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잡이 손흥민(21·레버쿠젠)은 어느 팀에서든 첫인사를 '골'로 한다.
올 시즌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데뷔전에서도, 홍명보(44) 국가대표팀과 처음 만난 지난 6일 아이티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2013-2014 시즌 유럽 빅리그에서 가장 먼저 골을 넣은 한국인이자 홍명보팀 최초의 멀티골 득점자다. 지금 한국에서 '골잡이'는 곧 손흥민의 다른 이름이다.
모두가 손흥민의 골 소식에 주목한다. 골잡이는 다른 포지션보다 돋보이기 쉽다. 손흥민은 전형적 미남은 아니지만 천진한 미소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스타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박지성(32·에인트호번)을 시작으로 많은 한국 선수가 유럽 축구에 도전했지만, 손흥민 만한 폭발력을 보인 선수는 없었다. 어느덧 손흥민은 동시대 선수가 아닌 차범근(60) 전 수원 감독의 족적을 좇고 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차 전 감독의 뒤를 이어 레버쿠젠에 입단한 뒤로는 두 인물을 비교하는 독일발 기사가 쏟아졌다. 손흥민이 유럽에 도전하는 수준을 넘어 유럽을 발 아래 두고 호령할 가능성도 조금씩 보인다.
일간스포츠가 창간 44주년을 맞아 손흥민을 만났다. 깨알처럼 사소한 사생활부터, '가가와 신지(24·맨체스터유나이티드)만은 이기고 싶다'는 한국인 다운 라이벌 의식까지 광범위한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손흥민에 대해 손흥민이 직접 밝힌다.
-레버쿠젠은 한국인 선수가 소속된 팀 중 가장 강팀입니다. 첫 인상은 어땠나요? 정상급 구단 다운 위압감을 느꼈나요?
"당연히 느꼈죠. 함부르크보다 훨씬 경쟁이 심하고 모든 선수가 실력이 좋아요. 여긴 '대충'이라는 게 없어요. 조금이라도 몸이 좋지 않다 싶으면 경기에 내보내지 않아요. 히피아 감독님의 신뢰를 얻으려는 선수들의 노력이 매 훈련마다 눈에 보여요."
-훈련과 일상 생활도 함부르크 시절과 달라졌나요?
"지난 시즌까지 있던 함부르크는 훈련량이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인데, 레버쿠젠은 매 훈련마다 2시간씩 꼬박꼬박 채워요. 상대팀이 어떤 전술을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을 계속 바꿔요. 상대팀에 리베리(바이에른 뮌헨)처럼 좋은 윙어가 있으면 꼭 더블로 수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훈련한다든가, 그런 식이에요. 그만큼 훈련이 재밌죠. 매일 색다른 긴장감도 있고. 운동할 때마다 배우고 있어요."
-"정말 잘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동료는 누군가요?
"슈테판 키슬링은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이니까 말할 것도 없죠. 아, 키슬링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요. 흔히들 키슬링이 슛을 잘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정말 못해요. 골대 바로 앞에서 어설프게 차 넣는 골이 많거든요. 팀에서는 매일 '발이 너무 커서 슛을 못한다'고 놀려요. 키슬링 신발 사이즈가 310㎜ 정도라서 맨날 '네 신발 하나에 내 발 두 개 다 들어가겠다'고 농담을 하죠. 제 사이즈는 255㎜거든요. 작죠? 그런데 키슬링과 키가 비슷한 (김)신욱이 형도 290㎜ 정도니까 키슬링 발이 정말 큰 거예요."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의 흔적이 가장 많이 묻어있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라커룸 안에 슈어…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고민하더니) 그러니까 축구화 보관하는 방에 가면 차 감독님 사진이 매일 걸려 있어요. 거기서 축구화 관리하는 직원은 차 감독님이 선수 때부터 근무하셨대요. 그분이 차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술·담배를 입에도 안 대고 엄청나게 성실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감독님처럼 독일에 강한 인상을 주고 싶죠."
-심심할 때 제일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무한도전'과 '런닝맨'을 제일 많이 봐요. 출연하게 된다면, 음…. 뛰어다니는 건 잘할테니까 '런닝맨'에 출연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예능감은 포기하는 대신 우승상품은 노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축구 게임 '위닝일레븐'을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거 오해에요. 제일 좋아하는 건 총싸움 게임이에요. 집에 오면 헤드셋 차고 '콜오브듀티' 멀티플레이로 레버쿠젠 애들이랑 수다 떨면서 게임만 하면서 살아요. 매일 접속하는 멤버가 카스트로·보에니쉬·토프락·레노인데, 그중에 저와 레노만 솔로라서 계속 접속해 있고 나머지 애들은 여자친구 만나느라 잘 안 들어와요. 슬프냐고요? 아뇨, 슬프지 않은데요. 아무튼 대표팀 형들은 다들 위닝일레븐만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 슬슬 붙어보려고요."
-축구 온라인 게임 '피파온라인'의 광고 모델이기도 하잖아요.
"피파온라인도 많이 해요. 전 매너 있게 게임하는 스타일이죠. 채팅창에서 지저분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최대한 싸움이 나지 않게 하는 편이에요. 상대에게 골을 먹어도 'ㅅㅅ(좋은 슛이었다는 게임 은어)'이라고 해준다거나."
-'레버쿠젠 라이프'는 어떤가요.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나요?
"제가 레버쿠젠이 아니고 뒤셀도르프에 살거든요. 그래서 잘 못 알아봐요. 또 그 근처에 축구팀이 워낙 많아요. 샬케·도르트문트·뒤셀도르프·묀헨글라드바흐…, 그러다 보니 저한테까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함부르크에 살 때보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니까 시내에 나갈 때 편해서 좋아요."
-박지성 선수는 "축구는 잘하고 싶지만 유명해지는 건 싫다"고 했는데, 손흥민 선수는 유명세를 즐길 준비가 됐나요?
"전 지성이 형 말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유명해 지면 솔직히 부담감이 있죠. 전 진짜 좋아서 축구를 하는거지 유명해지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축구를 잘 하면 유명세가 따라붙겠지만 그건 별로에요. 축구장 밖에선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지내고 싶어요."
-원정 갈때 가방에 꼭 챙겨가는 물건은?
"아이패드죠. 영화·노래·예능 프로그램 다 넣어둘 수 있으니까. 제일 최근에 본 영화는 '내가 살인범이다'인데 독일어로 봤어요. 독일 아이튠즈에서 다운받으니까 독일어로 된 것만 받아지더라고요. 되게 재밌었어요. '베를린'도 봤는데 내용이 복잡해서 틈틈이 보기엔 별로였어요. 가끔은 일부러 독일 영화도 봐요. 말을 배워야 하니까요."
-스피드 상식퀴즈입니다. 1번. 이석기가 누구일까요.
"당연히 알죠. 어릴 때 사회시간에 배웠는데. 석기시대… 얘기하시는 거잖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재치만 인정하기로 했다.)
-2번. 탤런트 출신 박상아가 검찰에 불려간 이유는?
"그 사람이 탤런트 출신이라고요? (박상아의 대표작을 말해주자) 전혀 모르겠는데요. 제가 1992년생이라."
-3번. '직렬5기통 춤'이란?
"모르겠어요. (크레용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 크레용팝은 알죠. 그 분들이 추는 그 춤을 그렇게 부른다는 거죠? 저는 펌프춤이라고 부를 줄 알았는데. 으아 어쩌지. 요새 네이버를 멀리 했더니 구세대가 되어가고 있어…." (손흥민은 충격을 받은 듯 혼잣말을 잠시 중얼거렸다.)
-다시 인터뷰로 돌아갈게요. 요즘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아버지(손웅정 춘천FC 감독)와 힘겨루기 하면 이길 수 있을까요?
"냉정하게 말해서 아빠 몸이 더 좋아요. 특히 복근이 되게 좋잖아요. 운동장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한 분이라 앞으로도 못 이길 것 같은데요. 제가 이길 수 있는 종목이라면 달리기 밖에 없을 거예요. 팔씨름같은 건 자신 없어요."
-현재 근력을 수치로 표현한다면?
"턱걸이는 13개 정도 할 수 있어요. 윗몸일으키기는 이 악물고 하면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벤치프레스는 90㎏짜리 바벨에 도전해 본 적이 있는데, 간신히 들락 말락 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동안 대표팀에서 김신욱(울산)과 붙어 다니더니, 요즘엔 윤일록(서울)과 다니네요. 원래 어렸을 때도 두 명씩 붙어다니는 편이었어요?
"어휴, 아뇨. 누굴 왕따로 만드시는 거에요. 둘 다 이유가 있어요. 일록이는 청소년 대표 때부터 워낙 '베프(베스트 프렌드)'예요. 그러니까 자연스레 같이 다니는 거죠. 신욱이 형같은 경우에는 대표팀에서 훈련할 때마다 'B팀(비주전팀)의 아픔'을 공유한 사이라서요. 그 아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저희끼리 서로의 처지에 대해 매일 이야기하곤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신욱이 형이 이번엔 없어서 아쉬워요. 겨울에 시간이 맞으면 같이 재밌게 놀아야죠."
-그럼 김신욱과 윤일록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예요?
"와, 진짜 어렵다. 아예 아슬란(함부르크 시절 단짝)까지 껴서 물어보시죠. 하하. 일단 일록이를 구할 거에요. 신욱이 형은 키가 크니까 2m보다 얕은 물에는 안 빠질 것 같아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도전 중인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가가와 신지(일본)를 꼭 이기고 싶다고 말한 적 있죠.
"꼭 이겨야죠. 가가와가 도르트문트에 있을 때도 정말 이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맨유는 도르트문트보다 좋은 선수가 많은 팀이니 더더욱 꺾고 싶어요. 한때는 맨유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소속팀에서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요."
-한조에 편성된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와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 역시 만만찮은 팀이에요. '죽음의 조'라는 평도 있어요.
"저희도 만만하진 않은데요 뭐.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예요. 조별 예선 정도는 통과하는 것이 챔피언스리그 1차 목표에요."
-분데스리가 우승과 득점왕 중 어느 쪽이 더 간절한가요?
"우승을 한 번 해 보고 싶어요. 전 트로피를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지금 속한 레버쿠젠에서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손흥민은 일간스포츠가 지난 3월에 선정한 '파주 패션왕'이었다. 당시 그는 파주 NFC(국가대표팀훈련센터)에 입소할 때 구찌 가죽재킷과 루이비통 가방으로 치장하고 나타났다. 그는 럭셔리브랜드 제품을 걸쳤지만, 브랜드 로고가 도드라지지 않은 세련된 제품을 선택했다.
손흥민은 "원래 옷을 살 때는 어느 브랜드인지 알아보기 힘든 옷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게 더 예쁘잖아요. 좋은 브랜드라고 큰 로고를 박고 다니며 비싸다는 걸 자랑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는 "운동선수도 멋을 낼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밝혔다. "딱히 추구하는 스타일은 없지만 '스타일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어요. '스타일 멘토'는 이모예요. 이모가 옷가게를 하시거든요. 패션지에서 좋은 스타일을 찾으면 핸드폰으로 찍은 뒤 저에게 보내주기도 하세요. 아직 공부하는 중이죠."
명품 패션에 숨은 키워드는 '효도'다. 손흥민은 "사실 구찌 매장에 제 옷을 사러 간 건 아니고요, 엄마 가방을 사러 갔던 거예요. 독일에 오가느라 고생하시는 엄마께 종종 옷과 가방을 사드리거든요. 그러다 제 것도 하나 산 거죠. 근데 자주는 못 사겠어요. 너무 비싸요. 맛 들이면 허리 꺾이겠어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