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안녕! 신카이 마코토 대표 작품인 '너의 이름은' 다들 알지?
가장 대중성 높게 사랑받은 작품인 만큼 후속작에 기대가 높았을 거야.
하지만 일본 불매 & 전작이 '너의 이름은' 것과 합쳐서
신카이 작품들 중 역대급으로 개연성 & 스토리 에서 혹평을 겁나 많이 먹었는데

엔딩을 다 본 순간
개연성 왜 이따구임
뭘 전하고 싶은거임
엔딩 왜이럼
총 개뜬금없네
남주 싸이코임?
사랑 땜에 도쿄 물바다 만들고 우리가 세카이를 바꿨어 ㅇㅈㄹ
등등
엔딩까지 다 보고 나면 아마 대부분 이런 생각이었을거야.

왜 날씨의 아이는 너의 이름은 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의미가 전해준다고 생각해.
난 그걸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됐어! 최근 넷플에도 뜨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서ㅎ.ㅎ
(그냥 별로였는데, 걍 노잼이었음 이런 사람들 위해 쓰는거 아님.)
필력 솜씨 딸려서 이해 못할 수도 있는데 최대한 이해가도록 써볼게!
그럼 시작할게 ㅎㅎ
※ 스토리 해석 위주기 때문에 스포가 있어 ※
아, 참고로 신카이 감독 인터뷰에
신카이 마코토 : "새로운 도전과제로 본 사람들의 찬/반 의견이 나뉘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에게 공감해! or 용서할 수 없어! 그러한 다양한 반응들을 보고
이 시대 관객들의 모습이 작품을 통해서 저에게 조금은 보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내용이 있어, 날씨의 아이는 호불호를 노리고 만든 작품이라는 걸 먼저 알아두자!

영화 초반에 호다카가 임시로 묵는 곳에 등장하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가출 청소년 홀든이 뉴욕을 방황하며 어른, 사회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소설이야.
홀든, 호다카 둘 다 가출을 했고
대도시(뉴욕, 도쿄)를 떠돈다는 행보가 비슷하지.

홀든이 어른과 사회를 싫어했듯
호다카에게도 어른과 사회는 답답하고 무서운 존재야.
(호다카가 초반 반복적으로 하는 대사, "도쿄는 무섭네")
실제로 호다카는 도쿄에 오자마자 많은 수난을 겪는데
생명 구해준 보답으로 웬 아저씨(스가)한테 맥주값 뜯기고
알바 면접도 맨날 탈락, 심지어 업소 양아치 쉐끼한테 비웃음까지 사게 돼.


게다가 우연히 총까지 주워.
그리곤 다시 가방에 황급히 숨겨.
이후 에이 설마, 장난감일듯ㅎㅎ 하며 호다카는 내내 총을 부적마냥 소지하고 다녀.
일단 총에 대한 건 좀 미루고 호다카의 가출 이유는 뭘까?
작중 자세하게 나오진 않는데 유추할 수 있는 떡밥이 몇 개 있어.
1. 독백에서 나오는 '섬에 살던 때' = 작고 갑갑한 공간
2. 호다카의 얼굴에 상처를 가린 밴드들 = 폭력
3. 16년 인생 쌩판 첨 본 여자애가 준 햄버거가 가장 맛있는 저녁식사였다는 독백 = 무관심
4. 히나가 왜 가출했냐고 묻자, 동네도 부모님도 왠지 숨 막혀서. = 청소년기에 느끼는 답답함.
홀든이 사회에 반감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없듯
청소년기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답답하게 여기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지.
애당초 가출하고 나서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시작인거야.
청소년이 왜 가출을 했는가에 대한 '과거'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현재'를 담았다고 보면 되겠지.

이 답답한 호다카의 심정을 반영한 게 바로 도쿄의 '비내리는 날씨'.
기껏 도쿄에 왔는데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 비가 내려.

그리고 그 비를 멈추게 해준 게, 본 작품의 히로인 '히나'야.
히나는 처음 맥도날드에서 굶고 있는 호다카에게 햄버거를 주는 장면으로 등장해.
그런 히나가 물장사를 하려고 어른들과 함께 가는 장면을 목격한 호다카가
주웠던 총으로 어른들과 대립하며 햄버거 이후로 둘은 재회해.
여기서 총은 작중에 두 번 발사되는데 첫 발사의 의미는 두개로 나뉘어.
1. 물장사 업주로부터 히나를 구하기 위해
2. 히나가 억지로 끌려간 게 아니었단 걸 알게되고 절망감, 수치심이 몰림.
호다카가 권총을 쏘기 직전 나오는
심장 개빠른 브금 + 떨리는 숨소리의 연출
첫 발은 감정 조절에 실패해 충동적으로 쏜 거라는 느낌이 강하지.
호다카가 미숙한 청소년이란 걸 다시 한 번 보여줘.

자 그럼 히나에 대해 알아보자.
히나는 첨에 호다카보다 '연상'으로 등장해.
근데 영화 본 사람들 다 알듯이, 실제로 히나는 15살 호다카보다 '연하'야.
그럼에도 호다카보다 어른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동생과 도쿄라는 무서운 곳에서 생활하는 '소녀가장'
= 15살이란 걸 생각하면 적어도 초 - 중2 정도 사이에 동생이랑 단둘이 지냈단건데
이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건지 상상만 해도 알거야.
그리고 채소값 아끼려고 집에서 파도 키우는데다
충동적으로 총을 쏜 호다카에게 진심으로 화를 냈고
호다카가 약해질 때마다 먼저 위로해줬지.
히나는 호다카보다 어림에도 일반적인 나이 이상의 어른스러움을 보여줘.

이렇게 혼자 힘으로 도쿄에서 살아가며 순수하게 자신을 도와준 히나의 등장은
도쿄 하늘의 비를 멈춰주었고, 답답해하던 호다카가 더이상 그러지 않는 계기가 돼.
또 히나는 타인을 돕는 것에 '행복'을 느껴.
그걸 구체적으로 보여주는게
날씨 알바로 감사 인사를 받자 히나가 처음으로 밝게 미소 짓는 장면이야.
사실 히나는 날씨를 바꾸는 능력이 있음에도 이전까지 자신을 위해 쓴 적이 없어.
마찬가지로 불꽃놀이 장면에서도 히나는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호다카에게 말하지.

그런 히나는 맑은 날씨를 돌려놓기 위해 재물이 되어 '희생'까지 하게 돼.
이 장면 직후 히나가 사실 연하라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건 그동안 누군가를 도와주고 지켜주던 '어른스러운' 히나가 아닌
오히려 지킴 받았어야 할 그 나이대의 히나로 전환됨을 보여줘.
그래서 우리 호다카는 어캐 했을까

당근빳따 히나를 구하기 위해 경찰들에게서 도망치는 극단적 행동을 해.
히나가 세상을 위해 '희생'되는 건 불합리하니까.
그렇기에 경찰의 합리적인 행동들이 호다카의 입장에선 방해가 되는거지.
그럼 이건 경찰, 사회를 나쁘게 표현한 걸까?
경찰은 사회, 어른을 결합시킨 직업이고
그런 경찰을 이 영화에 아군으로 묘사하는 건, 영화 주제와 꽤나 반대가 되버려.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사회적 어른들이 아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어른들은 '순수함'의 이해자가 될 수 없어. 왜냐면 어른은 유능하니까.
스가가 말했듯,
어린애 한 명 희생해서 날씨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면 그게 합리적인게 맞으니까.

하지만 모든 어른이 순수함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야.
이해를 조금이라도 해주는 어른이 둘 등장하는데 바로 '나츠미'와 '스가'
초반부터 갈 곳 없는 호다카에게 일자리, 방까지 제공해준 둘은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라 볼 수 있어.
일단 나츠미는 계속 취업에 실패해서 삼촌인 스가의 사무소에서 일하는데다가
취업, 돈보단 오컬트, 비의 물고기 같은 수수께끼에 더 흥미를 보여.
그외 기사가 돈 되겠다는 호다카에게 스가처럼 재미없는 어른이 되겠네 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기 회사 자소서는 인상 구기고 보다가도 '하늘 물고기' 기사를 볼 땐 미소를 짓지.

그런 나츠미이기에 그 누구보다 호다카를 먼저 도와줘.
이 영화를 본 대부분 어른들이 호다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츠미는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호다카를 이해하고 도우려한거야.

하지만 반대로 스가는 호다카를 돕지 못해.
왜냐면 지켜야 할 존재, 딸이 있기 때문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가 또한 '완전한 어른'은 되지 못해.
스가도 가출해서 도쿄로 온 가출 청소년이었고
그렇게 사랑을 쫓았고, 아내를 사고로 안타깝게 잃었거든.
나츠미가 호다카와 스가가 닮았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지.
이런 스가는 딸이라는 지켜야 할 존재가 있기에
호다카를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어른스러우면서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돼.

자. 총 드디어 나왔다.
호다카는 이때 또 다시 총을 손에 쥐게 돼.
이제 이 총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볼게!
호다카는 이 총을 우연히 주웠지만, 호다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물건이야.
먼저 물장사와 시비가 붙었을 땐 잘못하면 사람 죽여서 감옥갈 뻔했고
경찰들은 이 총 때문에 호다카를 더 쫓으려 했었지.
부적일 줄 알았던 이 총은 부적은 커녕 주위를 더 산만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다른 의미로 부적인 걸 나타내주는데
바로 이 총을 쥐게 되는 순간.
아무리 강한 자라 한들 상대를 억누르고 자신이 발언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호다카가 일부로 하늘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 나와.
첫 발이 자기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채 충동적으로 쏜거라면
두 발은 자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쏜 게 강하지.
하지만 한 발은 잘못 쏘면 사람 죽여서 감옥 갈 뻔했고
두 발은 괜히 경찰들까지 몰려와서 대립하게 됐지.
결국 청소년이 무력한 상황에 놓이면 얼마나 이성판단을 할 수 없는가.
그렇기에 힘(총)을 다루는데 미숙한 청소년(호다카)을 보여주는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르는 척만 하고!"
현실의 어른들이야.
히나가 희생했음을 모르거나, 말해도 정신병 취급하고
스가처럼 희생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우리가 공공적인 목적에 소수를 희생시키고 그걸 모르는 척하는 거와 같다고 볼 수 있겠지.
또 어른들은 가출 청소년들이 어떤 사정이 있었는가에 큰 관심이 없어.
진심으로 질문을 던지는 어른은 현저히 적으며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어른이 대다수야.
신카이 마코토 : "평범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가출 이유 따윈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청소년에 대한 무관심.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고정관념.
그런 무시가 청소년을 어디로 내모는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청소년들은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
그걸 '총'이라는 매체로 표현했어.

그리고 당연히 어른(경찰)들은 그런 청소년(호다카)들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스가 만큼은 달랐던 거야.
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했던 호다카의 이야기는 정말 스가의 마음을 움직였고
스가는 자신에게 더 중요한 가치(사랑)를 깨닫고 호다카를 돕는 쪽으로 바뀌게 돼.

사실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건 너무 진부하고 뻔한 판타지지.
그래서 해당 장면에 흘러나오는 곡의 이름도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야.
그리고 해당 곡의 영화판 마지막 가사는,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어.'.
호다카가 히나를 만나러 갈 수 있었던 건 '사랑' 덕분이고
호다카의 사랑이 스가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스가의 도움으로 경찰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어.

히나에게 있어 자신보다 날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사회에
유일하게 자신에게 손을 뻗으며, '날씨보다 히나가 더 중요해'라고 말해주는 호다카가 있었고
히나는 처음으로 호다카보다 먼저 눈물을 흘려.
15살이라는 나이에 소녀가장이 되어 '자신'을 버리고 살아온 어른스러운 히나는
'이젠 너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라고 말해주는 호다카에게 어린아이 같이 웃으며 끄덕이고

둘은 다시 세계로 돌아오고 비는 다시 내리게 되는데
이때 히나의 목에 있는 초커? 가 갈라지는데 이건 더이상 히나가 '날씨의 무녀'가 아님을 뜻해.
결국 호다카는 다수를 위한 행복이 아닌 히나와 자신의 행복을 선택한거야.
사실 도쿄가 수몰되는 것 or 히나가 희생해 다수가 행복해지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고 누가 더 나쁜가에 대해서 말이 여러모로 많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이 영화에 명확한 '악인'은 없다는 거지.
그저 어른은 어른이 할 일을, 애들은 애들이 할 일을 할 뿐.
작품에서 다루는 건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함이야.

그리고 도쿄는 결국 수몰되는데
도쿄가 수몰된다는 것만으로 주인공이 무책임하다는 평가도 많아.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가 선택한 엔딩은
택시 대신 수상택시를 타고, 아이들은 비가 와도 웃으며
비가 와도 꽃놀이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람들 등등.
의외로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도쿄야.
하지만 이게 정말 옳은걸까? 싶기도 할거야.
대표적으로 타키 할머니 왈, 도쿄는 원래 바다였으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거다.


"세상은 어차피 원래부터 미쳐있었으니까."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올라온 호다카에게
원래부터 세상은 미쳐있었으니 너희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스가의 말.
결국 이 현상을 '너네 탓도 아니니 괜찮아.' 라는 식으로 얼버무린건가? 싶을거야.
그래서 호다카는 고민을 해.
나중에 히나를 만나면
원래 도쿄는 바다였고, 세상은 원래 미쳐있었으니
세상이 이렇게 된 건 우리 탓이 아니야..
... 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하고.
사실 호다카와 히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거긴 하지만
호다카, 히나에게 있어선 아무래도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테니까.

그리고 호다카는 기도하는 히나와 재회하는데
이때 무언가를 결심하며 인정하는 듯한 독백이 나와.
"아니, 역시 아니야. 그날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꿨어."
이는 너희 잘못이 아니란 좀 전까지의 어른들의 말을 부정하는 말이지.
그렇다고 이게 둘에게 책임이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
도쿄가 수몰된 원인은 어른들의 생활에서 나온 현상이라서 (자연재해 라던가)
원래 아이들이 희생할 필요도 책임 질 필요도 없거든.
(신카이 마코토 : "어른들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미루는 건 좋지 않다.")
그렇기에 호다카가 히나에게 해주는 말이, "우리들은 분명 괜찮을 거야."
우리의 행위가 이 결과를 만들었음을 인정하고
동시에 그래도 '괜찮을 거야'라고 이야기하는거야.
신카이는 끝까지 엔딩씬을 고민하다 엔딩곡(괜찮아) 가사를 보고 정하게 됐다고 해.

난 날씨의 아이가 호다카, 히나 같은 청소년들을 보는 어른의 시선을 온전히 담아냈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과연 당연하지 않으며
누구도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메시지를 전달해준 영화라고 생각해.
전작 '너의 이름은'이 무스비 같은 운명적 느낌이 많아서
이름을 모르는 너를 찾기 위한 시공을 초월한 사랑 느낌이라면
날씨의 아이는 현실의 문제를 넣어 어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느낌이라
너의 이름은 보다 어둡고, 진지하고,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거든.
최근 넷플에 날씨의 아이가 들어와서 사람들이 꽤나 보는거 같더라고!
물론 2-3번 정도 봐야하고 장면마다 해석이 필요하단 점에서 영화가 불친절하단 건 어쩔 수 없지만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겨줘서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겐 엄청 신선하고 좋은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