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팁/유용/추천 원덬의 마음을 오랫동안 평온하게 해준 글 (끝이 보이는 관계에 마음을 쏟은 이유)
6,020 87
2019.09.22 01:58
6,020 87
글은 길고 만화만 봐도 내용 이해가능
원덬은 이거 보고 깨달은 바가 커서 마음이 평온해짐

https://img.theqoo.net/dzIZk

끝이 보이는 관계에 마음을 쏟는 이유
지속되지 않아도 설령 끝이 나쁘더라도 한때 좋았던 관계를 깎아내리진 말자.



유월에 좋아하는 친구 두 명이 회사를 떠났다. 2년간 함께 일했던 ㅎ은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고, 6개월간 내 앞자리에서 반짝이던 ㅇ는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나는 사람에 큰 의미를 두는 인간이므로 당분간 빈자리를 볼 때마다 적적해할 계획이다. 때마침 장마도 시작됐으니 바야흐로 센티멘털해지기 좋은 계절이다.

상황과 계절 핑계를 앞세웠지만, 실은 매 순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일정량 이상 껴안고 지낸다. 본격적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던 겨울이 아니었나 싶다. 수능 끝난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동산을 산책 삼아 오르내리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주로 미지의 영역인 대학 생활에 대한 상상이었다. “대학 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가 어렵대. 거의 다 겉 친구래.”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오래간다더라” 같은 소리를 하며 이상한 의리를 쌓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벗어나 만난 관계에서 생긴 말썽은 예상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운 좋게도 내가 속한 집단마다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가 되는 자유로운 문화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놀랄 만큼 쉽고 깊게 새 친구들을 좋아하게 됐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관계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급하게 가까워진 친구는 여름날의 반찬처럼 쉽게 상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이십 대 초반에는 일상의 중심이 자주 바뀌는 법이니까. 일정표를 채운 단어가 ‘동아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소울 메이트라고 불렀던 친구와 별일 없이 멀어졌을 때. 봉사 활동을 하며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하나둘 인사도 없이 메신저 단체방을 나갔을 때. 나는 놀이터에 홀로 남은 아이처럼 처량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주인 없는 마음은 미처 식지 못해 아직 따뜻한 상태였는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는 매사에 계산적으로 굴고 싶어졌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 연연하는 촌스러운 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상처받지 않을 것인가’하고 머리를 굴리는 일이 늘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지내기도 했다. 누군가 좋아진다 싶으면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뾰족한 말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역시나 마음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매번 어려웠다. 어쩌다 한 번 정답을 맞춘 뒤에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에서는 또 헤매야 했다.

그 방황을 끝내준 사람은 뜻밖에도 스물셋 겨울 함께 토익 공부를 하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보통 토익 스터디에서 만난 이들과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마련인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는 예외적으로 합이 좋았다. 수업 전후 짧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정한 기운이 깃들어서, 머리로는 ‘어차피 곧 다시 못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던 날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은 육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쩐지 야속해서 내내 꽁해 있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만나지도 않을 거잖아요.”

흥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으나, 과연 좋은 사람이었던 언니 오빠들은 어른스럽게 나를 달랬다. “꼭 자주 봐야만 인연인가?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연이지!”그건 찰나의 대화였지만 이제껏 관계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처받았던 느린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아,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그동안 오늘 손에 쥔 관계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가난했던 거구나.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관계는 그날로 끝났다. 대신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의 술자리는 기억 속에 잠겨 있다가, 내가 관계에 회의감을 느낄 때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리고 다정했던 언니 오빠들처럼 내가 너무 인색해지지 않게 다독여준다. ‘지속되지 않아도 설령 끝이 나쁘더라도 한때 좋았던 관계를 깎아내리진 말자.’

다시 유월에 했던 두 사람과의 이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분명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부딪칠 때보다는 멀어질 것이다. 곧 무언가 일상의 가운데를 차지할 테고 지나간 이는 자리를 내주어야겠지. 그래도 우리가 주고받은 다정한 쪽지나 사진 같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 마음을 쏟길 잘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857호 – small mind]
ILLUSTRATOR liz
목록 스크랩 (71)
댓글 8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바이오던스🩷 ] #핑크콜라겐 #핑크젤라또 NEW 클렌징 2종 체험 이벤트 457 03.09 75,554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1,265,742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5,819,34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9,200,03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 금지관련 공지 상단 내용 확인] 20.04.29 28,079,313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5 21.08.23 6,405,85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42 20.09.29 5,347,496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84 20.05.17 5,997,752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94 20.04.30 6,388,657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1,333,742
모든 공지 확인하기()
2660792 이슈 초심 잃은 홍진호 (feat. 임요환) 05:28 82
2660791 유머 7년동안 스트릿생활한 고양이 친구 냄새맡고 토하는 집냥이 2 05:17 458
2660790 유머 스위스가 트럼프를 다루는 법 3 04:55 1,100
2660789 유머 새벽에 보면 완전 추워지는 괴담 및 소름돋는 썰 모음 171편 2 04:44 321
2660788 팁/유용/추천 요즘 일본 여자 오타쿠들 사이에서 입소문 타고 있는 만화...jpg (핫게 진출했던 만화 맞음. 리디에 e북 떠서 삐삐 치러 옴) 6 04:41 1,392
2660787 유머 전남친을.. 어떻게 한거야? 17 04:21 2,756
2660786 이슈 핀란드에서 버스 타려면 달리기 해야함 15 04:09 2,068
2660785 이슈 엄마 배에서 얼굴을 내민 아기 쿼카 12 03:55 2,691
2660784 이슈 4년 전, 오늘 공개된 태용 - '먹구름 (Dark Clouds)' 1 03:45 568
2660783 이슈 연예인 마녀사냥 그만좀 했음 좋겠어요 53 03:42 4,715
2660782 유머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고양이 3 03:37 1,408
2660781 이슈 얼빡에 미친 팬들이 제발 풀캠 잡아달라고 사정하는 레벨 슬기 무대 2 03:34 1,505
2660780 유머 기상예보와 고양이 3 03:34 1,033
2660779 팁/유용/추천 평소 “ 북커버 ” 왜 쓰지 라고 생각해 왓던 나... 영원히 이고지고살것같던쇼핑백들의 효용을찾다 16 03:29 3,699
2660778 이슈 서울 지하철 어마어마 하다.... 18 03:07 4,525
2660777 이슈 법률스님 : 큰 건 들고 싶고, 힘은 안 들이는 방법은 없습니다 10 03:02 2,490
2660776 이슈 나래도연이 신인 시절에 일당 5만원 받고 공연하던 유람선에 디너 손님으로 갔는데 그때부터 계시던 승무원 분이 지금도 계셔서 맞아주시고 나래 도연의 과거를 기억해주심,,, 너무 감동이햐 15 02:57 4,506
2660775 이슈 산업스파이가 설계도를 빼내는 방법.gif 19 02:54 4,135
2660774 이슈 [폭싹 속았수다] 관식이 눈에는 영원히 크지 않는 작고 어린 딸 금명이 24 02:53 4,120
2660773 이슈 끝없이 이어지는 인피니트 아트 2 02:46 1,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