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자의(郭子儀 697~781)
곽자의는 당 중기의 명장이자 충신으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많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생의 승리자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어째서 그가 이런 별명을 얻었는지 그의 업적에 대해 간략히 나열해 보자면
-수많은 반란과 외적의 침입을 막아낸 장수로써의 능력과 업적
-당나라를 위협하던 강대한 유목민족인 위구르와의 화친을 성사시킨 외교적 능력과 업적
-문관의 최고 직급인 중서령, 무관의 최고 직급인 원수를 동시에 역임, 분양왕이라는 봉작도 하사받음
-적들로부터 여러번 참소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처세술
-수많은 자식들을 두고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함
간략하게만 봐도, 부와 명예, 장수까지 다 누린 인생승리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활약은 755년 당나라를 뒤흔든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시작된다.
안록산 (?~757)
안록산은 소그드인이라 불리우는 중앙아시아 유목계 출신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에 능해 당 현종의 총애를 받던 사람이었다.
그는 현종의 총애덕분에 3개 지역의 절도사를 겸임하는 등 엄청난 실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당시 재상이던 양국충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고구려 유민 출신의 유능한 장수인 고선지가 부원수로 임명되어 분전하나,
현종 : 너 니맘대로 군대를 막 이동시켰다며?
고선지 : 근데 안그랬으면 우리 전멸당하는데요?
현종 : 됐고, 너 사형임 ㅅㄱ
고선지 : 아나 ㅆㅂ...
모함받아 참수되는 등 당나라의 상황은 개판 5분전이었기 때문에 안록산의 군대는 낙양을 거쳐 수도 장안에 입성하게 되고 결국 당 현종은 지금의 쓰촨성 일대로 피난을 가게 된다. 이때 우리의 주인공 곽자의는 당시 삭방절도사 안사순의 밑에 있었다. 그는 안록산의 일족이었기 때문에 해임되고 대신 곽자의가 삭방절도사직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군대를 지휘하게 된 곽자의는 바로 군사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우선 남은 병력들을 끌어모으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후 당 조정에 또다른 명장인 이광필을 추천하여 그에게 병력을 나누어 주고 하북으로 진격. 안록산의 수하 사사명과 수 차례 교전하여 승리하였고, 여러 지역을 회복하였다. 757년에 이르러 그는 하동지역을 제압하였고, 그 해 9월, 대반격에 나서서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의 10만 대군을 격파하며 수도 장안과 낙양을 탈환하기에 이른다. 이 때의 공으로 그는 당대 장수들 중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당시 당나라군으로 참전했던 이민족들에게도 명성이 퍼지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현종의 뒤를 이은 당 숙종이
숙종 : 님 아니었음 우리진짜 망할뻔 ㄱㅅㄱㅅ (나의 집안과 나라는 경을 통하여 다시 만들어졌소)
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의 일로 앞으로 그는 많은 신료들의 질투와 시기를 받게 된다.
그 후 그는 환관 어조은과 정원진등의 계속된 참소와 방해공작으로 군권을 내려놓게 된다. 이 시기 곽자의는 지속적인 음해와 침소를 당했으며, 해를 입을까 두려워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던 곽자의였지만 당시 당나라의 상황은 곽자의 같은 명장을 놀려두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당나라가 안사의 난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763년, 토번제국의 군주 치쏭데짼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당을 침공, 장안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에 당시 황제였던 당 대종은 섬주로 피난을 가고 곽자의는 다시 복직하여 장안을 탈환하기 위하여 여기저기서 군사를 모으는데 노력한다. 하지만 겨우겨우 모은 병력은 총 4천명에 불과하였고, 이는 20만에 달하는 토번의 군대를 상대하기에는 중과부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당 대종도 곽자의에게 우려를 표했다. 이에 곽자의는 대종에게
"신은 경성(장안)을 수복하지 않으면 폐하를 알현할 수 없으며, 만약에 남전으로 군사를 내보내면 오랑캐는 반드시 감히 동쪽으로 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간지폭풍의 답문을 남기고 토번을 견제하러 떠난다. 이 때 장안에서는 토번군사이에 전염병이 퍼지고 있었고, 곽자의가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수복하러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결국 토번군은 장안에서 철수하기에 이른다. 단 수천명의 병력이었지만 자신의 명성에 힘입어 20만 토번군을 퇴각시킨 것이다. 이 후 곽자의는 황폐해진 장안을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하였고, 그 공을 인정받아 경성유수에 임명된다.
토번의 침략도 종결되었으나 아직 곽자의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안사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 복고회은이라는 장수가 여러 갈등과 토사구팽의 경계심으로 인해 흑화해버려 764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곽자의는 다시 전면에 나서서 반란을 진압하려고 나선다.
"야 영공(곽자의)께서 오신다는데 어떡해 ㅜㅜ"
"아니 우리가 어떻게 영공이랑 싸우냐 이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ㅠㅠ"
이 때 복고회은의 휘하에 있던 병사들은 대부분 곽자의가 삭방절도사 시절에 이끌던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의기소침하여 대부분 당 조정에 귀순해버린다.
그렇게 간단하게 난이 진압되는 줄 알았으나, 복고회은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복고회은은 토번과 위구르를 설득하여무려 12만의 대군을 이끌고 당으로 진격하였다. 물론 당연하게도 당 조정의 대응책은 곽자의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이었다.(이 당시에 곽자의에 필적하던 명장인 이광필은 죽었기 때문에 인물도 없었다) 이 때 곽자의는
곽자의 : 근데 생각해보니까 토번이랑 위구르랑 쟤네 사이 안좋지 않냐? 회흘(위구르)애들 한번 만나봐야겠네
아들 : ??? 아부지 거길 가신다구요? 가시면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지 않을까요?
곽자의 : ㄱㅊ 내가 다 생각이 있지.
단신으로 위구르 진영으로간 곽자의는 사령관 약갈라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훈계하게 된다.
곽자의 : 얘들아 너넨 안사의 난 진압할때도 우리 도와준 의리있는 녀석들이잖아. 근데 왜 복고회은같은 애를 돕는거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군사를 돌리는게 어떨까??
약갈라 : 복고회은이 우리한테 영공(곽자의)과 황제 모두 돌아가셨다고 구라쳤어요 ㅜㅜ. 영공께서 살아계셨다는걸 알았다면 저희가 어찌 왔겠습니까.
곽자의 : 저런. 그럼 형이 좋은거 알려줄게. 지금 토번애들도 군대이끌고 우리쪽으로 오고있단 말이야. 뭔말인지 알겠지?
약갈라 : 저희가 토번을 쳐부수어 영공을 속인 죄를 갚겠습니다 ㅜㅜㅜ
라고 하며 둘이서 술 한잔 적시고 화친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사기가 꺾인 토번군을 격파하여 난을 진압하였다. 이에 대종은 또 국고를 탈탈 털어서 그에게 비단을 하사하며 그의 공적을 치하하였다.
그렇게 복고회은의 난이 진압된 765년 곽자의의 당나라에서의 위치는 그야말로 '언터쳐블' 그 자체였다. 그에 대한 의심과 참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더이상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심지어 대종은
대종 : 님 상서령 해보실 생각 없음?
이렇게 그에게 상서령을 제안하기도 한다. (당나라는 관례적으로 상서령을 임명하지 않는데 이는 당 태종이 상서령을 지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서령이 최고위 관직이다.) 그 후 그는 약 15년간 대종을 보필하여 당나라를 안정으로 이끈다. 나라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는 권신이었지만 그는 제갈량처럼 당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데 그에 대한 일화가 몇가지 기록되어 있다.
1. 곽자의의 6남인 곽애는 당 대종의 딸인 승평공주와 혼인했는데, 어느 날 둘이 부부싸움을 하다 곽애가 부인에게
"야 울 아빠가 천자한다고 맘 먹었으면 너희 아부지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것 같냐?"
라고 폭탄발언을 해버린다. 그 말을 들은 승평공주는 그대로 대종에게 가서 고자질하는데 이에 대한 대종의 답변이 더 걸작
"근데 맞는말이네, 곽자의가 그러자고 맘 먹었으면 천하가 우리거였겠니?"
한편, 이 소식을 들은 곽자의는 노발대발하며 아들을 묶고 황제를 찾아가 사죄하며 죄를 받길 청하나 대종은 부부싸움이 뭐 별거냐면서 그냥 넘어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곽자의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을 곤장을 수십 대 때렸다고 전해진다.
(자치통감 권224 당기30 대종 대력 2년)
2. 766년에 곽자의의 아버지의 무덤이 도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모두 곽자의를 음해하는 환관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때 마침 곽자의가 입조한다는 청을 올리자, 장안 사람들이
"아이고, 이제 저 양반이 대군을 이끌고 우리를 조지러 오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런데 곽자의가 입조해서 하는 말이라곤
"제가 병사들을 지휘할 때 난폭한 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몇명은 도굴을 하던 놈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그 때 잘 다스리지 못한 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ㅜㅜ"
라고 말하며, 모두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구당서 곽자의전)
3. 안사의 난 이후 당은 위구르와 말을 교역하였는데 당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정보다 적은 수의 말밖에 구입할 수 없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곽자의 왈
"아니 나라에 말이 없으면 어쩌잔 거임! 폐하, 제 1년 연봉 박을테니 그걸로 일단 말 사십쇼!"
라고 말하였으나 당 대종이 거절하였다고 전해진다.
(구당서 곽자의전)
그 후 대종이 죽고 덕종이 즉위하였는데 그 때 곽자의의 관직명을 보면 대충 온갖 요직은 혼자서 다 가지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사도·중서령·영하중윤·영주대도독·선우·진북대도호·관내·하동부원수·삭방절도·관내지탁·염지·육성수운대사·압변부병영전급하양도관찰등사.(총 58자)
이렇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자 덕종은 곽자의에게 권력을 조금 내려놓을 것을 권하였는데, 쿨가이 곽자의는 흔쾌히 권력을 내려놓고 은퇴하게 된다. 괜히 만고의 충신이라 불리는게 아니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즐기다 781년 사망한다.
망해가던 당나라의 수명을 150년 이상 늘린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나라로 따지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비슷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마침 곽자의의 시호도 충무공이고, 또한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에서 곽자의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끝맺겠다. 펨창들도 곽자의처럼 성공한 인생을 살도록 모두 노력해보자
耿耿不寐時경경불매시(마음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때
傷心如裂膽상심여열담아픈 가슴은 쓸개가 찢어진 듯하고
懷痛似割肌회통사할기회한과 쓰라림은 살을 에는 듯하구나
長嘆更長嘆장탄갱장탄긴 한숨만 거듭 짓고
淚垂又淚垂루수우루수눈물만 자꾸 흐르네
懷痛如摧膽회통여최담쓸개가 잘린 쓰라린 가슴이여
傷心似割肌상심사할기살을 에는 듯 쓰린 마음이여
山河帶慘色산하대참색산하는 참혹한 빛을 띠고
魚鳥亦吟悲어조역음비물고기와 새들도 슬피 우누나
昇平二百載승평이백재평화가 이백 년에 걸치고
文物三千姿문물삼천자문물은 삼천 종에 이르는데
國有蒼皇勢국유창황세나라가 갈팡질팡한 지경에 있으니
人無任轉危인무임전위위기를 되돌릴 만한 사람이 없구나
經年防備策경년방비책여러 해 동안 막을 계책 세우노라니
恢復思諸葛회복사제갈(중원을) 다시 돌이키(려 했)던 제갈(공명)이 떠오르고
長驅慕子儀장구모자의널리 (위기를) 몰아낸 (곽)자의가 그립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