 원래부터 초식 동물이다 푸른산에 둘러 쌓여있으니 식량이 부족할수가 있나?”
이처럼 무타구치는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웃다가 쓰러질거같은 엄청난 어록들을 남긴다
정신나간 어록만큼 그의 작전은 말할 필요도 없었는데...
https://img.theqoo.net/XxFGl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임팔 작전-
1944년중 무타구치는 미얀마에서 산을 넘어 인도로 진격해 공격하는 계획을 세운다
(로마를 공격한 한니발을 생각한건가)
결국 일본군은 산악을 넘게되는 데
https://gfycat.com/VariableSevereFalcon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그 산악이 장난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군은 개인이 휴대할수 있는 최대한의 물품을 들고 행군을 시작한다
무타구치는 보급은 그렇다 치고 지형과 적군도 모두 무시하고 15일안에 넘을수 있다는 미친생각을 하고있었다
https://img.theqoo.net/LgcoR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구불구불한 지형과 밀림때문에 행군도 느렸고 결국 보급도 끊긴 일본군은 급기야 무타구치의 어록대로 풀뜯어 먹고 뱀도 잡아먹고 극한의 상황까지간다
거기에 영국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전멸하게된다
9만명이 되던 병사들은 4만명이 아사하고 3만명 이상 다치거나 죽는다
무타구치는 그렇게 죽다 살아온 병사들을 마음대로 퇴각했다고 연병장에 세우고 호통을 쳤다고한다
이후 일본군은 거의 괴멸하였고 무타구치는 부관에게 이대로 자결할까 묻는다
부관은 권총을 주며 조용히 자살을 권유하였는데 이대로 죽겠냐? 역시 안죽었다
https://img.theqoo.net/PbVDT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그의 행적은 전후에도 계속된다
전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된 무타구치는 재판에 나서는데
“저새끼는 왜 여기있냐? 훈장 받으러 왔냐”
아라키 사다오-당시 일본육군 예비역 대장
재판하던 당시 판사와 검사도 그의 행적을 보고 웃었다고한다
2년간 감방생활의 좋은 생활때문인지 살이쪄서 일본으로 돌아왔고 국내 재판엔 기소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낮은 형벌을 받은이유는 전쟁범죄의 이력이 없는 이유도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하고 자신 휘하의 부대는 약탈을 일절 금했다고 한다
무타구치는 임팔 작전 실패에 대한 반성과 패전의 부담감 때문에 1960년까지 공식적인 자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2년 영국군 중위였던 파커로부터 ‘임팔 작전은 좋은 발상이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것을 계기로, 무타구치는 “나의 작전은 정당했다. 부하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1966년 사망할 때 가족에게 유언을 남겨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팸플릿을 장례식장에서 배포하도록 하기도 했다.
진짜 명예독립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만한 인물인거 같다
이후 잘살다가 1966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는 항상 남탓을했다는데
내잘못이 아니야! 부하잘못이야!
라며 끝까지 임팔작전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 렌야짱이라고 불리는 지...
1888년 출생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이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일본군에 복무한다
이후 무타구치 렌야는 일본군에 있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되는데 그 시작은 중일전쟁이었다
https://img.theqoo.net/hHDEF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일본은 중국 국민 정부와 외교적 협상 결렬때문에 베이징에 주둔한 일본군들에게 사격훈련을 시키며 무력시위를 한다
어느날 밤 주둔지 인근에서 총성이 났고 급히 점호를 하게되는데 인원한명이 부족했고 중국이 공격했다고 생각한 무타구치는 무작정 공격명령을 내린다
1937년 7월 이 일개 연대장의 명령으로 일본은 중국을 공격하였고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게다가 이 노구교사건 직후 작전회의에선 공격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팔에 붕대를 차고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엄청난 이야기도 겨우 무타구치의 데뷔전일 뿐이었다 이후 태평양전쟁에선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
https://img.theqoo.net/pmYdO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그는 노구교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을 터트렸지만 의외로 멀쩡하게 일본군에 복무했고 진급도 순조로웠다
그는 태평양 전쟁중 많은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보급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법이다”
“무기의 부족이 패배의 원인이 될수없다”
“ 탄환이 없다면 총검이 있잖은가. 총검이 없다면 맨손으로 싸우는 거다. 맨손도 쓸 수 없다면 발로 걷어차라. 발도 쓸 수 없다면 입으로 물어뜯어라. 일본 남자에게 야마토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식량은 자동차대신 소나 말에 싣고가다가 포탄을 다쓰면 필요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일본은 원래부터 초식 동물이다 푸른산에 둘러 쌓여있으니 식량이 부족할수가 있나?”
이처럼 무타구치는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웃다가 쓰러질거같은 엄청난 어록들을 남긴다
정신나간 어록만큼 그의 작전은 말할 필요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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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임팔 작전-
1944년중 무타구치는 미얀마에서 산을 넘어 인도로 진격해 공격하는 계획을 세운다
(로마를 공격한 한니발을 생각한건가)
결국 일본군은 산악을 넘게되는 데
https://gfycat.com/VariableSevereFalcon
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그 산악이 장난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군은 개인이 휴대할수 있는 최대한의 물품을 들고 행군을 시작한다
무타구치는 보급은 그렇다 치고 지형과 적군도 모두 무시하고 15일안에 넘을수 있다는 미친생각을 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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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구불구불한 지형과 밀림때문에 행군도 느렸고 결국 보급도 끊긴 일본군은 급기야 무타구치의 어록대로 풀뜯어 먹고 뱀도 잡아먹고 극한의 상황까지간다
거기에 영국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전멸하게된다
9만명이 되던 병사들은 4만명이 아사하고 3만명 이상 다치거나 죽는다
무타구치는 그렇게 죽다 살아온 병사들을 마음대로 퇴각했다고 연병장에 세우고 호통을 쳤다고한다
이후 일본군은 거의 괴멸하였고 무타구치는 부관에게 이대로 자결할까 묻는다
부관은 권총을 주며 조용히 자살을 권유하였는데 이대로 죽겠냐? 역시 안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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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설 무타구치 렌야의 일화들
그의 행적은 전후에도 계속된다
전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된 무타구치는 재판에 나서는데
“저새끼는 왜 여기있냐? 훈장 받으러 왔냐”
아라키 사다오-당시 일본육군 예비역 대장
재판하던 당시 판사와 검사도 그의 행적을 보고 웃었다고한다
2년간 감방생활의 좋은 생활때문인지 살이쪄서 일본으로 돌아왔고 국내 재판엔 기소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낮은 형벌을 받은이유는 전쟁범죄의 이력이 없는 이유도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하고 자신 휘하의 부대는 약탈을 일절 금했다고 한다
무타구치는 임팔 작전 실패에 대한 반성과 패전의 부담감 때문에 1960년까지 공식적인 자리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2년 영국군 중위였던 파커로부터 ‘임팔 작전은 좋은 발상이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것을 계기로, 무타구치는 “나의 작전은 정당했다. 부하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1966년 사망할 때 가족에게 유언을 남겨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팸플릿을 장례식장에서 배포하도록 하기도 했다.
진짜 명예독립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만한 인물인거 같다
이후 잘살다가 1966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는 항상 남탓을했다는데
내잘못이 아니야! 부하잘못이야!
라며 끝까지 임팔작전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 렌야짱이라고 불리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