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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딸 보러 온 할머니…속절없이 집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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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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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사람이 있던 자리를 '기계'가 빠르게 채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바뀌었네"하고 적응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냥 그걸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힘듦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것 좀 도와줘요"하기도 민망하고, 또 아예 사람이 없기도 하니까요. 비용 절감과 편리란 미명하에 많은 어르신들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조금의 배려만으로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신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린 누구나 나이가 듭니다.

[[디지털 배려-②]함께 생각해봐야 할 그들의 어려움…딸 물건 살 때 황급히 따라나선 아빠, "무인 계산대 걱정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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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한 독자가 목격한 얘기다. 이웃집 앞에 한 어르신이 서 있었다. 자녀 집에 찾아온 거였다. "왜 들어가지 못하고 계시느냐" 물었더니 디지털 도어락을 가리켰다. 덮개를 열고 숫자 버튼을 누르던 게 익숙했던 그는, 터치 스크린 앞에서 무너졌다. 어떻게 화면을 깨울지 몰랐다. 독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일인데, 처음 쓰는 어르신께는 많이 불편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년층이 디지털 기기 앞에서 작아진 사례는 생각보다 더 많았다. 깊고도 세심하게 헤아려야 한단 얘기다. 최대한 사례를 많이 모아봤다. '아, 이럴수도 있겠구나'라 생각하고, 그들 입장에서 한 번쯤 헤아렸으면 해서. 이들이 겪는 일상의 흐름을 따라가보기를.


1. 이들의 일상, 알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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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계 앞에서, 어떤 이들은 한참을 그냥 바라봐야만 했다는 것을./사진=뉴스1



우선 기계 앞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이랬다. 흔히 우리가 이용했던 장소들, 그곳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보내고 있었다.


①햄버거 가게
평일 점심 시간이었다. 여긴 키오스크(무인 단말기) 3대만 있었고, 밥 먹을 때라 줄이 길었다. A씨 앞에 서 있던 여성(50대)은 키오스크를 몇 번 누르더니, 당황해 했다. 그러더니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방법을 알려주자 그 여성은 "고마워요. 사실 이런 상황이 한 두 번이 아녔어요. 눈치 보여서 음식점을 그냥 나간 적도 많았어요"라고 했다. A씨는 "키오스크 주문을 돕는 직원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②떡볶이집
B씨의 남편 C씨는 곧 50세를 앞두고 있다. 어느 날은 분식집에 홀로 갔다가 진땀을 흘렸다고 했다. 처음 써보는 키오스크 앞에서 30분 넘게 고생을 했다고. 직원이 근처에 있었으나 모른척했다고. C씨는 떡볶이와 다른 메뉴도 사오고 싶었으나, 떡볶이 2인분만 겨우 사왔단다. "너무 힘들어서 못 사왔어."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했다.

③기차역
D씨는 명절 때만 되면 어르신들이 새벽부터 기차역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고 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이들은 '새로고침' 몇 번만 하면 명절 기차표를 구할 수 있는데, 몇 시간씩 기다리는 걸 보며 속상하다고.

④은행
E씨가 은행에 갔을 때였다. 어르신 한 분이 왔다. 발급 때문에 상담 받으러 왔다 했더니 청원 경찰이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으니 OO(해당 은행 앱)를 실행시켜달라"고 했다. 어르신은 "OO요? OO가 뭐지"이러며 의아해 했다. 그러자 청원 경찰은 재차 "OO를 실행시키시면 돼요"하며 다그쳤다고. 결국 어르신은 "나중에 오겠다"며 은행을 나갔다. E씨는 "부모님 생각도 나고 해서 옆에서 보기가 불편했다"고 했다.

2. 모르면 아예 못하는 것들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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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놀이기구와 시설을 '스마트 줄서기'로 대체한 놀이공원. 방역과 편의를 위해서란 취지엔 공감하지만, 고려해야할 이들이 있었다./사진=o놀이공원



어려운 것뿐이면 그나마 낫다. 피하거나 대체재라도 찾으면 되니까. 그러나 모르면 아예 불가능한 것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①스마트 줄서기
놀이공원에 갔다. 그런데 인기 있는 놀이기구, 특정 동물 관람, 이런 건 스마트폰 앱으로 미리 신청해야 볼 수 있었다. 입장할 때도 QR 코드를 등록해야만 가능했다. 이른바 '스마트 줄서기' 전용이었다. 현장에서 줄서는 건 아예 허용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여파인 것 같다고 했다 . 스마트폰을 잘 쓰는 10대 학생들도 당황해했다. 하물며 어르신들은 어떨까. F씨는 "코로나19 시국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예약하며 이용하니 시간도 절약돼 좋았지만, 한편으론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는 기분이 들어 뭔가 기분이 씁쓸했다"고 했다.

꽤 많은 맛집들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원격 줄서기 앱을 통해서다. G씨는 80대인 엄마를 모시고 일식을 먹으러 갔다. 현장서 기다리면 되겠거니 했는데, 마감됐다며 앱을 이용하란 안내가 붙어 있었다. 엄마에게 설명하자 "그게 뭐냐"하며 의아해했다. G씨는 "어르신들끼리 왔다면 아예 이용하지 못했겠구나 생각이 들었었다"고 했다.

②영화제 티켓 발권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일했었단다. H씨 얘기다.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종이 티켓을 아예 발권하지 않았다고. 문의가 많았었다고 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표를 사라고 이렇게 하는 건가요"하면서. 모든 관객이 워터마크가 찍힌 모바일 티켓을, 핸드폰 앱에 발권 받아야 했다. 직원들도, 관객들도 힘들었다고 했다.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더 많이.

③택시앱으로 택시타기
택시는 당연히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탈 수 있다. 그런데 특정 지역에서 잘 안 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 콜택시 앱을 이용하면 잘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 경험담도 있었다.

ㅅ 지역에선 택시 잡기가 엄청 힘들었단다. I씨는 어느 날 버스가 안 오는 걸 보고,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타려 했다. 그런데 빈 택시가 있어도 잡히지 않았다. 결국 콜택시 앱을 설치해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었다. 기사는 "여기선 호출이 아니면 택시를 그냥 잡기 힘들다"고 했다.

3. 도움 받기도 힘들어요, 그나마 자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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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설치된 무인 단말기를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장님./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나 도움 받기는 쉽지가 않다. 현장에선 도움 줄 사람이 없거나 바쁘고, 그나마 자녀 뿐인데 그것도 관계에 따라서.

①여력이 없는 가게
역 앞에 있다는 우동 가게. 가격이 저렴하고 홀로 오는 이들이 많아, 지나가던 어르신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무인 주문 방식이었다. 그곳을 자주 이용하는 J씨는 어르신들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걸 많이 봤단다. 메뉴판을 보는 것, 터치 스크린, 결제까지. 난관이 너무 많다고.

그럴 때 주문이 막히면 도움이 필요한데, 가게엔 직원 수도 많지 않고 손님들도 이어폰을 끼고 밥 먹기 바빠 주변에 관심이 많지 않다고 했다. J씨는 "모두 편리하자고 만든 키오스크 때문에, 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점심이 누군가에겐 몇 배로 소요된다"고 했다.

②아이스크림 못 먹은 부모님
이번엔 QR 코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 K씨 아버지는 59년생, 어머니는 66년생이란다. 어느 날 두 분이 백화점에 가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QR코드 체크인을 하라고 했단다. 잘 썼었는데 작동이 안 돼 K씨 어머니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수기로 쓰겠다"고 했더니 "수기 작성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아무도 부모님에게 관심도 없고,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그래서 결국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고 나왔다고 했다. K씨 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단다. "너무 당황해서 놀라기도 했고, 엄마가 스스로 많이 늙었단 생각이 들더라." K씨는 "요즘 부모님들에겐 QR코드도 너무 어려운데, 수기 작성도 꼭 같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옆에서 챙겨드리지 못하니 너무 속상했다"고 했다.

③딸이 물건 사러갈 때 후다닥 따라나선 아버지
L씨 아버지는 사고 싶었던 물건이 있었다. 그런데 동네 마트에 없었다고. 그래서 딸인 L씨에게 ㄷ생활용품 가게에 가자고 졸랐다. L씨는 '집 앞에 있는 곳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하는 분이 아닌데'하며 의아해하며 아버지와 함께 가게로 갔다.

계산할 때 쓱 나가서 문 앞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를 보고 L씨는 눈치를 챘다. 지난해 가족들과 "ㄷ생활용품 가게 셀프 계산대로 다 바뀌었더라. 신기해"라고 대화한 적이 있었는데, 계산해주는 직원이 없을까봐 딸에게 가자고 한 거였다고. L씨는 "그거 보고 같이 많이 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④쇼핑앱도 자녀들이 깔아줘야 쓴다고
올해 60세인 M씨의 어머니는 식품 공장에서 일한다. 공장 동료들 중엔 또래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어느 날, M씨 어머니는 그에게 이런 얘길 들려줬다. "우리 또래는 자식들이 ㅋ쇼핑앱을 깔아줘야 쓸 수 있어. 그런데 자식들이랑 사이 좋은 사람은 깔아줘서 쓰는 거고, 데면데면하면 깔줄 모르니까 못써."

그 말을 듣고 슬펐다던 M씨는 "생각해보니 시골 마을에 갔을 때도 60대 어머니 한 분께 쇼핑앱을 깔아 드렸는데, '너무 잘 쓰고 있다'는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배달 서비스가 더 필요했을텐데도, 그런 서비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거라고.


4. 사람을 다는 없애지 마세요, 그리고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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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마트 셀프계산대에서 손님들이 모를 때 도와주는 어르신 직원(우측)./사진=남형도 기자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난감하고 당황해할 이들을 위해 알려줄 '사람'을 남겨 놓는 거다. 무인 기계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 도우미'다. 이를 어르신 일자리로 활용하는 곳도 눈에 띄었다.

서울 서초구 소재 ㄱ병원엔 수납 및 처방전 발행을 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층마다 배치해뒀다. 그런데 다른 점은 기계 바로 옆에, 어르신 도우미가 서 있다는 것. 도우미 어르신은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다니며, 기계 앞에서 작아진 환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어떤 것 하시려고 하느냐, 환자 번호는 어떻게 되느냐, 약국에 들르실 거냐, 이리 꼼꼼하게 물으면서. 수납도, 처방전 발행도 척척이었다. 그리 되는 거였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ㅇ마트 셀프 계산대에도 어르신 도우미가 있었다. 그는 다가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며 손님들 계산을 도왔다.

배우니 잘할 수 있게 됐다던 어르신도 꽤 됐다. 알려 드리면 되는 거였다. 병원 키오스크를 홀로 하던 심연수 할머니(79)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계속 알려주니 혼자서도 제법 할 수 있게 됐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은 이런 거였다. "잘 몰라도,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죽지 않고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디지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교육도 필요하다. 유연경씨(26)는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마다 부모님이 직접 하실 수 있게 천천히 옆에서 알려드렸더니, 지금은 조금 서툴어도 두려움 없이 차근차근 하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노인복지관에서 근무한다는 사회복지사 N씨는 "어르신들이 당연히 못할 거라 생각하고 키오스크를 시도조차 안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배운 적도 없으셔서, 복지관에서도 키오스크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55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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