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왕비였던 폐비 신씨
궁녀와 후궁에게도 모두 존댓말을 사용
실록에도 너무 착해서 답답하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어진 성품
갑자사화때 빡돈 연산군이 선왕 후궁들 때려죽이고 장검 뽑아든 채로 대비전 가는거 막아세웠는데 연산군이 별말없이 그냥 검 도로 넣고 대비전 들어감
아버지 사망 당시에 만삭이었는데 친상 중이라 고기를 못먹는데 만삭이라 아예 못먹게는 할 수 없다는 보고를 들은 연산군이 곡도 못하게 막아버림(몸 조심하라고 그런거 같음)
연산군과의 사이에서 5남 2녀를 낳은 걸로 봐서 부부관계가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추정
(1494년~1503년 동안 7명 출산이니 거의 이 기간 내내 임신출산 반복했었다고 보면...됨)
폐위 이후 연산군과 함께 가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함. 연산군이 먼저 사망했는데 이후 신주를 직접 모셨고 중종에게 자기 죽으면 연산군 옆에 묻어달라고도 함
연산군이 죽을때 유언으로 신씨가 보고 싶다고 하고 죽음
폐서인된 후에도 하인들이 안 떠남
반정 이후에도 폐비되어 사저로 보내진 것 외에는(이건 폐비되었으니 당연한거고) 워낙 평소 어질고 언행에 흠결이 없었으므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음. 당시 여론도 신씨에게만은 욕을 하지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