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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류세라 “걸그룹 4년에 자존감 바닥, 그래도 언니가 돼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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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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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뮤지스를 탈퇴하고 소속사에서도 나온 지 6년, 류세라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건 바로 ‘언니 아이돌’이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조명 받지 못하는 걸그룹들의 노래를 한국어와 영어로 리뷰하고, 만나서 인터뷰도 한다. 자기라도 나서서 이런 그룹이 있다고 알리고 용기를 주고 싶어서다. 나아가 지옥 같은 현실을 감당하고 있을지 모를 동생들에게 ‘대나무숲’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TV 예능 ‘미쓰백’ 출연을 마음먹은 이유도 그거다. ‘미쓰백’은 상처만 안고 무대 뒤로 사라진 걸그룹 멤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인생곡’을 선사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저같이 마음이 병든 후배들이 위로를 받으면 좋겠어요.” 마음의 생채기가 병이 되어 버린 것까지도 공개한 게 그래서다.

이 인터뷰는 그러니까 열정과 노력, 눈물을 갈아 넣어도 성공률이 0.001%인 아이돌 산업에서 살아 남지 못했으나, 살아 남은 류세라의 생존기다.

◇대학 시절 알게 된 ‘무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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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성들을 만날 때 특히 곧잘 무장해제가 된다고 했다. 그럴 때 나오는 특징이 고향인 부산 사투리다. 홍인기 기자

-어릴 때부터 꿈이 가수였나요?

“원래는 연기자를 하고 싶었어요. 노래는 잘하진 않았는데 좋아했죠.”

-중ㆍ고등학교를 캐나다에서 다녔더라고요.

“음, 그간 공개적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갔다고 했지만, 실은 도피하듯 간 거예요.”

-무엇으로부터요?

“가족 분위기가 굉장히, 아주 굉장히 좋지 않았거든요. 부모님의 불화가 심했어요. 결국 나중에 이혼하셨죠. 집안 분위기가 다정다감하지 않으니까, 어릴 때 견디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캐나다에 보내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버텼죠. 한 4일쯤 굶었을 거예요.”

‘단식 투쟁’ 끝에 그는 중1때 캐나다 생활을 시작했다. 밴쿠버에서 보낸 시간도 만만치 않긴 마찬가지였다. 아는 사람을 통해 구한 현지 가디언(보호자) 부부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그만 공원에 덜렁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도주하듯 이사를 가버린 거다. 영어를 하지 못했던 그는 울며불며 경찰서를 찾아간 끝에 임시 거처에서 지내다가 다른 가디언을 구해 지냈다. 도망가버린 첫 번째 가디언 부부도 찾아내 그들이 갖고 가버린 자기 짐들도 찾아왔다. 그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정말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미지의 곳에서 처음 의지한 어른은 그 모양이었지만, 두 번째 만난 가디언들은 정 많고 따뜻한 이들이었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그럼 지금까지 받지 못한 선물, 앞으로도 받아야 할 선물을 다 줘야겠다”며 크고 작은 선물을 챙겨줬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던 그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정말 독하게 했어요. 인종차별이 심했거든요. 이유 없이 수업시간 내내 ‘고 백 투 차이나(Go back to China)’라면서 제 의자를 발로 툭툭 차는 남자 아이도 있었어요. 지금이야 K팝, K컬처가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를 대부분 잘 몰랐죠.”

-동양인, 특히 한국인은 거의 없었군요.

“그 사회에서 적응하고 또 스스로 보호하려고 럭비도 하고,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클럽 활동도 했어요. 악바리처럼 살았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한국엔 왜 돌아왔나요?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워져서요.”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귀국한 그는 집이 있던 부산에서 떨어진 포항의 한동대로 진학했다.

-대학 전공도 영문학이던데, 어떻게 연예인이 된 거죠?

“뮤지컬, 아카펠라, 연극 같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때도 우울감이 충만한 시기였는데, 그런 제 안의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 무대 위에 서는 거였나 봐요.”

-왜 우울했다고 생각되나요.

“아마도 가정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서 아닐까 싶어요. 캐나다에 가서도 예상치 못하게 버려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늘 제 안에 불안함이 숨어 있었죠.”

-그럼 그 시절 가장 큰 기쁨은 뭐였어요?

“(한참 허공을 보며 생각하더니) 아, 질문이 되게 어려워요. 대학 시절 가장 큰 기쁨… 대학 때도 너무 힘들어가지고요. 아, 그때 (고 김영길) 총장님 덕분에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당시에 종종 도서관을 다니시면서 공부하는 학생들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수고한다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마치 ‘아이고, 내 새끼 열심히 공부하네’ 하는 느낌이었죠. 시험기간마다 그러셨던 것 같아요. ‘이런 어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자 되려 무작정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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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애초 연기자가 꿈이었다. 엑스트라로 알바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홍인기 기자

-2010년 데뷔인데 그럼 연습생으로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예요?

“어떤 교수 때문에 휴학을 하게 됐어요. 자꾸 제게 학비를 대주겠다, 컴퓨터도 사주겠다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죠. 느낌이 이상해서 수소문해보니 선배들이 그 교수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휴학까지 한 건가요?

“피하고 싶기도 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연기로 메인 스트림에 가보자 싶었거든요.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1년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무작정 서울로 갔어요.”

-그때 이미 세라씨에게 무대의 의미가 남달랐군요.

“무대 위에서 편안했거든요. 남의 눈치나 기분을 신경 쓰지 않고 나한테 집중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었어요. 무대 위에 있을 때만큼은 내가 표현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아니면 숨 쉬기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제겐 내가 진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숨구멍이었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어떻게 했나요?

“안양의 할머니댁에서 지냈어요. 학원 아르바이트를 해서 일단 돈을 모았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연기자 오디션 사이트에 올렸죠. 그리고는 연락이 오는 데마다 다 찾아 갔어요. 보조 출연 알바도 했죠.”

-단역 배우요?

“네, 발만 나오거나 뒤통수만 나오거나 하는 엑스트라죠. 세 달쯤 했는데,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이유가 있나요?

“너무 비인간적으로 취급을 하더라고요. ‘이×, 저×’ 같은 욕까지는 괜찮았는데, 어느 날은 감독이 엑스트라 담당자한테 ‘저거 치워’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을 물건으로 보는 거였죠. 함께 온 크루 중에는 40, 50대도 있었는데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그리고 오디션에만 집중했군요.

“네, 그때 연락 와서 간 곳이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예요. 저는 연기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노래도 가능하냐고 하기에 한 소절 불렀더니, 가수로 트레이닝 받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라고요. 나중에 연기자로 전환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죠. 또 다른 이유도 있었고요.”

-뭔데요?

“그때까지 작은 기획사까지 가리지 않고 40여 군데 오디션을 봤거든요. 그런데 3분의 1 정도는 돈을 얼마 내야 한다, 누구랑 밥을 먹어야 한다 같은 이상한 조건을 붙였어요. 그런데 젤리피쉬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들어갔죠.”

2008년 초였다. 숙소는 회사 근처 고시원을 잡았다. 연습생 때는 수입이 없으니 학원 강사 알바로 벌어놓은 돈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그러다 젤리피쉬에서 갑자기 걸그룹 데뷔 계획을 철회하면서 스타제국으로 소속이 옮겨졌다.

◇걸그룹 데뷔조로 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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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의 제안으로 뜻하지 않게 아이돌 연습생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그는 일거수일투족을 매달 평가 받는 시스템에 매였다. 홍인기 기자

-스타제국의 연습생 생활은 어땠나요.

“힘들었어요. 지옥 같았죠. 그때 스타제국에서 모델 출신 연습생들 중심으로 ‘모델돌’ 컨셉트로 걸그룹을 준비했거든요. 최종 데뷔 멤버는 9명인데, 50명 정도가 A, B, C팀으로 나뉘어서 트레이닝을 받았죠. 9등 안에 들어야 데뷔조가 되는 거예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무척 혹독하다고 하던데요.

“평가 차트를 붙여놓고 점수로 순위를 매겨요. 노래나 춤부터 체중, 매력까지요. 매달 테스트를 해서 데뷔조를 정하는 거죠. 가보니까 중학교 때부터 준비한 연습생들을 당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방송용 댄스나 발성, 아이돌 창법 같은 건 처음 해봤으니까요.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까지 매일 회사에 가서 연습했죠. 그래서 다른 연습생들에게 질투도 많이 당했어요.”

-스스로 실력이 나아지는 게 느껴졌나요?

“네, 아마 그 성취감이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하는 만큼 늘었고, 평가 차트 순위도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죠. 지금 생각하면 아주 비인간적인 차트지만 동기 부여에는 최고였어요.”

그는 처음엔 데뷔조인 A팀에서도 꼴찌였다고 했다. 언제든 다른 멤버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채찍이 됐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연습생 생활을 하고 2010년 8월 ‘노 플레이 보이’로 드디어 데뷔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02814370001355?t=20201030000004&fbclid=IwAR2qZQ0xZ3g-LJ2ui_6GjQNJwwvsibvsu4yTPKXURiuVm1M0Dlw-mKj3a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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