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난 고학벌 전업주부. 행복하지만 우울합니다.
59,855 372
2020.01.05 16:38
59,855 372
https://img.theqoo.net/XbzfD


요 며칠 전업주부 관련 글들이 많아져서
저도 용기내어 써봅니다.
누가 알아볼까봐 자세히는 못 쓰겠지만...

저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대학을 졸업했고
남편은 근처 타 대학의 치대를 나온 치과의사입니다.

제 전공이, 정말 전공 살려서 일하기에는 to가 너무 부족한 탓에
계약직으로 몇 년 정도 그냥저냥 일하며 시험준비를 해오다가
남편과 결혼하며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현재 살고 있는 지방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남편 고향이에요.

남편은 같은 고향 출신 두 명과 함께 치과를 개업했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젊은 의사 원장이 모인 중형 치과병원"이고, 교정과 임플란트를 중심으로 진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돈은 정말 잘 벌어요.

처음에 올라왔던 '전업주부인데 행복하다'하는 글에서
남편 연수입이 1억 5천쯤 된다...고 쓰셨는데
제 남편은 1억 5천 정도는 3~4달이면 벌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을 몇 낳아서 잘 키우는 중이에요.
지방이라 아파트 값도 저렴해서, 여기서 제일 비싼 아파트, 제일 큰 평수에 인테리어도 최고급자재로 싹 새로 해서 좋은 집으로 가꾸어 살고 있고
애들을 각각 학교,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집안일은 가사도우미 이모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평일 낮에는 저도 한가로이 운동도 다니고 합니다.

제가 계속 서울에 남아서 계약직으로 일을 했으면..
연봉은 3~4천 수준에 불과했을 겁니다.
정규직 시험에 통과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제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편 고향에 나의 커리어를 다 접고 내려온 댓가로
지금의 풍족하고 부유한 경제력과 가정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삶에도 나름 만족하는 편입니다.
잘 자라주는 아이들과 날 사랑하는 남편을 보면 행복하고요.

하지만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키울 만큼 키우고 여유시간이 나서
대학동기들과 연락하거나 해보면
다들 그 똑똑한 머리 아깝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전공 to가 모자라서 전공 직업은 못 살렸지만
그 대신 다른 전문직 (의사 변호사 변리사 계리사..)의 직업을 갖고 멋지고 치열하게 살고 있거나
미국 유명대학에 유학을 가거나
삼성 한화 롯데 같은 대기업에서 대리, 과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것도 대부분 다 여자인 친구들이구요.

여전히 저는 남편의 경제력에 너무나 감사하고
내가 서울에 남아있었다면 절대 이만큼 돈을 벌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처음 살아보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애 키우고 집안 돌보려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했나..
남편도 학창 시절 공부 잘한건 맞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도 수재 소리 듣고 자랐는데
왜 나는 이렇게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나..
그런 생각이 종종 들어요.
통장 보면서 든든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스스로가 못나보이기도 하죠.
비단 남편이 뭐 어떻게 될까봐, 바람이 날까봐, 다칠까봐, 망할까봐 등등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내가 갖고 있던 능력을 접어두고 남편에게 오롯이 기대어서 살아야하는 내 자신이 가끔 낯설게 느껴진달까요.

고등학교 때 평균 0.1점 차이로 전교 등수가 바뀌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1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모의고사 점수 1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내 자신을 채찍질하고
대학에 와서 과제로 밤을 새면서도 이 모든게 언젠간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리라며 믿었던 그 때의 내 모습이
어느새 이렇게 바뀌어버린거지..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우울하고 슬퍼집니다.

게다가 주변 이웃, 어린이집/학부모로 만난 전업주부들이
처음에 제가 졸업한 대학교를 알게 된 후 헉! 하다가도
(심지어 ☆☆대학 나온 사람 태어나서 처음봐요! 라던 분도 있었어요)
결국 별 수 없는 전업주부인건 똑같네? 라며 
나의 모습에서 묘한 위로를 얻어가는 다른 엄마들을 볼 때면
정말 괴롭습니다.
이러려고 내가 여기에 왔나...

대학 동기 중 한 명은 졸업 후 바로 의전에 갔고
레지던트 2~3년차에 결혼을 해서
현재는 전문의 시험 통과 후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최근 임신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아이를 낳고나서 언제 다시 병원에 돌아와야 될 것인가, 아이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등등의 고민으로 걱정이 많던 친구였지만
'맞벌이엄마라서 힘들지? 그러니까 나처럼 전업주부하자'라고 절대 말할 수 없는, 비교하니 더 초라보이는 내 자신...
오히려 그 친구야말로 '넌 이제 애들 웬만큼 컸는데 집에만 있으니 너무 아깝지 않아? 그 동네는 일할만한 곳이 없을까?'라며 저에게 맞벌이라면 맞벌이를 권하고 있어요.
절대로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능력을 그대로 사장시키기에 너무 아까워서 사회에서 일하려는 그런 맞벌이요..

이제 와서 뒤늦게나마 나의 능력 (사실 능력이랄 것도 없고 그냥 머리 좋은 거 정도겠지만요)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내 아이들이 꽤 클 때까지 학원이나 과외를 붙이지 않고
엄마인 내가 직접 학습지도를 해주는 것 정도인 것 같은데
슬슬 엄마말 안 듣고 반항하려는 첫째를 보면
이것도 몇 년이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조건에서의 전업주부, 혹은 맞벌이를 보시더라도
뒤에서 이런저런 추측은 할지언정
앞에서 대놓고 이러저러한 말씀은 삼가주셨으면 해요.
사실 전업주부/맞벌이 하는 당사자가 제일 그 상황이 괴로울 수 있으니까요.
제가 듣고 가장 충격이 오래갔던 말 중 하나는 
"여자는 공부 잘해도 아무 소용없네요~ 00대 나와도 집에서 살림하는데^^" 라는 말이었어요.
이런 말을 내 앞에서 대놓고 할 줄이야..

아무튼 정리하자면
전업주부/맞벌이와 내 삶의 행복도는 크게 유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전업주부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은
내 역량이 고작 집안살림하고 아이키워내는 수준밖에 안되는 것인지, 그것에 정말 스스로 만족하는지
다시금 고려해보셨으면 해요.
정말 저는 제 스스로가 너무 아까워요..

https://img.theqoo.net/bbeoY

https://img.theqoo.net/rzjiB



출처: 네이트판
댓글 372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우당탕탕 요괴 판타지! 영화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예매권 이벤트 83 08.30 22,698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 07.13 813,769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26.08.30 아이디 판매 유도관련 추가) 24.04.09 13,876,484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4,316,580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60812 기사뉴스 저작권법 침해 강력 제재] 20.04.29 37,446,537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298,073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2 21.08.23 8,732,95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630,24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54 20.05.17 8,864,14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5 20.04.30 8,737,30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타회원 글/댓글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773,589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3806 정보 조현병 체험하기 ( 다큐시선 내 말 좀 들어주세요) 5 02:36 1,093
303805 정보 🌥️☀️전국 날씨 특파원 여러분 각 지역의 날씨를 알려주세요☔️⚡ 25 01:00 1,497
303804 정보 2️⃣6️⃣0️⃣8️⃣3️⃣1️⃣ 월요일 실시간 예매율 순위 ~ 오디세이 29.3 / 암살자(들) 3.2 / 스파이더맨 2 / 비광 1.9 / 인턴 1.3 / 경주기행 1 예매🍬🦅👀🦥 1 00:05 303
303803 정보 네페 112원 99 00:05 6,868
303802 정보 💰살짝 달려달려🤭🏃‍♀️🏃🏃‍♂️네이버페이10원+10원+1원+1원+1원+1원+랜덤 눌러봐👆+🐶👋+(10원+5원)+눌러눌러 보험랜덤👆+👀라이브미리보고19원받기+보험랜덤 하나더✌️+15원+15원+15원+랜덤포인트퀴즈🧐+10원+1원+1원+1원+1원+10원 89 00:02 3,440
303801 정보 2️⃣6️⃣0️⃣8️⃣3️⃣0️⃣ 일요일 박스오피스 좌판/좌점 ~ 오디세이 886.4 / 스파이더맨 854.8 / 경주기행 19.2 / 오크스트리트 10.7 / 하츄핑 83.8 / 명탐정코난 40.3 / 오케이마담2 33.4 / 다윗 31.1 / 도그스타 1.1 ㅊㅋ🦥👀🦅🍬 1 00:01 500
303800 정보 나연이 대만에 야구 시구하러가서 잠깐 공연하는데 관중석 90프로가 트와이스 응원봉임 22 08.30 4,400
303799 정보 '여성향' 표기했다고 억까당한 걸로 핫게까지 간 한국 여성향 게임 근황...jpg 15 08.30 3,787
303798 정보 [KBO] 프로야구 8월 29일 & 30일 각 구장 관중수 3 08.30 1,075
303797 정보 일본 척추 전문의가 알려주는 허리통증 스트레칭 방법 20 08.30 2,909
303796 정보 화성은 죽었는데 지구는 살아남은 이유 23 08.30 5,640
303795 정보 ◇오늘 추가된 더쿠공지  (26.08.30 아이디 판매 유도관련 추가) 52 08.30 5,257
303794 정보 문학 좋아하는 덬들에게 추천하는 최신 한국 단편소설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사이트 49 08.30 3,165
303793 정보 "원덬이 보는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구나"라는 댓글에 감동 받아서 올려보는 풍경사진 54 08.30 4,971
303792 정보 인생 망치는 지름길 458 08.30 77,898
303791 정보 마운자로 끊고 유지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평생 맞아야 해요(Dr.아구통) 547 08.30 73,400
303790 정보 넷플릭스 1위 찍은 신작 드라마 17 08.30 7,059
303789 정보 지금 일본 만화가들과 성우들이 분노하는 이유 21 08.30 5,876
303788 정보 충분한 가난은 행운이 되기도 한다. 146 08.30 30,952
303787 정보 성심당 프렌치무화과 10 08.30 3,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