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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내가 지방을 떠난 이유 | 대학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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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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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방을 떠난 이유

‘크게 불행하진 않지만 재미없는 일상’을 견디다가 ‘이렇게 평생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오는 짐을 쌌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젊은 날의 지방살이’에 대한 아주 솔직한 이야기다. 나는 서울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뒤 고향으로 내려 갔다가 ‘평생을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2년도 되지 않아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이 글은 부적응 끝에 도망쳐버린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고, 서울의 살인적인 물가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청년이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참고 사항일 수도 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 아니냐’ 또는 ‘지방 혐오적 요소가 있다’는 비판을 예상한다. 하지만 개인의 비슷한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담론이 되듯, 나의 이 고백이 언젠가 지역의 청년들을 살피는 레퍼런스가 됐으면 좋겠다.



2년 전, 7년여의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고 기차를 탔다. 한창 매스컴에선 ‘헬조선’이니 ‘최악의 청년실업’이니 하는 내용이 나오던 시기였다. 고향의 건실한 회사에 취업을 해서 서울을 빠져나가는 내 모습은 영화 <설국열차>에서 폭동이 발생하기 전 가까스로 탈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은 수준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었고 무엇보다 본가에서 살면서 돈을 모을 수 있어 ‘N포 세대’ 같은 건 남 일로만 여겼다. 서울에선 감히 꿈꿀 수 없었던 ‘내 집 마련’도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목표로 다가왔고, 한 번 사는 인생을 위해 새 차(!)를 36개월 할부로 질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확히 545일 후에 다시 서울로 왔다. 내게 고향은 20대 일부를 제외하곤 평생을 살았던 곳이지만 외국이나 다름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고향이 영화 <이끼>에나 나올법한 시골이었냐고? 천만에, 6대 광역시 중에서도 상위권 도시였다. 프로야구 구단도 있는 그런 도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 인근에서 청춘의 대부분을 보낸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마음에 차지 않았고 ‘크게 불행하진 않지만 재미없는 일상’을 견디다가 ‘이렇게 평생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오는 짐을 쌌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문화 자본 부재’와 ‘정이라 쓰고 오지랖이라고 읽는 문화’였다.



예컨대 서울에서 독서 모임을 구한다고 가정해보자. 동호회 앱을 켜거나 커뮤니티에서 ‘독서’만 검색하더라도 홍대, 강남역, 종각 곳곳에서 수십 개의 테마별 모임이 결과로 뜬다. 나는 독서 모임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실패해 결국 1년 내내 혼자 책을 읽어야 했다.



그뿐인가? 퇴근 후 즐길 만한 ‘원 데이 클래스’도, 살랑살랑 봄날에 즐기는 ‘음악 페스티벌’도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다. 어쩌다 지방에서 공연이나 전시가 열리면 취향 따위 따지지 않고 그냥 ‘간다.’ 기회가 없으니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지난해 개봉한 에곤 쉴레를 소재로 한 인디 영화는 상영관이 없어 끝내 보지 못했다. 이런 ‘문화 좌절’을 여러 번 느낀 후, 깨달았다. 여기에 있으면 도태되고 말 거라고.



사적으로 즐길 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타인의 사생활’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걸까. 입사하자마자 맞닥뜨린 무례한 호구조사에 기함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받았던 질문이 “집은 어디 아파트 몇 평이니”, “부모님은 어느 대학을 나왔니”였다. -심지어 구성원 대부분이 서로 어느 동네 어디 아파트에 사는지를 외우고 있었다! 매매가까지!-



지역사회는 학벌과 인맥으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어, 몇 개의 질문만 거치면 ‘아하, 어느 동네에서 과일 장사하는 김가네 셋째 딸!’ 하는 식의 신상 털기가 가능했다. 이쯤 되면 혼밥, 혼술 해도 서로에게 관심 없고 정도 안 주는 ‘익명성’의 도시 서울이 너무나 그리워지는 거다.



서울로 돌아온 지 여러 달, 아직도 고향에서 만난 분들에게 연락이 온다. “잘 지내지? 걱정돼서. 편하고 좋은 여길 두고 왜 객지로 가서 고생이야.” 필경 ‘선한 의지’에서 물었을 이 질문에도 다시 한 번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잘 떠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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