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배우를 알고 있다. 아니, 이 연기와 이 표정을 알고 있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심영 연기로 전설이 된 배우, 김영인(65)씨다.
'내가 고자라니!'-2003년 3월 4일, SBS 드라마 '야인시대' 64화 중 일부. 김영인씨 허락을 받고 올린 영상입니다./유튜브 채널 '전한수'
흔히 알려져 있듯, 이 드라마에서 공산당 간부이자 배우였던 심영은 총알이 영 좋지 않은 곳을 지나가는 바람에 고자가 된다. 당시 김씨는 의사양반으로부터 성 관계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절규하는 연기를 실감 나게 해내 호평을 받았다.
이 영상은 방영 5년 후인 2008년 즈음 디시인사이드 합성 필수 갤러리(합필갤)에서 다시 빛을 봤다. 그리고 다채로운 합성 소재로 쓰이며 일명 '고자상스'라 불리는 합필갤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심영이 공산당 간부였던 것에 착안해, 한때 디시인사이드 등에선 성불구자가 되는 걸 사회주의 락원으로 간다 표현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 시절 김씨는 대한민국 인터넷 최고 유명인 중 하나였다.
웬만하면 사내로 태어나 국민고자로 불리는 게 달가울 리는 없다. 하지만 김씨는 글쓴이와 만난 자리에서 오히려 이 심영 연기에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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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기회
그렇게 14년이 흘러,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할을 맡게 됐다. 언제나처럼 조역이었다. "57회 즈음부터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땐 제대로 된 대사라 해봐야 '이보시오 정동무(정진영), 그 악랄한 반동(김두한)을 왜 아직도 처치 못했단 말이오' 정도였어요. 뭐 언제나처럼 그러다 말 배역이려니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감독(故 장형일 SBS PD)이 김씨에게 책 두 권을 건넸다. 64~65화 대본이었다. "갑자기 이 두 화에서 제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데다, 65화에선 아예 첫 장면부터 나오는 거예요. 너무 부담스럽고 걱정돼, 세트장 부근에 여관방을 잡고 한 주 내내 연기 연습만 했어요."
이 와중에 문제의 '고자라니' 대사를 발견했다. "처음엔 감독님께 고쳐달라 사정하고 싶었어요. 교육자(교사)이신 아버지 체면도 있고, 저부터가 쉰을 넘기고 딸까지 있는데 너무 민망해서요. 하지만 장 감독님이 장면 대사 하나하나에 얼마나 애착이 많은 분인지 아니,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어요." 그렇게 김씨는 한국 인터넷사에 길이 남을 연기를 하게 됐다.
◇연예인의 마음가짐
인터넷 유명인이 된 건 뒤늦게 알았다. "2010년 즈음이던가, 보험설계사 아주머니가 선생님 유명인 됐다고 말해줘서 봤어요. 솔직히 한때는 법적 조치까지 생각했어요. 하필이면 처음에 봤던 게시물이 '고자 개X끼' 운운하는 것이어서요. 물론 그것 말고도 합성물이 많았는데, 모욕스럽기도 하고 창피한 면도 있고 그랬죠."
하지만 동료 배우들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한다. "얼굴이 팔리는 건 연예인의 본분인데다, 어떤 식으로건 사람들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건 배우로서 반길 일이라 하더군요. 찬찬히 보니 합성하는 분들도 제가 싫어서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건 아닌 듯하고요. 고자 선생님, 고자 아저씨 정도까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이후론 도리어 심영 컨셉을 내세워 방송에 여럿 출연했다. tvN 드라마 '푸른거탑' 2기 36화에서 총기 오발사고로 고자가 되는 부사단장 심대령 역할을 맡았고, 최근엔 약초 상품 '데일리허브' 광고에서 성 기능을 되찾은 심영 연기를 했다. "대표작 하나 없는 단역배우를 사람들이 여태껏 기억해 주는 건 순전 그 연기 덕분이니까요. 물론 부끄러울 때가 없진 않았지만, 결국엔 애착이 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