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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스가 개혁1호 '도장 깨기'인데…IT장관은 '도장 지키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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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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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을 없애겠다."
지난달 16일 출범한 일본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내각은 출범과 함께 '도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규제개혁 담당상은 지난달 24일 모든 행정기관에 앞으로 공문서에 도장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면서 업무상 도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이유를 제시하라고 압박했다.

종이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는 '도장 문화'가 일본에서 개혁의 걸림돌로 지적받고 있다. [인터넷 캡처]
도장은 일본어로 '항코(はんこ)'라고 한다. 일본은 아직 '항코 문화'가 살아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로, 업무와 일상 전반에서 도장이 널리 쓰인다. 관공서와 회사 결제 업무는 물론이고,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도 도장이 꼭 필요하다. 식당 영수증에도 도장을 찍어주고 택배를 받을 때도 확인용으로 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다.

도장은 하나의 '생활문화'이기도 하다. 대형 잡화점마다 도장 코너가 있고, 편지나 엽서 등에 귀여운 그림이 새겨진 도장을 찍어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지에서는 방문기념 스탬프를 찍는 게 필수. 이렇게 지켜야 할 고유의 문화 중 하나로 여겨지던 도장이 스가 정권의 '적폐 1호'가 된 계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도장 찍으러 출근합니다
올해 봄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일본 정부는 각 기업에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하지만 공무원과 샐러리맨들은 꾸역꾸역 회사에 나갔다. "결재서류에 도장을 받아야 일이 진행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닛케이BP종합연구소가 4월 일본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명 중 1명이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이유로 '서류 및 전표를 취급하는 업무(날인, 결재 등)'라고 답했다.

고노 다로 일본 행정·규제개혁 담당상. 취임 일성으로 '도장 없애기'를 내세웠다. [AP=연합뉴스]
고노 담당상이 TV아사히에 출연해 밝힌 데 따르면 "일본에는 도장 찍기가 필요한 각종 절차가 1만 건 이상 있다"고 한다. 법인들의 인감증명서 발행은 연간 1300만건 이상이다.

'도장 예절'도 있다. 일본 회사의 결재서류에는 아직도 담당-과장-부장 등이 줄줄이 도장을 찍는 난이 있는데, 아랫사람은 이름이 비스듬하게 나오도록 도장을 찍는 게 예의다. 윗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종이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일본의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의 장벽이 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IT 장관이 '도장 지키기' 단체 수장?

도장이 각종 절차를 번거롭게 만들어 사회 발전을 둔화시킨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도장 철폐'를 내세울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는데, 그 뒤엔 인장업계의 강력한 로비가 존재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의 도장 시장은 2019년 3월 기준 약 1700억 엔(1조 88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현재 약 9000개의 인장 관련 업체와 1만 500곳의 도장 제조 가게가 있다.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전일본인장업협회(全日本印章業協会·이하 전인협)'다.

1997년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가 각종 신청·신고의 전자화를 추진하려 할 때 전인협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반대 서명이 벌어졌다. 3만 5000명이 서명에 참여했고 그 여파로 계획은 중단됐다.

일본 도장업자들의 연합체인 '전일본인장업협회' 홈페이지. [사진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후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도장 철폐에 도전했지만, 오래 뿌리내린 관행을 고치기 쉽지 않았고, 업계의 반발도 거셌다. 2018년 일본 정부가 다시 도장 없애기를 골자로 하는 '디지털 거버먼트 실행계획'을 발표했을 때, 도장 관련 단체들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전인협을 포함한 전국 도장 관련 단체 5개가 연합한 '전국인장업연락협의회'가 발족했다. 업계와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들이 모인 '일본의 인장 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 연맹(일명 '항코 의원연맹')'도 이때 생겨났다.

이 '항코 의원연맹'의 대표는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당시 과학기술·IT담당상이었다. 한 나라의 최첨단 기술을 책임지는 장관이 '구시대의 유물'로 불리는 도장 관련 단체 수장을 맡고 있는 기이한 상황. 다케모토 장관은 결국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며 항코 의원연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문화로서의 도장'은 지켜가겠다"
이같은 전례 때문에 일본에서는 스가 정부의 도장 없애기가 쉽게 성공하지 못하리란 예측도 많다. 전인협의 도쿠이 다카오(徳井孝生) 회장은 지난달 28일 고노 담당상을 만나 "일본만의 도장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노 장관은 이런 의견을 의식한 듯 자신의 트위터에 얼굴과 이름이 함께 새겨진 도장 사진을 올리면서 "행정 절차에서 도장을 없애자는 것이지, 도장 문화는 좋아한다"고 적기도 했다.

고노 다로 일본 행정개혁 담당상이 자신의 트위터에 도장 문화 자체는 좋아한다는 글과 함께 자신의 이름과 얼굴 모습이 담긴 도장 사진을 올렸다.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그러나 '일본 도장의 중심지'로 불리는 교토(京都) 등에서는 이미 인장업체가 줄지어 폐업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각종 행사가 연기돼 매출이 급감한 데다 정부의 도장 폐지 움직임으로 사업을 미리 정리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교토신문은 지난달 24일 업계의 이런 분위기를 전하면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책이나 편지용 도장, 놀이용 스탬프 등 '취미용 도장'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업계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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