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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조선 정조때의 실학자로 별명은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방면에서 큰 재능을 보였지만 서얼인 관계로 벼슬직에 천거받지 못한채 공부와 농사일을 하며 젋은시절을 보냈다.
이덕무가 벼슬에 나선 것은 39세의 나이로, 마흔직전에서야 생애 최초로 취직을 했다. 정조의 서얼채용 시도로 기회가 와서 당시 새로 설치된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같은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와 벼슬자리에 올랐다.
규장각 검서관은 규장각에서 출판하는 모든 책을 교정하는 직임이다. 책벌레 이덕무는 자신의 소원대로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1793년 사망하는 해까지 규장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벼슬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책을 밝혔는데 문제는 당시 책은 고가의 희귀품이였는데 비해 이덕무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이다. 가난하면 먹고사는데 바빠 책같은 취미생활에 힘을 쏟기 힘든게 지금도 현실인데 그런면에서 이덕무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덕무의 가난함과 책사랑은 여러 일화에서 보이는데 방이 너무 추워서 이불 위에 논어를 펼쳐서 덮고 바람은 한서를 병풍처럼 펼쳐세워 막아 겨울을 났다고 하는 일화나 책을 살 수가 없어서 책을 빌려온 뒤 그걸 베끼고 돌려주는 식으로 소장 도서를 늘렸다는 경험담 등이 있다.
다만 이덕무가 책만 읽는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였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집에있던 맹자 일곱권을 팔아서 밥을 해먹고 친구에게 달려가 자랑했더니 가난한 친구가 똑같이 좌씨전을 팔아 술상을 벌이고 나선
"이는 맹자가 직접 내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내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
라고 한마디 할 정도의 유머감각은 있는 사람이였다.
20대 중반에는 중국 베이징으로 박제가와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이덕무는 가서 여러 명소를 대충 들리고 본격적인 서점순례에 나섰다.
가장 먼저 출간되지 얼마 안 된 서적들의 목록이 담긴 책인 ‘절강서목(浙江書目)’ 최신판을 구입하고,
이덕무는 5월 중순의 대낮에 책방 11곳을 들려 조선에서 못 본 책들의 목록을 모조리 작성하고 한 책방의 점주와 안면을 터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내일 책 4000권을 가져오기위해 운하에 배를 띄웠다는 말을 듣고서 충격을 받곤
“이 목록에는 내가 평생 구하려던 책만이 아니라 천하의 기이한 책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이제야 절강(浙江)이 서적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주인과 친해진 이후엔 그 오류거란 서점에 들락날락하며 여러 책들을 구경했고 지갑을 털어 수십권가량의 책을 구매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외에도 여러 책일화가 있는 이덕무는 자신이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농부가 오곡을 가꾸듯이 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경서를 공부할 때마다 반드시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철저히 힘써야만 좋다. 공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책을 볼 때에는 서문, 범례, 저자, 교정자 그리고 권질이 얼마 만큼이고 목록이 몇 조목인지를 먼저 살펴서 책의 체제를 구별해야지, 대충대충 넘기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글을 읽을 때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서 책을 더 읽어도 안 되고, 그 시간을 남기면서 덜 읽어도 안 된다.
나를 어릴 때 하루도 글 읽기를 빼먹은 적이 없다. 아침에 사오십 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50번씩 읽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고 한 차례에 열 번씩 읽었다.
몸이 너무 아플 때가 아니고서는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까 공부하는 과정이 여유가 있고 정신이 증진되었다. 그때 읽은 글은 지금도 그 내용이 기억난다.
나는 몸이 매우 약해서 배우는 양과 읽는 횟수가 매우 적었다. 하지만 재주와 기질이 왕성한 사람들은 그 능력에 따라 과정을 정해 꾸준히 글을 읽는다면 큰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심나는 내용이 있으면 즉시 유서나 자서를 참고하라. 글을 읽을 때 글 뜻이 어려운 본문은 그때 그때 적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라. 책을 읽다가 뜻이 심오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등에서 열이나고 머리가 가렵고 마음이 어지럽고 들뜨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책 읽기를 포기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마라.”
“학사 하섭 하제천은 책상 위에 오직 한 권의 책만 올려놓고서 그 책을 끝까지 다 보기 전에는 절대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이덕무는 죽을때까지 약 2만권 가량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는 희귀한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규장각에서 일한다는 점이 도움이 됐겠지만,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이덕무도 직장에서 일로써 책을 접하는 것은 그렇게 즐겁지 않았는지 '규장각에서 책을 보는 건 자신의 집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편하지 않다'고 한마디 남기기도 했다.
이덕무는 조선 정조때의 실학자로 별명은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방면에서 큰 재능을 보였지만 서얼인 관계로 벼슬직에 천거받지 못한채 공부와 농사일을 하며 젋은시절을 보냈다.
이덕무가 벼슬에 나선 것은 39세의 나이로, 마흔직전에서야 생애 최초로 취직을 했다. 정조의 서얼채용 시도로 기회가 와서 당시 새로 설치된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같은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와 벼슬자리에 올랐다.
규장각 검서관은 규장각에서 출판하는 모든 책을 교정하는 직임이다. 책벌레 이덕무는 자신의 소원대로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1793년 사망하는 해까지 규장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벼슬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책을 밝혔는데 문제는 당시 책은 고가의 희귀품이였는데 비해 이덕무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이다. 가난하면 먹고사는데 바빠 책같은 취미생활에 힘을 쏟기 힘든게 지금도 현실인데 그런면에서 이덕무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덕무의 가난함과 책사랑은 여러 일화에서 보이는데 방이 너무 추워서 이불 위에 논어를 펼쳐서 덮고 바람은 한서를 병풍처럼 펼쳐세워 막아 겨울을 났다고 하는 일화나 책을 살 수가 없어서 책을 빌려온 뒤 그걸 베끼고 돌려주는 식으로 소장 도서를 늘렸다는 경험담 등이 있다.
다만 이덕무가 책만 읽는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였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집에있던 맹자 일곱권을 팔아서 밥을 해먹고 친구에게 달려가 자랑했더니 가난한 친구가 똑같이 좌씨전을 팔아 술상을 벌이고 나선
"이는 맹자가 직접 내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내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
라고 한마디 할 정도의 유머감각은 있는 사람이였다.
20대 중반에는 중국 베이징으로 박제가와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이덕무는 가서 여러 명소를 대충 들리고 본격적인 서점순례에 나섰다.
가장 먼저 출간되지 얼마 안 된 서적들의 목록이 담긴 책인 ‘절강서목(浙江書目)’ 최신판을 구입하고,
이덕무는 5월 중순의 대낮에 책방 11곳을 들려 조선에서 못 본 책들의 목록을 모조리 작성하고 한 책방의 점주와 안면을 터 대화를 나누는데 그가 내일 책 4000권을 가져오기위해 운하에 배를 띄웠다는 말을 듣고서 충격을 받곤
“이 목록에는 내가 평생 구하려던 책만이 아니라 천하의 기이한 책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이제야 절강(浙江)이 서적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주인과 친해진 이후엔 그 오류거란 서점에 들락날락하며 여러 책들을 구경했고 지갑을 털어 수십권가량의 책을 구매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외에도 여러 책일화가 있는 이덕무는 자신이 책을 읽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농부가 오곡을 가꾸듯이 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경서를 공부할 때마다 반드시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철저히 힘써야만 좋다. 공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책을 볼 때에는 서문, 범례, 저자, 교정자 그리고 권질이 얼마 만큼이고 목록이 몇 조목인지를 먼저 살펴서 책의 체제를 구별해야지, 대충대충 넘기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글을 읽을 때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서 책을 더 읽어도 안 되고, 그 시간을 남기면서 덜 읽어도 안 된다.
나를 어릴 때 하루도 글 읽기를 빼먹은 적이 없다. 아침에 사오십 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50번씩 읽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고 한 차례에 열 번씩 읽었다.
몸이 너무 아플 때가 아니고서는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까 공부하는 과정이 여유가 있고 정신이 증진되었다. 그때 읽은 글은 지금도 그 내용이 기억난다.
나는 몸이 매우 약해서 배우는 양과 읽는 횟수가 매우 적었다. 하지만 재주와 기질이 왕성한 사람들은 그 능력에 따라 과정을 정해 꾸준히 글을 읽는다면 큰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심나는 내용이 있으면 즉시 유서나 자서를 참고하라. 글을 읽을 때 글 뜻이 어려운 본문은 그때 그때 적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라. 책을 읽다가 뜻이 심오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등에서 열이나고 머리가 가렵고 마음이 어지럽고 들뜨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책 읽기를 포기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마라.”
“학사 하섭 하제천은 책상 위에 오직 한 권의 책만 올려놓고서 그 책을 끝까지 다 보기 전에는 절대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이덕무는 죽을때까지 약 2만권 가량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는 희귀한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규장각에서 일한다는 점이 도움이 됐겠지만,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이덕무도 직장에서 일로써 책을 접하는 것은 그렇게 즐겁지 않았는지 '규장각에서 책을 보는 건 자신의 집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편하지 않다'고 한마디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