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다 봤지만 그럼에도 아리까리 했던 사람들을 위한 정리글



택시기사였던 아버지, 미용사였던 엄마와 부유하진 않았지만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대학 때 꿈은 아나운서였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고 기자를 꿈꾸던 준하를 만나 결혼, 아들 하나 낳고 행복하게 살던 중

기자였던 남편이 끌려가 고문으로 사망하고

설상가상 어린 아들은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남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품고
혼자서 힘겹게 아들을 키워냈으나
남편의 죽음과 아들의 사고는 혜자의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 치매에 걸린 와중에도 혜자는 끝없이 이 두 사람을 구하고 싶어한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아빠(아들)을 구할 수 있을텐데..
준하(남편)을 구할 수 있을텐데..
시간을 돌리는 것에 대한 집착, 과거에 대한 회한은

준하에게 선물했던 예물 시계를
시간을 돌리는 시계로 둔갑시켰고
치매 할머니 혜자는 상상 속에서 준하를 만나 사랑을 시작했던 스물 다섯으로 돌아가게 된다.
혜자의 시간은 스물 다섯으로 돌아갔지만 얼굴은 노인에 머물러있고
혜자는 이 모든 것이 그 기묘한 시계의 오작동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혜자의 세계에서 아들은 아빠, 며느리는 엄마, 손자는 오빠의 모습으로 재편성되고
요양원에서 자신을 담당하는 젊은 의사는 결혼하기 전의 남편이 되었다.

매일 망상 속에 사는 혜자.
무료해서 일을 하고 싶은 혜자는 상상 속에서 자신의 좋은 목소리를 이용해 계란도 팔고,
슈퍼 알바를 해서 소소한 돈벌이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재밌게 지내지만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는 스물 다섯살의 동갑내기 친구는
혜자의 상상 속에서만 스물 다섯 아가씨일 뿐
그녀 역시 노인이다.

기자가 되었다가 억울하게 죽은 남편은 혜자의 상상 속에서 기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신문사 대신 효도관 직원으로 취직해 혜자와 매일 마주치고 있다.

그러나 혜자가 만나는 준하는 준하를 꼭 닮은 요양원의 젊은 의사일 뿐..
젊은 친구들도, 준하도 실제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혜자는 자신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아빠를 보며 아빠가 자신의 늙은 얼굴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들은 자신을 아빠로 착각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괴롭다.

괴로운건 며느리도 마찬가지. 혜자의 망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이혼하자는 남편의 말에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냐며 화는 냈어도 치매 노인을 봉양하다가 지치던 차..
나는 엄마 편이라는 혜자의 말에 며느리는 우동을 먹다 눈물을 흘린다.

스물 다섯 혜자는 자신이 늙으면서 갑자기 요리솜씨가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혜자의 솜씨는 스물 다섯 초보의 솜씨가 아닌 평생 살림을 하고 요리를 해온 노인의 솜씨인 것.
능숙하게 밥상을 차리고, 요리를 하고, 아빠(아들)의 도시락을 싸는 혜자.
그러나 아들은 어릴때 엄마가 매일 지겹도록 먹였던 멸치가 지금도 싫고..
엄마(혜자)는 지금도 아들의 다리를 걱정하며 뼈에 좋은 멸치를 먹이고 싶어한다.
경비원인 아들이 모욕을 당하자 혜자는 엄마의 심정으로 아들을 위해 나서서 싸우고
아들은 점점 치매가 심해지는 엄마가 슬프고 안타깝다.

혜자의 상상의 세계 속에서 준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망가지고
혜자는 끝없이 준하를 구하려고 한다. 혜자가 구해줄거야. 혜자가 널 구해줄거야.
준하는 혜자의 도움으로 잃었던 자신을 되찾고 오로라를 보러 떠나려 했다.
즉 혜자의 세계에서 준하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지만,
죄책감에 시달려온 혜자는 아직 준하를 완전히 보내지 못했다.
혜자는 직접적으로 준하를 구해야했고, 피투성이 준하를 직접 구해 바다에 데려가야만 했다.
준하의 유골을 보낸 바로 그 바다에..
오로라를 보러 자유롭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혜자에 의해 구출되는 과정을 겪어야만,
준하는 혜자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혜자는 상상의 세계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준하를 고문실로 쳐들어가 구해낸다.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준하는 바다로 가서 자유로워지고,

준하를 살려내 바다에 가서야 혜자는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와 현실을 자각한다.
이제 혜자는 자신이 스물 다섯이 아니라 치매 노인이라는 것을 안다.

혜자의 눈에 아들과 며느리가 보이고

자신을 요양원 의사라고 소개하는, 준하가 아닌 젊은 의사가 보인다.

혜자는 이제 긴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다.
사실 혜자는 친구들과 여행(죽음)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여행은 준하를 구하기위해 미루어진다.
친구1 - 혜자는 잘 가고 있으려나?
친구2 - 혜자 어디 가는데?
친구1 - 바다 가고 싶다고 준하 찾으면 같이 간다고 했어.
차가운 지하실에 쓰러진 준하를 내버려두고 떠날 수는 없었기에
준하를 어떻게든 구해서 바다에 데려다주고 갔어야 하는 것.
이제 혜자는 준하의 억울한 죽음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자신도 곧 준하가 있는 곳으로 떠날 것이다.

그러나 준하를 죽게 만든 형사로부터 자신의 시계를 돌려받은 혜자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똑같이 치매 노인이 된 가해자와 피해자.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을 혜자는 용서하고 떠날 수 있을까.

없느니만 못한 아버지 때문에 자해도 하고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해 내 자식에게마저 서툴렀던 사람,
평생 외로웠던 사람..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하다던 혜자는

50년 동안 그 곳에서 자신을 기다렸던 남편을 마침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함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