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79년 9월 6일자 기사

"외국에서의 석사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보도는 낭설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 기사

"청강을 위해 잠깐 간 일이 있으나 실제 웅용군을 맡길 만한 천재 교육 기관이 없어 바로 데려왔다"
"아이의 정상발육과 교육을 위해 그동안 외국에 유학간것처럼 해두고 집에서 가르쳐 왔다"
동아일보 79년 9월 12일자 전면 인터뷰

"지난 10년 동안 웅용이가 은둔생활을 한 건 사실이지만 결코 세월을 헛되이 보낸건 아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에서 하나같이 외국으로 간 건 거짓말이고 10년 간 은둔생활을 했다 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당시 언론을 신뢰한다면 김웅용의 부모는 천재라고 국가적으로 엄청나게 주목받던 아들을 집에서 몰래 키우면서 해외 대학 석박사다, 나사 연구원이다 등등 대국민 사기를 친 것이고,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디지털 아카이브에서는 늘 곧 김웅용이 대단한 성과를 곧 발표한다는 부모의 언플이 자주 나오고 있으며 월간조선에 의하면 김웅용의 어머니는 심지어 김웅용 자작 로케트 태안에서 발사라는 걸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미국에서의 경력에 대한 김웅용의 최근 발언에는 굉장히 모순점이 많다. 우선 석박사 학위에 관한 부분. '석박사를 청강했다' 라는 말은 대학원에 다닌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보통 대학원은 대학원 수업과 논문연구로 이루어지고, 논문제출자격에 필요한 수업을 모두 이수했다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수료' 자격이 생기게 된다. 즉 수료했는데 인정받지 못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그렇다고 박사를 '청강했다' 라는 건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나사에서 일했다는 것 역시 모순점 투성이이다. 우선 나사에서 정식 학부 졸업장조차 없는 사람을 고용할 이유도 전례도 없다.
또한 본인은 핵물리학 박사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핵물리학과 궤도계산은 역시 아무 관계도 없다! 천재적인 계산 능력을 이용해서 미적분 셔틀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핵물리학과 관련해서 60년대에는 이미 컴퓨터가 잘만 쓰이던 시절이다. 그리고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는 나사에서 '무기를 만드는 연구를 했다' 라고도 했는데 비 시민권자는 예나 지금이나 예민한 분야 연구에 접근할 수 없다.
사실 70년대라면 통할 만한 구라고 웬만한 건 '나사에서 비밀리에 연구했다' 라는 식으로 넘어가고는 계신데 요즘엔 널린게 유학생이고 나사나 JPL에서 연구하는 사람도 흔하니...
국내에서 임용이 되지 못한 이유도 매우 간단명료하다. 우선 당시는 옛날이지만 외국 학위에 대한 개념이 없을 정도로 옛날은 아니다. 어느 대학에나 외국에서 박사 따온 5,60대 교수들이 잔뜩 있기 마련이며, 오히려 지금보다 해외박사가 드문 시절이라 정말 해외 박사 학위가 있었다면 여기저기서 모셔갔을 거다. 국내 박사라 하더라도 연구 실적이 뛰어나다면 좋은 대학교에 임용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사실 김웅용의 대학 이후 경력은 놀랄정도로 평범해서, 충북대 학부를 나와서 1998년 37세에 충북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는 해외유학이 쉬워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 명문대에서 학위를 취득해 오던 시기다. 학부 학벌을 많이 보는 우리 나라 풍토에서 충북대 학부출신에 충북대 박사학위 보유자는 임용순위가 까마득하게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