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내가 내 인생을 악마의 편집 하고 있었다
21,602 391
2020.05.31 21:50
21,602 391
CzjEX
내가 내 인생을 악마의 편집 하고 있었다
당장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심각하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앞으로 겪을 수많은 패배 중 하나일 뿐이다

2018 . 05 . 08
소심이의 소심한 생활
lkhcp
TV 스트리밍 서비스를 뒤적이다 문득 실감한 게 있다. 세상엔 경연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힙합, 패션, 요리, 심지어 사회생활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경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왜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넘쳐나는가 하면… 그야, 잘 팔리니까.

당장 나부터도 경연 프로그램을 많이 봤다. 능동적으로 찾아서 챙겨 본 것과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서 혹은 SNS에 자꾸 떠서 알게 된 것까지 다 합하면 보지 않은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집에 TV가 없는 열악한(?) 환경임을 고려할 때, 이 정도면 서바이벌 쇼 마니아라 칭해도 될 듯하다.

역설적인 점은 그 TV 쇼가 내가 평소에 추구하는 가치관과 거리가 멀다는 거다. 경쟁, 생존, 갈등. 쇼를 구성하는 요소를 대충만 읊어 봐도 전부 질색하는 것들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심지어 잘해도) 나보다 뛰어난 놈이 있으면 낙오되는 상대평가 시스템은 볼 때마다 괴기스럽다. 특히 내가 가장 분개하는 지점은 모 방송국의 트레이드마크인 ‘악마의 편집’인데, 어찌나 자극적으로 MSG를 치는지,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악역이 되기도 하고, 무대 하나로 실력 없다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내가 참가자가 된다고 상상하면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아마 1화를 넘기지 못하고 탈락했겠지. 아니 애초에 출연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휴, 나도 모르게 또 흥분했다. 이렇게 몰입해서 열을 내다가 화면을 끄고 나면 약간 머쓱해 진다. ‘어머 나 좀 봐. 싫다 싫다 하면서 모든 회차를 다 봤잖아.’ 제작진의 의도가 바로 이거겠지.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라는 말은 아마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생겼을 거야.

가장 최근에 몰입해서 봤던 쇼는 고등학생 래퍼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린 친구들이 주인공이었지만 서바이벌 쇼답게 악마의 편집이 빠지지 않았다. 어쩌다 가사 실수라도 하면, 그 장면만 몇 번씩 반복해서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슬로모션 효과까지 넣더라.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심사위원의 부정적인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네요.” “되게 구려요.” “실망이에요.”

응원하던 참가자가 가사 실수를 하고 잔뜩 풀이 죽어 무대에서 내려갈 땐 얼마나 안쓰럽던지. 덩달아 울상이 되어 혼잣말을 했다. ‘제발 악성 편집 좀 그만해. 떨어졌잖아! 왜 탈락한 사람을 두 번 죽여.’ 한편으론, ‘그러게 잘 좀 하지’ 싶기도 했다. 수능 망친 나를 보는 엄마의 심정이 이랬을까? 아깝고 속상했다. 중요한 무대를,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소중한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다니.

방송이 끝나고 탈락자에 대한 연민이 옅어질 즈음, 유튜브에서 그 친구가 나오는 영상을 우연히 봤다. 팬이 그의 활약상을 모아 편집한 영상이었다. 경연에서 보여준 무대뿐만 아니라 방송 밖 모습(소규모 공연장에서 랩하는 거, 친구들과 거리에서 비공식적으로 한 게릴라 공연 등)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었다. 10분 남짓한 영상을 끝까지 감상한 소감은, 역시나 잘 하는 친구였다는 것. 기본기도 탄탄하고 목소리도 매력적이었다.

하나 재밌었던 건 영상 중간에 문제의 가사 실수 장면도 있었는데, 방송을 볼 때와는 다르게 그다지 심각한 실수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가 오른 수많은 무대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가사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지만, 곧이어 다른 무대에서 잘 하는 모습이 나와서 별로 안타깝지 않았다. 그래서 ‘아까운 기회를 날리긴 했는데, 실력 있는 친구니 언젠가 잘 되겠지 뭐’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동안 인생이 경연 프로그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기지 못하면 낙오되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이 허무하게 날아가는 냉혹한 세계. 그 속에서 나는 경연 프로그램의 참가자이자 PD로서 익숙한 악마의 편집에 매여 있었다. 사소한 패배에도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좌절하고, 부정적인 부분만 모아서 자꾸 돌려 봤다.

그런데 어쩌면 인생은 단 한 편의 TV 쇼가 아니라, 내가 오른 모든 무대를 담은 유튜브 영상에 가까운 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경연 프로그램처럼 8화만에 끝나지도 않고, 등수를 매길 수도 없다.

준비가 부족해서, 실수를 해서, 운이 없어서. 이번 쇼에서는 낙오했지만 그건 10분짜리 영상의 한 구간일 뿐이다. 전체를 다 보고 나면 아주 사소한 부분일 테다. 그 이후 다른 쇼에서 우승을 할지, 음원 1위를 할지, 진로를 바꿔 대박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용기가 난다.

물론 내 인생이 시시한 영상일 수도 있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고만고만한 실수만 가득할 수도 . 하지만 오늘의 패배 앞에서 당장 위로가 되는 건, 다음엔 잘 될 거라 믿음뿐이므로. 기왕이면 이런 태도로 사는 게 속도 편하고 좋겠다.



#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당장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심각하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앞으로 겪을 수많은 패배 중 하나일 뿐이다
[850호 – small mind]
ILLUSTRATOR liz
목록 스크랩 (328)
댓글 39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드라마 이벤트] 장기용X천우희 쌍방구원 로맨스! JTBC 새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릴레이 댓글놀이 이벤트 8457 05.03 35,125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868,940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414,713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182,68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594,685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673,62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4 21.08.23 3,515,46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8 20.09.29 2,369,290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51 20.05.17 3,075,349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651,42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8,021,587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01614 이슈 뭔가 계획이 있었던것같은 푸바오 쌍둥이 동생 루이바오 4 16:07 521
2401613 기사/뉴스 김준호 아들 은우, 수지 플러팅 완벽 재연…누나들 홀리는 앞니 미소(슈돌) 2 16:07 403
2401612 유머 EBS에서 방송한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 팔라스고양이편.jpg 6 16:06 437
2401611 유머 개고수 1 16:05 70
2401610 이슈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는 엄마 1호팬 후이바오 모음🐼❤ 3 16:05 407
2401609 유머 타(투)꾸(미기) 당한 강동호(백호)ㅋㅋㅋㅋㅋ 1 16:03 422
2401608 이슈 이번에도 KBS에서 수준 미달 받는 거 아니냐는 조혜련 신곡 가사.jpg 13 16:01 1,681
2401607 유머 아이브 안유진이랑 제베원 한유진이랑 인사함 9 16:00 952
2401606 이슈 무대하다 웃통 벗어버리는 멤버를 보고 고장난 남돌 (상탈주의) .twt 2 15:58 1,177
2401605 기사/뉴스 '개콘'의 어린이날…25년 역사 최초 '전체관람가' 특집, 어떻게 완성됐나[이슈S] 3 15:57 451
2401604 유머 드디어 프랑스까지 수출된 일본의 문화 17 15:57 2,562
2401603 이슈 드디어 끝난 YG 남돌 트레저 연애프로그램;;; 41 15:54 3,949
2401602 이슈 위키미키 최유정 인스타그램 업로드 7 15:53 1,102
2401601 이슈 엔시티 콘서트에서 사인볼 받으려고 팔 휘젓는 엔시티 실존.twt 11 15:52 1,244
2401600 이슈 현직 경찰 대형사고 쳤다, "여성 7명 위험" 전국 발칵 131 15:51 12,139
2401599 기사/뉴스 ‘힙합 플레이야 페스티벌’ 우천으로 당일 취소..“관객 안전 고려” [공식] 10 15:51 810
2401598 이슈 하이브 / 삼대 (에스엠+제이와이피+와이지) 엔터 자회사들의 2023년 실적 13 15:50 1,037
2401597 이슈 아이유, 어린이날 맞아 1억 기부…누적 기부액 50억 육박 6 15:50 320
2401596 유머 @ 니들은 이게 웃겨...? 자영업자나 알바한테는 하이퍼리얼리즘 그 자체임... 13 15:49 2,089
2401595 이슈 데뷔무대 댄스로 엄청이슈되었던 아이돌 4 15:49 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