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0을 해봤으면 알 수 있는 오석산(수명증가효과)
건안삼신의로 화타와 묶여서 얘기되는 장중경이 만든 한약으로
중추신경에 작용해 흥분 효과를 일으키는 등 인체에 작용하는 효과로는 마약과 같고
성분상으로는 비소, 수은 등의 무기물이 주성분이어서 독약에 가까운 것인데
삼국지에 나오는 하안이 이 것을 먹고 피부가 아이처럼 된다고 해서 유행했고(수은 부작용)
위진남북조시절에 귀족층들이 오석산을 술에 타마시면서 노는 게 유행했는데
마약처럼 흥분효과를 주고, 최음제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함.
위에서 말한 하안의 청담사상이 위진남북조 시절 상류층에서 이어지면서 그런 분위기는 이어져갔고,
그런 문화가 약해진 북송시절까지 오석산의 유행은 계속됨.(약 400년?)
북위의 도무제
당나라의 헌종, 선종
이 사람들이 오석산에 의해서 갑자기 맛이 갔다고 의심이 가는 군주들이기도 함.
중국 민화들에 나오는 신선들 보면 하나같이 산 계곡이나 정자에서 헐렁한 옷 입고 배까고 누워있는 모습으로 그리는데, 그게 오석산 빨고 거의 나체로 뛰어댕기던 귀족 약쟁이들을 모티브로 한거임
먹으면 피부가 아이처럼 되는게 아니라 신경계가 망가져서 굉장히 예민해지고 붉게 달아오르는데 이걸 중국인들은 불로장생의 신선처럼 다시 어려진다고 생각했음.
피부가 너무 예민해지니 까끌까끌하거나 꽉 끼는 옷을 도저히 입을 수 없어서 굉장히 부드럽고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거의 다 앞옷을 열고다니거나, 아예 맨몸으로 뛰어다니기도 했음.
오석산이 유행하던게 아마 삼국시대 말기쯤으로 보이는데, 당시 암울했던 중국의 상황에 대해 무력감과 염세적임을 느낀 귀족 지식인들 층에서 현실도피용으로 많이 쓰던 마약으로 추정됨.
그리고 이 오석산은 한국에서도 나오는데

2010년 충남 부여, 백제의 제2 수도였던 웅진의 공산성이었던 곳에서 목판이 발견되었고,
백제의 목판에서 오석산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무려 90근(54kg 추정)에 해당하는 양이 있던 걸로 추측됨
국립부여박물관의 적외선 촬영 사진 등으로 볼 때 이 글씨는 ‘五石○十斤’으로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확히 읽을 수 없었던 가운데 글자 ○는 ‘九’자로 보인다는 것이 서예사 전문가의 판단이다. 서예사 전문가 손환일 박사는 “숫자 뒤에 근(斤)자가 붙는 걸로 보아, 근이 무게의 단위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며 “이 묵서는 ‘오석 90근’으로 해석된다”
저정도 양이면 당시 백제 지배층에 꽤나 퍼졌을 양이고,
해동증자라고 불리던 의자왕이 말년에 좀 그렇게 된 것도 혹시 이게 이유가 아닐까와
백제 멸망의 시기와 연결시킬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생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