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조 되시겠다
다들 알다시피
광해군을 폐모살제라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 쳐내고
조선 왕좌에 앉으신 분이지
얘가 왕좌를 갈아치울 수 있도록 승인해준 것은
당연히


광해군 때문에 10년간 처박혀 살던
인목대비(=소성대비) 되시겠다
이 분은 선조의 왕후 이신데
적녀가 한명 있었고 그게 유명한 정명공주

선조의 유일한 적녀이기도 하고
광해군에 의해 사사된 영창대군의 친누나.
아무튼
폐모살제라는 명분으로 광해군을 쳐냈으니
인조는 죽기살기로 인목대비랑 정명공주를
깍듯하게 모실수 밖에 없었음.
자기가 왕권을 잡은 명분이
이 모녀랑 직결되어 있었으니까 ㅇㅇ
문제는 왕 노릇 하는 족족
정통성 컴플렉스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고
대비전 눈치가 안보일수가 없는거..
자기가 왕위를 찬탈했듯
언제든 인목대비의 승인만 받으면
왕권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에 너무 불안해 했음
그래서 인목대비 사후까지는 정말
대비전 눈치를 보며 숙이고 숙이며 지냈는데
문제는 인목대비가 승하하고 난 다음임
그동안 숙이고 살았던 스트레스의 화살을
정명공주에게 돌리게 된 것임
그래서 정명공주가 자신을 저주했다며
자작극인지 뭔지 알수도 없는 사건의 배후로
정명공주를 지목함.
문제는 이 과정도 어거진데
정명공주 처소 궁녀들은 너무 잔혹하게
문초를 했다는 거야

압슬
대역죄인에게만 행하던
고통과 후유증이 사람 x신 만드는 가혹한 형벌

낙형
압슬과 마찬가지로
잔혹성 최상위권 형벌
불로 지지는거임...
주리를 트는 수준이 아니라
궁녀들이 버티기 힘든 모진 형문을 가해서
결국 고문치사로 사망자가 줄줄이 나왔다고 해
그 와중에도 궁녀들이 입을 안열어서
결국 정명공주 공격은 실패했지만
자기가 왕 해먹고 싶어서
인목대비 모녀를 명분으로 반정 일으켜놓고
그 열등감을 인목대비 죽자마자
정명공주한테 푸는 저 찌질함..
덕분에 정명공주는 인목대비 사후에
인조 효종 현종 대까지
계속 눈치보며 살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 종친 큰 어른으로
다시 깍듯하게 대우받고 83세까지
장수하다가 가셨다고 함
저 새끼의 만행은 저게 다가 아님

인조에게는 큰아들 소현세자가 있었는데
청나라 유학(?)파였고 아버지와는 여러 정황상(인조의 치세, 나라의 형국 등)
껄끄러울수 밖에 없는 사이였음.
근데 그 와중에 소현세자가 요절을 해버림
원칙적으로는 소현세자의 아들이
왕세손으로 책봉이 되었어야 하지만
인조가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려서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 (훗날 효종)이 세자로 책봉 됨.
인조새끼의 개막장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 봉림대군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없애기로 마음먹는데

그게 바로 요절한 소현세자의 남은 가족인
민회빈강씨와 원손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음

그 첫번째 작업으로 소용 조씨 (인조의 후궁) 을
민회빈강씨가 저주했다고 누명을 씌워서
빈궁에 있는 궁녀들을 데려다 가혹한 문초를 함
하지만 강빈이 조소용을 저주한 일이 없으니
당연히 궁녀들은 토설을 하지 않았고 많은 궁녀가 죽어나감

시발 존나 빡친다 이거에요
야 강빈 별당에 처박아두고 못나오게 해 라고
어명을 내림 개새끼
그리고 두번째 작업을 시작하는데
자기 수라에 독이든 전복이 올라왔다며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겠다 함
관례로는 의금부에서 조사를 해야되는데 ㄴㄴ 내가 할께
내관들을 통해서 조용히 자기들끼리 조사하는 척을 함

결론은 모다? 아무튼 강빈이다
아몰랑 강빈 짓이양
강빈의 궁녀 10명중 7명이 고문치사로 죽어나갈 정도로
모진형문을 가했고 주변 여론들도 다 왜저래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밀어붙여서 결국 강빈까지 사약으로 끝장내고야 맘
그리고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아들은 제주도로 유배 보내버림
헷갈릴까봐 다시 언급하자만 인조의 친손주들임 ㄷㄷ
미친새끼가 따로없음

조선 왕 중에 누가 젤 쓰레기냐는 여러명의 후보가 있지만
원덬은 열등감과 찌질함 무능함으로 봤을때 이새끼가 삼대장 안에 꼭 든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