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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지존파 유일 생존자의 20년 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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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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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994년 9월8일
② 지하
③ 탈출
④ 재판
⑤ 그날 이후
⑥ 치유

범행이 묻힐 뻔했다. 납치당했던 여성 이정수(가명)씨가 겨우 탈출해 신고했다. 이씨의 제보가 없었으면 지존파가 저지른 살인은 미제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1994년 9월8일 새벽 납치당한 날부터 탈출하기까지 8일 동안 이씨는 참혹한 경험을 했다. 5명으로부터 성폭행당했고, 납치당한 다른 피해자들이 숨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이씨가 범인들이 사형당한 이후 20년 만에 언론과 인터뷰했다.






글이 길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부분만 발췌해 옴





우려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어요. 성폭행이나 죽음까지도요. 성폭행이 있었습니다. 제 몸이, 내 육체가 그렇게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누추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내 입술을 스스로 깨물어서 나중에 입술이 피가 날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김현양이 자꾸만 “살려주겠다, 살려줄 것이다”라는 말을 혼자서 계속 하는 거예요. 제가 “안 믿어요”라고 답했더니 김현양이 “다른 여자들은 잡히면, 잡아 오면 ‘살려달라’고 하던데”라고 말하더군요. 제 이름 뒤에 ‘씨’를 붙이더라고요. “왜 정수씨(가명)는 살려달라고 안 하냐”고. 그래서 제가 “살려달라고 해도 살려줄 거 아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김현양이 “그렇죠”라더군요. 저는 다시 “그런데 뭐하러 살려달라고 해요?”라고 말하고 담담하게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김현양이 한참을 저를 쳐다보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앞으로, 아마 예상은 했겠지만, 이런저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각오하셔야 될 것입니다. 강해져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존댓말로 말했어요. 그들(지존파)은 나한테 처음에는 반말을 하고 막 욕을 했지만 나중에는 다 존댓말을 썼고 이름 뒤에 ‘씨’를 붙였어요. 물론 그러다 수틀리면 다시 “야!”라고 반말을 했지만요.



https://img.theqoo.net/Azrcl




밴드마스터는 이미 술에 취해서 뻗어 누워 있었습니다. 자기가 입고 온 옷 그대로요. 신발까지요. 그래서 내가 그 방에 들어가다가 움칫했더니 김현양이가 나를 탁 밀었습니다. “정수씨”라고 저를 불렀습니다.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어요. 검은 비닐봉지를 그 사람 얼굴에 씌웠어요. 남자는 질식사했습니다. 그들이 범행을 하며 제 손을 억지로 갖다대게 했습니다.



저는 군용 침낭같이 지퍼가 달린 포대에 밴드마스터의 시신을 넣고 지퍼를 잠그는 모습까지 봤습니다. 그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담담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무덤덤했고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넋이 나갔다’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 자신이 유체이탈되어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되어서 상관없이 보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그들은 제게 다시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감옥에 밀어넣어지는데 이상하게 하얀 나비 같은 게 제 눈앞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지하 감옥에는 생물이라고는 그 전까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하다못해 벌레 한 마리도 없었어요, 거기에. 근데 하얀 나비 같은 게 보이는 거예요. 문을 열어놓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혼이 나와서 나비가 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방문이 닫혔어요




. 밖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들이 외출하기 전 김현양이 제게 마지막으로 말했어요. “우리가 못 돌아오면 실패한 거고, 우리가 실패하면 아무도 (감옥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정수씨도 여기서 죽을 겁니다.” 밴드마스터의 시신을 교통사고로 위장하는 작업을 하러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시신 처리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잡히거나 실패하면 아무도 갇힌 사실을 모르는 저는 지하에서 죽게 된다는 뜻이었죠. 성공하기를 바라라는 그런 말이더군요.




그들은 한 명을 남겨두었어요. 얼굴에 흉터가 있는 강문섭(당시 20살)이었습니다. 얼굴에 흉터가 있어 혹여 검문 등을 당할 때 쉽게 기억될 우려가 있어서였죠. 작업이 실패하거나 경찰이 들이닥치면 강문섭은 1층에서 자결하도록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갇힌 감옥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어쩌면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성공을 간사하게 원했죠. 그들이 문을 닫고 나간 뒤 울었어요.










여차하면 달아나려는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소씨의 부인 박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김현양은 이미 손에 칼을 들고 벌초하는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박씨가 차에 앉은 저를 쳐다보길래 저도 모르게 ‘도망치라’는 신호로 고개를 흔들고 눈짓을 했어요. 박씨가 계속 저를 쳐다보다가 무덤으로 올라오는 김현양에게도 눈길을 주었습니다. 김현양이 “벌초하러 오셨나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소씨가 “네”라고 답하며 낫으로 계속 벌초를 했습니다. 박씨는 저와, 남편 소씨와, 밑에 있던 나머지 조직원들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김현양이 산소에 올라가서 소씨를 확 잡아챘습니다. 소씨가 순간적으로 낫을 들고 있다가 “여보, 피해!”라고 외친 뒤 산소가 위치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격투 끝에 부부는 잡혔습니다. 낮에 벌어진 일입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전 11시쯤 됐어요. 달력을 안 본 지 오래돼서 날짜관념은 없었습니다. 외과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어요. 옆에 환자들이 있었어요. 대부분 할머니들이었어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김현양이 제 옆에 앉더니 제게 “도망가고 싶죠? 탈출하고 싶죠?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 말이 마치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 봐라, 내가 도망가게 해주나, 턱도 없다’라고 역설적으로 들렸어요. 저는 “도망은 무슨요”라고 말하며 속으로 ‘난 도망갈 거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도망갈 거야, 어떤 식으로든지 도망갈 거고, 내가 여기서 도망 못 가면 네가 오늘 나를 노래방에도 데려간다 했으니 아지트로는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늦게 들어갈 거야, 도망갈 기회는 분명히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여기서 소리를 질러봐야 다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기 때문에 도움이 안 될 거야, 또 병원 밖에 걔(지존파)들이 따라왔을 수 있어, 어쩌면 이건 내 마지막 실험일지도 몰라’라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저를 시험에 빠뜨리는 거고, 다른 지존파 조직원이 뒤따라왔다는 생각마저 한 겁니다. 그만큼 당시 제게 그들은 공포스러운 존재였습니다.

10분쯤 지나자 간호사가 “김현양씨”라고 불렀습니다. 간호사가 부르니 김현양이 일어서더니 멈칫하며 저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습니다. 지갑과 핸드폰을 제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절뚝절뚝 걸으며 진료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한번 저를 뒤돌아보더니 씩 웃었습니다. 약간 비웃듯이, 입술을 한 끝으로 올리면서 웃었습니다. 진료실 문이 닫혔습니다











제가 정신없이 “아무 데도 연락하지 말라. 제가 가진 돈 다 드리겠다”고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전화 한 통만 쓰게 해달라”고 말했어요. 아는 번호가 기억이 나서 계속 잘못 누르기를 반복하다가 일하던 카페 전화번호가 기억이 나서 번호를 눌렀어요. 처음 전화를 건네받은 카페 후배가 “언니, 도대체 어디야? 지금 여기 난리 났어! 아저씨(밴드마스터)가 교통사고 처리됐는데 언니가 실종이라고 경찰들이 곧 (카페에) 오기로 했어”라고 말했어요.

제가 “내 얘기 잘 들어. 이건 범죄야. 일단 너는 아무 얘기도 하지 마라. 내가 서울로 갈게”라고 말했어요. 집주인에게 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어요. 택시, 승용차 모두 싫고 화물차나 큰 트럭을 빌려 달라 그랬어요. 그런데 그때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라 렌트가 안 된다는 거예요. 다들 시골 고향에 내려간 거죠. 집주인이 “자기가 아는 사람 승용차를 빌려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어요. 제가 “아저씨가 서울에 데려다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했어요. 포도를 따야 한다고 했어요. 대신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불러주겠다고 했어요. 승용차가 왔어요.

중년의 아저씨가 왔는데 “이 시간에(밤에) 누가 어디를 간다고 불렀어?”라고 말했습니다. 집주인이 자세한 말은 안 했습니다. “이 여자분 어디 간다는데 좀 태워다 줘”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차 바닥에 누웠어요. 좌석도 아니고 바닥에 그냥 누웠어요. 아저씨가 차를 모는데 영광 근처 도로에서 검문이 있었습니다. ‘아, 이건 진짜 검문이 아니라 그들(지존파)이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아저씨, 검문 그냥 지나쳐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저씨에게 “차창을 열지 마세요, 제발”이라고 애원을 했죠. 검문하는 게 그들일 거라고 저는 100% 믿은 거예요. 실제로 그들은 경광봉도 갖고 있었거든요. 저한테 교통사고 난 것처럼 경광봉으로 차를 세우기도 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런 식으로 차를 세우겠다는 범죄계획도 있었고요.

검문을 지나 차가 달리기 시작했죠. 그분은 대전까지밖에 못 간다고 했어요. 돈을 더 줘도 대전까지밖에 못 데려다주니 대전에서 택시를 이용하든지 하라고 말했어요. 대전에 내리니 새벽 1시쯤이었어요.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그냥 차가 다니는 4차선 도로변에 내려달라고 해서 내렸어요. 거기서 또 택시를 잡았어요. 대전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얼마냐고 물었어요. 차비로 20만원을 줬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의사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에게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아예 안 했죠. 굉장히 방어적이고 공격적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공격적이었습니다. 가령 백화점에 가서도 누가 저를 뒤에서 밀면, 인상을 팍 쓰면서 “아, 씨, 왜 밀고 지랄이야”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사건 전과 달라진 거죠. 이전엔 안 그랬어요. 사건 이후 굉장히 공격적이 되었고 나이가 많든 적든 반말로 하게 됐어요. 가령 아줌마가 저한테 뭔가 잘못을 하면, “아줌마, 이렇게 사람을 밀고 가면 잘못했다고 얘기를 하고 가야죠, 쳐다보기만 하고 가면 다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제대로 답을 안 하면 저는 “미안하다고 해야죠, 사람을 이렇게 밀어 놓고 그냥 가는 게 어딨어?”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싸울 준비가 된 상태였습니다. 분노조절이 안됐어요. 남편도 그걸 알았고 “너 백화점 가면 불안하다, 블랙리스트야, 너”라고 짐짓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시 누구라도 내게 피해를 주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생각했고 침대 머리맡에 작은 칼을 두고 잤어요. 집에 들어오면 분노조절이 안돼서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열받아서 씩씩댔고 그 기분이 집에서도 이어졌어요.

다섯번째 만남에서 의사가 공격성의 원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제가 거기(지존파 아지트)서 무기력하게 당했던 게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가 납치 당시에는 ‘나는 힘이 없으니까’라고 납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이 방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라고 했어요. 더이상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공격적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오게 된 트라우마의 하나라고 의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그 순간에 바로 오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 오는 사람이 있고 천차만별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정수씨 같은 경우는 그전에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그 순간에는 트라우마가 오지 않았다가 나중에 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건 이전에는 모든 게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불쌍한 사람 도와주자’주의였어요. 그런데 사건을 겪고 아빠가 돌아가시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공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1. 1994년 9월 8일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8528.html?_fr=nv


2. 지하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09522.html?_fr=nv



3. 탈출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0519.html?_fr=nv



4. 체포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1191.html?_fr=nv#cb



5. 수사와 재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2231.html



6. 그 날 이후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3224.html?_fr=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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