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볼만한 기사라고 생각해서 가져옴
전문은 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111631
“그런 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 마주 앉은 여성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산부인과 상담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선생님, 여기 해주는 병원이라고 하던데요.”
28년차 산부인과 의사 김 씨가 바로 맞받았다.
“안 한지 꽤 됐습니다.”
“여기 버스타고 오는데 1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여성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24세 직장인이었다. 애인과 이별한 직후였다.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는 남자친구를 겨우 떼어놓았을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선생님, 수술 안 하면 제 인생 망해요. 돈도 없고 집도 없어요. 무조건 지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5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낙태수술을 했다. 일명 ‘낙태의사’였다. 한 달에 20~30명이 왔다. 사연 없는 여성은 없었다. 이날 찾아온 환자도 다르지 않았다. 김 씨가 상담실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5주차네요. (화면 속 동그란 점을 가리키며) 이게 아기예요.”
“부탁이에요. 선생님. 지워주세요.”
이 순간이면 김 씨는 늘 고민에 빠진다. 낙태수술 비용은 임신기간이 1주일 길어질 때마다 보통 10만 원씩 늘어난다. 5주차면 최소 50만 원, 10주차면 100만 원 이상 받는다. 출산 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무시하기 어렵다. 김 씨는 마주 앉은 여성에게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된 여성들은 후회하지 않아요.”
5년 전, 양손에 오렌지 주스를 가득 든 채 김 씨를 찾아온 여성이 있었다. 오래 전 낙태를 해주지 않고 돌려보낸 환자였다. 이혼을 앞두고 임신했던 이 여성도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땐 낙태하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이혼은 이혼이고 아이의 생명은 별개”라는 김 씨의 말에 여성은 발길을 돌렸다. 두 달쯤 뒤 그는 김 씨를 다시 찾았다.
“선생님, 이혼서류 접수했어요. 제발 수술해주세요.”
“임신 13주가 넘어 위험합니다. 못 해줘요.”
다른 병원에서 얼마든 낙태할 수 있을 텐데 두 달 가까이 아이를 뱃속에 간직했다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김 씨는 생각했다.
3년 후 김 씨를 다시 찾은 여성은 “그때 말려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성은 이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김 씨는 20년 넘게 낙태수술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수술대에 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성들을 보며 내가 정말 이 사람을 돕고 있는지 스스로 묻곤 했다. 김 씨가 수술을 거부하자 결국 출산한 뒤 아이를 입양 보낸 20대 초반의 한 산모는 “최소한 아이에게 살 기회를 줬다”며 위안 삼았다고 한다.
이달 초 “생각해보라”며 돌려보냈던 24세 직장인은 2주 만에 김 씨의 상담실을 다시 찾았다. 여전히 단호했다.
“더 커지기 전에 수술 받고 싶어요. 더 커지기 전에….”
김 씨의 대답도 그대로였다.
“아이 낳은 여성은 대부분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우면 두고두고 괴로울 거예요.”
여성은 상담실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선생님은 따님이 있으세요?”
“….”
“따님이 저 같은 상황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피임 교육 잘 시킬 겁니다.”
“저도 피임했는데 임신한 거예요. 선생님은 따님한테도 낳으라고 하실 건가요?”
대답을 원하는 듯 잠시 기다리던 여성이 상담실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