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Doctor's Mail] 우울증이 대물림될까 봐 두렵습니다
떨궈낼 수 없는 그 숙명 같은 괴로움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괴로운 숙명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질문자님의 마음이 그래서 더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저는 질문자님께 통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울증이 가족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곧, 질문자님의 아이가 우울증의 굴레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사실을 깊이 꿰뚫어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정신의학에서는 운명 중에서도 특히, '자기예언적 운명'을 주시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오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분명 자기 예언적 운명과 좌절의 순간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충족시키며 예언을 완성시키는 운명의 굴레 말입니다.
'나는 평생 불행할 거야' '나는 벗어날 수 없어'와 같은 독백은 스스로의 슬픈 운명에 대한 자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인생을 그 운명에 가두는 자기 예언적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 선언이 곧 그 순간 새로운 운명이 되어 나도 모르게 나의 또 다른 가능성들을 차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는 병이 아닙니다. 또 모든 우울증이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질문자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걱정과 불안에는 깊은 사랑이 깃들어 있음이 잘 보입니다. 그 사랑과 걱정 또한 아이의 인생을 이끌어갈 중요한 운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운명이 있는 한, 앞으로 아이의 삶이 질문자님이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는 바와 같이 좌절로 점철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질문자님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질문자님 가족에게도 더 많은 웃음과 행복이 깃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약하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은 사실임.
그러나 개개인이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이런 식으로 넘겨짚으면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될 수 있음.
세간에서 말하는 '노오력'이 아닌 자신이 질환을 인지하고 할 수 있는 선까지의 '노력'이 필요하다의 의미.
다들 오늘 일과도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