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S] 임요환·홍진호 '라이벌'이라는 이름의 무게감 (스압있음)

임요환·홍진호, 그들이 말하는 라이벌 그리고 e스포츠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바로 최고가 되는 것. 자신과 같은 꿈을 꾸고 그 분야에서 최고로 거듭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상대. 우리는 이를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축구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 농구는 코비 브라이언트-르브론 제임스, 테니스의 나달-페더러까지 모두 각 종목을 대표하는 최고의 라이벌들이다. E스포츠에도 이와 견줄만한 대표 라이벌이 있다. 게임의 '게'자도 모르는 우리 어머니도 이들이 라이벌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까.
바로 '테란의 황제' 임요환과 '폭풍 저그' 홍진호다. 현재는 '김가연 남편'과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지만, 스타1 초창기부터 이들을 지켜온 팬들은 '테란의 황제'와 '폭풍 저그'가 아직 더 익숙하다. 리그오브레전드로 e스포츠를 접한 청소년들은 잘 모르겠지만, 페이커가 두 명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듯하다.
이들의 경쟁은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각종 게임 행사, 광고 등 두 사람에 대한 이슈는 끊이질 않고 있다. 그리고 한국 시각으로 11월 7~8일 이틀간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진행된 블리즈컨 2015행사장에 두 스타크래프트 레전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전드가 전해주는 공허의 유산, 그리고 두 선수의 첫 만남
![]() 두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블리즈컨 현장 |
Q. 오랜만이라 더 반가운 것 같다. 먼저 간단히 레전드들의 공허의 유산 플레이 소감이 궁금하다.
홍진호 : 사실 연습을 많이 하진 못했다. 직접 체험해 보니 가장 반가운 점은 가시 지옥(럴커)의 등장이다. 그 외에 새로운 유닛들도 많이 나와서 훨씬 재밌어진 것 같다. 사실 스타1에서 스타2로 넘어갈 때 기대치가 이번 공허의 유산 정도였다. 처음 스타2가 발매될 때부터 이정도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좀 있지만, 어쨌든 공허의 유산은 정말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임요환 : 새로운 유닛들이 많이 추가됐다. 스타크래프트 백화점 같은 느낌이다(웃음). 또한 유닛들이 많아진 만큼 스킬도 많아져서 나올 수 있는 전략이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다. 그리고 집정관 모드가 추가되었는데 과거 추억이 떠오른다. 스타1 시절, 강한 상대를 만나면 팀밀리 모드로 종종 연습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집정관 모드를 토너먼트화 시켜도 괜찮아 보이고, 아니면 개인리그 우승자 VS 집정관 모드 우승팀 이런 식의 1 VS 2 대결도 흥미로울 것 같다.
Q. 황제와 폭풍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남달랐는지?
홍진호 :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워낙 강한 편이었다. 스타크래프트1이 나오기 전에는 오락실이 대세였다. 게임을 원래 좋아해서 오락실도 자주 다녔는데, 몇백 원으로 끝까지 클리어하곤 해서 오락실 사장님이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일이든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타입이다.
임요환 : 나는 잘하는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이 발동되더라. 그게 뭐가 됐던 밤을 새워서라도 파훼법을 찾아내고 끝까지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Q. '프로게이머'라는 말이 어색하던 시대, 서로의 첫 느낌은 어땠는지 기억하는가?
임요환 : 2000년 즈음, 당시 게임아이라는 서버가 있었는데,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들은 모두 거기서 있었다. 매주 주장원전을 펼치곤 했는데 그때부터 서로 대회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됐다.
홍진호 : 그때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탑 클래스에 있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고, '누가 누가 잘하더라'하는 입소문으로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이다(웃음).
임진록의 서막, 코카콜라배 스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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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TV로 접하는 게 생소했던 시절, 당시 임요환의 팬이었던 기자에게 한 친구가 임요환을 보러 가자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여줬다. 2001년 9월 6일 서울 장충체육관 임요환 VS 홍진호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임요환의 화려한 플레이에 매료되 팬이 되었지만, 직접 관람은 처음이라 무척 설?다. 당시 친구는 임요환밖에 몰랐던 기자에게 결승전 상대인 홍진호는 떠오르고 있는 신예 저그라고 소개했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수많은 관중들, '게임을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중학생이었던 기자에게 이런 놀라운 광경은 전대미문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Q. 사람들이 라이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이 아닌가 싶다.
홍진호 : 그전에는 라이벌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요환이 형의 기세가 엄청났고, 테란의 신으로 불렸다. 특히 저그전에서 화려한 마린-메딕 컨트롤로 엄청난 포스를 보였는데, 내가 결승전에서 요환이 형을 궁지로 몰아넣어서 팬들도 더 재밌게 봐준 것 같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당시에 정말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는데, 막상 패배하니 임요환이라는 사람이 정말 엄청나고 커 보이더라.
임요환 : 서로가 아무리 라이벌이라고 생각해봤자 팬들이 불러주지 않는 이상 라이벌이라고 보기 힘들다. 팬들이 라이벌로 인정해주기 위해서는 두 선수 사이에 이야기가 필요한데, 우리는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첫 시작이었다. 그 이후 만날 때마다 팬들이 더 관심을 가졌고, 한 경기 한 경기마다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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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 정확히는 모르지만 비슷하다고만 알고 있다.
Q. 35승 33패로 임요환 선수가 우세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임요환 선수가 이기는 거로 많이들 기억한다. 억울하지 않나?
홍진호 :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중요한 경기에서 항상 졌다. 2002 WCG때는 결승까지 전승으로 쉽게 올라갔는데 결승에서 하필 요환이 형을 만나 0:2로 져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임요환 : 그때 진호는 전승으로 쉽게 결승에 오른 반면, 나는 결승까지 가는 길이 정말 멀고 험난했다. 재경기는 기본이었고, 탈락할 뻔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승에 올랐고 진호를 꺾고 우승했다(웃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3연속 벙커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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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과 홍진호가 라이벌이라는 이름 아래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양 선수 사이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사건은 3연벙(3연속 벙커링) 사건이다. 3연벙은 2004년 11월 12일, Ever 스타리그 2004 4강전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양 선수가 만났다.
사람들은 두 선수의 대결만으로 흥분했고, 당시 경기장이었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 스테이션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스타1 커뮤니티에서는 경기 시작 전, 치킨을 시켜놓고 TV의 앞에 대기 중이라는 글이 수도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3:0. 그것도 3연벙 치즈러시로 경기 시간만 합치면 30분 남짓한 시간 만에 임요환의 승리로 끝나버렸다.
Q. 2004년 11월 12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당시 팬들의 관심이 엄청났었다.
임요환 : 팬들에게 사과하고 싶다(웃음). 내 승부욕이 부른 참사다. 오랜만에 다시 결승 무대에 오를 기회여서 정말 독하게 준비했었다. 그리고 사실 밝히자면 4, 5세트는 다른 빌드를 준비했다.
홍진호 : 속상했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은 치즈 러시라는 빌드가 생겨나던 시기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점이다. 그때만 해도 요환이 형 스타일이 치즈 러시보단 뭔가 전략적인 꼼수(?)를 준비해오는 스타일이어서 그것에 맞게 중점을 두고 연습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원래 남 탓을 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만큼은 요환이 형이 정말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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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 답답했다. 나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하고 성적이 좋던 시기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항상 우승 문턱에서 좌절해서 너무 속상했다. 매번 요환이 형한테 밀리니까 점점 겁이 생기고 트라우마가 생기더라. 프로게이머가 되면서 첫 번째 목표가 세계대회 우승이었는데, 그것도 요환이 형에게 지고, 여러모로 내 앞길을 많이 막은 형이다(웃음).
Q.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한때는 앙숙 같은 라이벌이지만 다른 선수들과 경기는 서로를 응원할 것 같은데?
임요환 : 둘 사이에 시너지는 분명히 있다. 진호가 잘하면 나에게 그보다 더 좋은 자극은 없다. 반면, 서로 잘 못 하고 있으면 엄청 우울하다.
홍진호 : 서로 침체기일 때 서로 응원하는 건 당연하다. 자세히 말하면 요환이 형뿐만 아니라 모든 올드게이머들의 경기를 응원했다. 올드게이머들의 1승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서로 잘 좀 하라고 농담 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Q. (임요환에게) 황제가 스타2에 도전하게 된 자세한 이유가 궁금하다.
임요환 : 스타1이 시장이 줄어들고 있었고, 스타2가 출시한 상황이었다. 전역 이후 SK텔레콤 T1으로 다시 복귀했지만 경기를 한 달에 한 번도 못 나갈 정도로 선수들과 격차가 벌어진 상태였다. 정말 고민이 많았다. 스타2로 넘어갈 경우 팬들이 '배신자'라고 오해할까 봐 고민되기도 했지만,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내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을 때 한 경기라도 더 많은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Q. 두 선수 모두 은퇴한 뒤 감독직을 수행했다. 감독 임요환과 홍진호는 어떤 사람이었나?
임요환 : 감독으로서 두 번의 실패가 있었다. 슬레이어즈 시절에는 플레잉 감독에 가까웠는데, 항상 선수를 최우선으로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하도록 노력했다. SK텔레콤 T1 때도 프론트의 주문보다 선수 보호를 먼저 생각하고 노력했다. 근데 결과적으로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것 같아 후회스럽다.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때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게임에만 집중하도록 해주고 싶었는데, 뭔가 어려움이 없었던 선수들은 마인드적인 부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쉽게 무너지더라. 그래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홍진호 :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게임을 시작한 선수들은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버텼다. '내가 활동할 땐 어려웠으니 요즘 선수들도 헝그리 정신이 필요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헝그리 정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선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게 프로게이머를 막 시작했을 때 가졌던 각오와 열정을 금방 잃어버린다는 거다.
올드 게이머들은 어려운 환경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노력으로 좋은 환경을 만들었을 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악착같이 더 열심히 했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시작부터 꽤 좋은 환경임에도 초기의 마인드를 쉽게 잊고 거기에 안주해버리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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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줘서 팬들에게 너무 고마웠고, 나한테도 감동을 받았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정말 바닥의 끝을 찍던 시절이었다. 공군에 입대한 뒤 요즘 트렌드에서 나의 가난한 플레이 스타일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부자스러운 플레이를 연습하던 중이었는데, 연습 때도 꼭 한 두 가지 실수로 항상 지더라.
나 자신한테 화가 나더라. 연습 때도 승률이 좋지 않은데 이런 경기력으로 당시 최강의 프로토스였던 김택용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팬들도 다 김택용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던 분위기였고,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오랜만에 내 스타일대로 경기에 임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었다. 분명히 실력적인 부분이나 피지컬이 중요한 게임이지만, 경험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말이다.
임요환 : 진호 말을 듣고 나니 드는 생각인데, 게임 양상이 최적화가 유행하면서 스타일리시한 선수들이 사라져 갔다. 한 선수가 최적화를 맞춰놓으면 모든 선수가 그 선수의 리플레이를 보고 따라 한다.
최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맵이 비슷해지고 다 비슷한 스타일로 비슷한 양상의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그 시초는 리플레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부터다. '프로'라는 이름에 어울리기 위해선 각자만의 스타일이 있고, 자신 고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무기로 삼아야 하는데 수많은 노력 끝에 새로운 전략을 만들면, 이후부터는 그냥 따라 하면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선수들도 굳이 새로운 걸 개발해야 하는 필요성을 예전보다 느끼지 못하고, 조금 더 1초라도 최적화를 잘하기 위한 연습에 몰두한다. 지금이라도 블리자드에 제의하고 싶다. 플레이어들은 리플레이를 저장하지 못하고 관전자만 리플레이를 저장할 수 있거나 친구 추가가 되어있는 플레이어끼리만 저장할 수 있다거나 뭔가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선수들마다 고유의 색깔도 생기고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며 경기를 보는 팬들도 훨씬 재밌어 질거라고 본다.
홍진호 : 요환이 형 말에 동감한다.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게임은 너무 편리한 건 좋은 점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일반 유저들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프로와 아마추어의 격차를 확연히 보여주고 보는 재미가 배가 되기 위해서는 자동적인 기능보다 수동적인 면이 더 커야 팬들도 열광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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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 : 데스매치에서 1:1로 붙어보고 싶었다. 아마 팬들도 많이 보고 싶었다고 알고 있는데, 기회가 생기지 않아 너무 아쉽다. 그리고 지니어스를 하면서 느낀 건데 (장)동민 형이 심리전의 달인이다. 정말 놀랐다.
홍진호 : 팬들이 두 선수의 시너지를 기대하셨을 텐데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그리고 데스매치 당시 요환이 형 목숨만 걸린 게 아니라 내 목숨도 걸렸으면 우리가 이겼을 거다. 게임에서 져도 내가 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고, 뭔가 내 행동으로 요환이 형 목숨의 당락이 결정되니 더 부담되고 조심스러워져서 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또 터진 승부조작.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조언
프로게이머는 화려하지만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위해선 수십, 수백 배의 노력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 중 상위 1%정도만이 대중적으로 인기와 명예, 그리고 부를 누릴 수 있다.
잔인하기 그지없다.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해도 그 수명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길지 않고 은퇴 이후 진로도 아직은 불투명한 게 현실이다. 성공한 프로게이머들의 고민이 이 정도인데,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선수들은 오죽할까.
얼마 전 e스포츠에서 두 번째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비록 은퇴한 몸이지만, e스포츠의 태동기부터 최고의 선수들이었던 임요환과 홍진호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후배들에게 분명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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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 : (고민에 잠긴 뒤)모든 선수들에게 상위 1%의 대우를 해주면 승부조작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지 않나. 선수를 관리하는 팀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고, 선수들 역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사명감을 갖고 올바른 프로의식이 필요하다.
홍진호 : 선수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도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프로게이머들의 환경이 좋아졌다곤 하나 개인적으로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해가며 열정을 쏟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기본적인 대우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스포츠가 생긴 지 15년이 넘었고, 게임 업계가 그전보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긴 했지만 프로게이머들의 복지나 은퇴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물음표다.
승부조작에 흔들리는 첫 번째 이유가 이러한 부분이다. 특히 상위 1%에 드는 선수가 아닌 경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선수들도 마인드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마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승부조작 제의를 하면 대부분 거절할 거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할 때 새겼던 열정과 초심을 잃지 않도록 팀에서 꾸준한 마인드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
임요환 : 팀이나 한국e스포츠협회 등 업계에서 프로게이머로서 사명감과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Q. 프로게이머라는 말이 생소한 시절, 하나의 직업군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두 선수. 프로게이머를 선택해서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나?
홍진호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성향은 하고 싶은 걸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린다. 꼭 성공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에 실패하더라도 내가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했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편이다. 결론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근데 나중에 내 자식이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하면 반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웃음). 나조차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 프로게이머에 대한 미래나 인식이 불안한 면이 더 큰 것 같다.
임요환 : 아까도 말했지만 뭔가에 몰두하면 정말 열심히 미친 듯이 한다. 그리고 청소년 시절에 몰두의 대상이 스타크래프트였다. 만약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후회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진호 말처럼 내 자식이 프로게이머를 한다고 했을 때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우리 세대들이 나이가 더 들고, 현재 10대, 20대가 40대쯤 됐을 때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본다. 시대가 흐르면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면 늘었지 줄진 않을 거다. 지금은 불안하지만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홍진호 : 게임업계가 발전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 다른 스포츠에 비하면 e스포츠의 발전은 정말 빠른 편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우리나라가 e스포츠 종주국이라곤 하지만 약간 침체기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늦게 e스포츠가 활성화됐음에도 최근 흐름에 따라 정부에서 공식 스포츠로 인정하는 등 빠르게 발전 중이다.
임요환 : 뭐든 100%는 없다. 긍정적인 면이 90%고, 부정적인 면이 10%라고 해도 부정적인 10%가 전체인 것처럼 포장되는 경우가 꽤 많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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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호 : 선수생명이 정말 짧다.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금방 퇴물 소리를 듣는다(웃음). 내가 프로게이머 시절 나이를 조금씩 먹으며 느낀 건 스스로 잘하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 때 정말 열심히 이 악물고 해야 된다. 당시 분위기가 좋더라도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 성적이 좋아지면 팬들도 많아지고 주변에서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 게임 외적인 부분에 현혹되기 쉬운데 이런 시기에 마인드 컨트롤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많이 대중화되긴 했으나 아직도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대표하는 행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고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더욱 말투, 행동에 신경 쓰고 책임감을 조금 더 느꼈으면 좋겠다.
임요환 :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다. 나름대로 힘든 적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던 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임요환이라는 사람에서 게임을 빼면 남는 게 뭘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 질문 하나로 다시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는 충분하다.
Q. 마지막으로 라이벌이자 최고의 동료인 서로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임요환 : 서로 말은 안 하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현재는 둘 다 프로게이머가 아니지만, 한 번 라이벌은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은퇴한 후에도 계속 이벤트, 행사, 광고촬영 등등 계속 만나고 있지 않나? 앞으로도 이렇게 평생 가지 않을까 싶다. 진호야, '임진록'이라는 타이틀에 서로 먹칠할 행동만 하지 말자!
홍진호 : 요환이 형과 10년을 넘게 알고 지내온 사이다. 그동안 요환이 형은 결혼도 하고, 정말 모든 걸 옆에서 지켜봐 왔다. 언젠가부터 요환이 형의 행보에 항상 눈이 가고 응원하게 되더라. 한때 나와 라이벌이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게임 외에 일도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래야 내 기분도 좋은 것 같다.
나와 박빙을 겨뤘던 사람이 바닥을 치면 내 기분은 정말 최악일 것 같다. 그리고 프로게이머 시절에 항상 요환이 형에게 졌던 기억이 많아서 그런지 은퇴 이후 제 2의 인생에서는 내가 요환이 형을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실제로도 요즘은 내가 더 괜찮지 않나(웃음). 그래도 요환이 형이 앞으로 프로 포커플레이어로서 우승도 많이 하고 좋은 소식을 자주 전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라이벌이 있습니까?
인터뷰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라이벌은 누구인가'
누구와 경쟁해서 싸워라, 그리고 이겨라. 그런 말이 하려는 게 아니다. 뭔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나는 왜 안될까' '뭐가 문제지' 라고 고민하는 청년들이 태반이다. 기자 또한 그랬다. 만약 그대도 그렇다면 라이벌이라고 여겨지는 존재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라이벌은 자신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존재다. 하지만 자신의 앞길을 막는 눈엣가시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질투심이 유발되기도 하고, '이 사람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넘어야 할 산으로 여기며 질투를 오기로 바꾸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그게 진짜 라이벌이다.
기자가 뽑는 ‘임진록 Best 5’
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 5세트 네오 홀 오브 발할라 - 2001년 9월 8일
당대 최고의 저그 킬러였던 임요환, 그런 임요환을 2:2 궁지까지 빠뜨린 최초의 저그 홍진호. 홍진호에게 폭풍 저그라는 별명이 생겨난 네오 홀 오브 발할라에서 두 선수는 피튀기는 혈전을 벌였다. 무려 14년 전 경기지만, 지금 봐도 짜릿한 명승부.
2.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 4세트 라그나로크 - 2001년 9월 8일
홍진호는 저그의 무덤이라 불렸던 라그나로크에서 언덕 아래 성큰 콜로니 러시라는 필살기를 준비했다.저그도 전략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린 최초의 경기. 당시 이런 발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비록 임요환의 승리였으나 패자가 더 돋보였던 경기.
3. 2003 KTF Ever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KTF 매직엔스 VS 동양 오리온 1세트 개마고원 - 2003년 8월 9일
지금까지도 많은 동영상 사이트에 임요환 VS 홍진호의 명장면으로 많이 알려진 경기. 마린-메딕 조합 컨트롤의 극한을 보여주며 많은 저그로부터 치를 떨게 했던 임요환의 마린 컨트롤을 확인할 수 있다.
4.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2주차 SK텔레콤 T1 VS 공군 에이스 1세트 용오름 - 2009년 11월 24일
가난한 플레이의 대명사였던 홍진호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부자스러운 저그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결국, 홍진호는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였고 대 테란전 3해처리 뮤탈리스크 이후 디파일러라는 운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임요환을 제압. 패배한 임요환도 핵을 사용하는 등 볼거리가 많았던 경기.
5. Ever 스타리그 2004 4강 전 경기 - 2004년 11월 12일
당시 임요환과 홍진호가 다전제 경기를 펼치는 것만으로 수많은 팬들의 잠을 못이루게 했다. 경기장이었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웹스테이션은
역대 최다 관중이 몰리며 결승전 못지 않은 관심이 쏠렸던 경기.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승부는 3:0 임요환의 완승. 그것도 모두 초반 벙커링으로 인해 팬들 입장에선 허무했던 경기.
※ 매거진S 표지를 소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