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가 최승희
고전 무용을 현대화한 조선,북한의 무용가.
일제시대 때 일본 무용가 밑에서 배우다 독립 후 여운형, 설국으로 노벨문학상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거물들에게 후원 받음.
지방 춤꾼 및 기생들을 찾아가 전통춤을 배우며 현대무용과 결합하여 신무용의 창시자가 되며 한국 북한 중국 무용계에 큰 영향.
당대 패션스타로 조선과 일본의 유행 주도.
30년대 말부터 미국 유럽 남미 등을 여행하며 순회공연도 같이함 . 이 과정에서 헤밍웨이, 장 콕토, 게리 쿠퍼, 찰리 채플린, 피카소, 로버트 테일러 등 유명인사들이 관람하였고, 특히 쿼바디스의 주연으로 유명한 로버트 테일러는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에게 소개하며 영화출연 알선했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무산.
40년대 이후 일본군 위문공연을 여러 차례하며, 국방 헌금도 내는 등 친일 행위.
44년 일본에서 탈출하여 중국으로 가서 중국에서 해방 맞이함.
중국에 억류돼 바로 귀국은 못하고 46년 5월에 귀국
귀국 직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그 동안에 일본에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친일을 했다는 것은 변명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나 최승희가 해방된 조국에 와서 속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코리안 발레를 창건하는 것으로 이바지하겠다."
라 답변
하지만 언론에선 '일본놈들 앞잡이 노릇하던 최승희가 이제 미국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발레라는 것을 하려고 한다.' 로 왜곡 이후 여론 악화되고
쫄아서 미군정 하지 중장을 찾아가 지원 호소를 했지만 회의적 반응.
이후 먼저 월북한 남편이 찾아와 월북 종용. 이승만 등 주위에서 월북 말렸지만 결국 월북함.
김일성이 지금 옥류관 자리에 최승희 무용 연구소를 지어주고, 공연 수입도 다 가지게 하는 등 특혜를 줌.
저우언라이가 최승희를 좋아하여 그의 지시로 중국에도 진출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며 중국 전통 무용과 경극의 현대화에도 공헌.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거나 불편할 때마다 김일성에게 찾아가 항의하며 김일성이 심기를 불편하게 하다 새로 쓴 책 저자의 말에서 김일성에 대한 말을 빼 김일성이 심기불편해서 말한마디 하니 모든 직위에서 해제됨.
이후 복귀했지만 점차 무대출연은 줄고 67년 이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으며, 67년에 남한과 일본 언론에서 숙청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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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의 애제자가 부채춤의 대가 김백봉선생.
당시 김백봉선생은 최승희 남편의 동생 안제승과 부부관계였는데
안막-최승희는 북한에서 활동해야 자신들의 입지를 잃지 않는다 생각해서 남았고
안제승-김백봉은 북한이 언제까지나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1.4후퇴때 남한으로 내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