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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조국 사태에 대한 전우용 역사학자 페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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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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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 가족이 부잣집에 침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은 아들의 친구입니다. 친구에게 과외 교사 자리를 인계받은 뒤에 명문대학 합격증을 위조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스펙의 시대라지만, ‘스펙보다 연줄이 먼저’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우쳐 줬으니까요. 나머지 가족들이 침투할 때에도 '연줄'이 선차적이고 '스펙 위조'는 부차적이었습니다. '몰락한 가족'도 연줄을 이용합니다. 연줄 문화는 초계층적입니다.


같은 대학교 학생이라도 누구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누구는 과외 교사 알바를 합니다. 이 차이에조차 ‘부모의 연줄’이 작용합니다. 100시간 봉사활동을 하고서도 자소서 한 줄 분량밖에 못 채우는 아이도 있고, 2주 인턴쉽만 해도 논문 제1저자가 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물론 연줄 외에 부모의 경제력이나 타고난 성별도 ‘불평등한 현실’을 만듭니다. 하루 몇 시간씩 알바를 하면서 학자금 융자까지 받아야 하는 학생도 있고, 아무 부담 없이 학업과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2년 동안 군대에 가야 하는 젊은이도 있고, 그 시간 동안 해외에서 어학 연수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생래적(生來的) 불평등이 유독 현대의 문제는 아닙니다. 역사의 전 과정에서 보자면, 이런 불평등은 차츰 완화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삼성 이재용씨 아들이 영훈국제중에서 자퇴했을 때, SNS에 “가장 속 상하는 사람은 이재용씨나 그 아들이 아니라 동기생 학부모들일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삼성 후계자 집안과 인연 맺을 기회가 날아갔다고 봤을 테니까요. ‘연줄 맺기’는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연줄은 교회에서도, 고급 빌라 단지 안에서도, 골프장이나 헬스장에서도, 심지어 병원 내에서도 맺어집니다. 속세를 등지고 ‘자연인’이 되지 않는 한, 누구도 연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줄이냐가 문제일 뿐.


이번 조국 교수 딸 사건과 관련해서도 언론들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몰아가지만, 저는 문제의 핵심이 ‘특목고’로 맺어지는 연줄에 있다고 봅니다. 한영외고는 학생들로부터 취득한 ‘학부모 개인 정보’를 이용해 재학생 스펙 쌓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재학생들을 등급화, 차별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가 만들어준 시스템과 관행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학부모 처지에서는 자기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부탁하는데 거절하기도 어렵고, 학교에서 추천하는 프로그램을 의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의 ‘원천적 부도덕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했더라도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조국 교수 부부가 이 프로그램 운영에 어느 정도로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가 이명박 정권 때라는 사실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영외고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아마도 많은 학교가 이런 식의 ‘스펙 쌓기 프로그램’을 운영했거나 하고 있을 겁니다.


연줄 자체가 사라지는 세상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겁니다. 가족 자체가 해체되지 않는 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식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도 완전히 소멸하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상하 연결은 끊어지고 수평 연결만 유지되는 ‘계층별 연줄사회’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사고 폐지 반대 운동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는 계층별로 단절된 ‘수평적 연줄’ 문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별도의 학교'에 격리하라고 요구하는 게, 이 시대 학부모들의 '정상적' 태도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에서도 ‘특목고의 학부모 정보를 이용한 스펙 제공 서비스’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언론들은 ‘계층별 연줄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을 문제 삼지 않고, 이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환해 버렸습니다. 특목고 자사고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가장 격렬히 비난하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조국 교수 딸 사건은 그가 지향해 온 ‘가치’와 비교하면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지만,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딛고 있는 현실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곳이 진흙탕이니 좀 더 깨끗한 곳으로 옮겨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고, “발에 진흙 묻은 건 모두 마찬가지니 그냥 이대로 있자”고 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대학 다니다 군복무 마치고 온 아들에게 “고등학교 때 2주 인턴쉽 하고 논문 저자된 ‘사람’에게 분노하지 말고 그런 일이 가능한 ‘현실’에 분노해라”고 얘기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학습과 스펙 쌓기를 병행하면서 입시 지옥을 겪은 세대로선 참고 볼 수 없는 일이겠죠. 이들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리고 이 분노가 개혁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아들 또래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현실에 디딘 발만 보지 말고 미래를 향한 눈도 함께 보라고.


재벌 지배 체제 해체하자면서 재벌 기업에 취업하는 사람.

최저임금 인상해야 한다면서 자기 종업원에겐 최저임금만 주는 사람.

부동산 불로소득 없애야 한다면서 청약저축 가입하는 사람.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사회 바꿔야 한다면서 건물 사는 사람.

전관예우 철폐하자면서 전관 있는 대형 로펌에 의뢰하는 사람.

대학 서열구조 타파해야 한다면서 제 자식 SKY 보내려는 사람.

사교육 없애야 한다면서 제 자식 사교육 시키는 사람.

특목고 폐지해야 한다면서 제 자식 특목고 보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표리부동하고 위선적이며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면, 개혁 담론은 사라지고 ‘현실’의 모든 부조리가 절대화합니다. 개혁에 반대하는 것이 오히려 일관성 있고 도덕적인 태도로 평가되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개혁적 진보적 담론’은 ‘가난하고 실패한 자의 담론’이라는 틀 안에 갇히게 됩니다. 전에 ‘도덕성의 심급(審級)’이라는 말을 쓴 것도, 현실에 디딘 발과 미래를 향한 눈을 함께 봐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


어제 ‘계층별로 단절된 수평적 연줄문화’에 대해 쓴 글 때문에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한영외고가 만들어 운영한 ‘스펙 제공 프로그램’에 조국 교수 부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이 있었다면, 이건 중대한 문제가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스펙 제공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게 당시 특목고들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면, 판단의 준거는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 시험 문제든,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문제를 이해했다고 바로 정답을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를 이해하고 틀린 답을 쓰는 것보다 문제를 읽지도 않고 틀린 답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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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우용도 자기편에는 어쩔 수 없네


현실의 부조리를 깨부시는 건 부조리를 만든 사람을 잡는 건데

너네편 부조리는 사람을 잡고 우리편 부조리는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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