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기성용이 지난 7일 일간스포츠 창간 45 주년을 기념하는 동반 인터뷰를 했다. 손흥민(왼쪽)과 기성용이 함께 축구공을 들고 허리에 손을 얹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기자
"(박)지성이 형이 빠진 자리를 이제 (손)흥민이가 이어가야죠." (기성용)
"그렇게 거친 프리미어리그에서 (기)성용이 (거구의 선수들을)갖다 부숴버리는 모습 보면 제가 뿌듯해요." (손흥민)
미드필더 기성용(25·스완지시티)과 공격수 손흥민(22·레버쿠젠)은 명실공히 한국축구의 '투 톱'이다. 기성용은 스완지시티의 '싸움닭'이다. '기택배'라 불릴 정도로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에 거친 몸싸움과 저돌적인 태클을 장착했다. 손흥민은 가장 센세이셔널하다. 그가 독일에서 전해오는 시원한 득점포에 축구 팬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손흥민은 25일(한국시간) 아우크스부르크와 5라운드 홈경기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5호골. 일간스포츠는 9월 A매치 소집기간에 두 선수를 함께 만났다. 유럽에서 살아남은 비결과 그 이면에 숨겨진 어려움을 비롯해 서로에 대한 덕담, 가슴 아픈 지난 6월의 브라질월드컵 뒷이야기까지. 대화는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인터뷰는 지난 5일(베네수엘라 3-1 승)과 8일(우루과이 0-1 패) 평가전 사이였던 7일 대표팀 숙소인 고양 엠블호텔에서 진행했다.
- 요즘 유럽에서 가장 돋보인다. 서로 활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기 : 직접 유럽에서 뛰면 밖에서 볼 때와 다른 어려움이 많아요. 낯선 환경, 외국인 사이에서의 압박감이나 보이지 않은 차별을 이겨내고 흥민이가 어린 나이에 잘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죠. 흥민이는 대표팀에서도 한 단계 더 높은 선수가 됐어요. 지성이 형이 빠진 자리를 흥민이가 이어가야죠.
손 :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것은 사실이죠. 유럽에서 뛰는 형들 다 겪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차별을 받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는데 형들이 잘 하는 모습을 보면 동기부여가 됩니다. 영국 축구는 피지컬이 대단한데 성용이 형이 그냥 갖다 부숴버리고 하는 모습 보면 제가 뿌듯해요."
- 두 선수 모두 경기 후 늘 평점이 매겨지는 인생을 사는데.
기 : 경기력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죠. 잘했는데 평가가 박하게 나올 때도 있고 반대도 있고. 못 한 날에는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나죠. 잘 한 날도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야한다는 마음에 스트레스 받고. 그렇게 살다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가요.
손 : 독일은 자국선수에게 더 관대한 경향도 있어요. 전 공격수라 골을 넣으면 잘한 날, 못 넣으면 못한 날이죠. 외부 평가에 에너지를 뺏길 필요는 없다고 봐요. 성용이 형 말처럼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 베네수엘라전은 브라질월드컵과 달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손 : 밖에서 보실 때는 다르게 느낄 수 있겠지만 선수들은 운동장 안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요. 결과가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기 :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안 하는 선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면 어떤 것이라도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죠. 이번에는 팬들이 결과적으로 실망했던 부분도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새로 선임(지난 5일 공식발표)됐다. 외국인 감독을 맞이하는 느낌은.
기 : 선수들이 다시 한 번 각자 새로운 마음으로 같은 라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감독님께 배울 점이 많을 것 같고요.
손 : 새로운 환경,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지도자시니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일단 독일 분이니 의사소통하는데는 제가 가장 유리하지 않나요.(웃음) 빨리 오셔서 발을 맞춰보고 싶어요. 기대가 됩니다.
- 기성용은 2007년 대표팀에 뽑혔다. 대표팀에 오면 예전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기 :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하고 주눅들고 선배들 눈치도 봤는데 이제는 제 밑으로 후배도 있어요. 물론 선배들도 아직 계시지만. 항상 똑같은 것은 대표팀 오면 기분이 좋다는 거에요. 선수들과 호흡 맞추고 한국말로 이야기 하면서 공차는 것도 좋죠.
- 손흥민은 2011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손 : 전 아직도 막내에요.(웃음) 성용이 형이 말한 것처럼 한국에 와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내년 1월이면 아시안컵이 열리는데 제가 국가대표 처음 뽑힌 게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이었잖아요. 정말 시간이 빠르네요. 그 사이에 저도 한국축구도 많이 변했죠. 대표팀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이 꿈이에요. 태극마크는 지금도 영광이지만 그 영광을 더 누리고 싶어요.
- 손흥민은 등번호가 9번인데.
손 : 사실 저 9번 별로 안 좋아해요.(울상) 월드컵 때 9번을 달았고 계속 이어 받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번호는?) 많은데…. 7번? 10번? 다 좋아요.
- 기성용은 독특하게도 16번이다.
기 : 처음 대표팀에 왔을 때 남은 번호를 받은 건데요.(웃음) 지금은 애착이 생겼어요. 홍명보 감독님이 선수시절 20번을 최고의 번호로 만든 것처럼 해보고 싶어요.
- 브라질월드컵 2차전 알제리전 초반 3실점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 때 상황은.
손 : 첫 번째, 두 번째 실점은 빨리 만회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죠. 세 번째 골을 먹었을 때는 '이건 꿈이어야 해'라고….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건 경기장에 있는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우리 선수 모두의 잘못이죠.
기 : 축구하면서 전반에 3골을 먹은 적이 거의 없어요.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에요. 1~2명이 흔들리면 나머지가 커버를 해줄 수 있지만 11명이 다 흔들렸던 겁니다.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서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어요.
-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이 열린다. 한국은 우승한지 무려 54년이 됐다.
기 : 쉽지 않을 거에요. 한국이 아시아 최강이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넘버 원은 아닙니다. 월드컵 때 부족했던 부분을 아시안컵 우승으로 채운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것 같아요.
손 : 아시안컵 전에 새 감독님과 4경기(10월, 11월 A매치)를 할 수 있잖아요. 착실하게 준비해야죠. 우리가 아시아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아시아의 톱에 오른 다음에 다시 그 말을 들을 수 있게 해야죠.
- 올 시즌 목표는.
기 : 리그에서 10위권 안에 들어갔으면 해요. 팀도 저도 한 단계 성장하는 시즌이 됐으면 합니다. (목표가 너무 소박한 것 아닌가? 챔피언스리그 한 번 뛰어봐야 하는 것 아닌지) 하하. 그런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것은 영광이지만 꿈만 꾼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은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죠.
손 : 저희 팀도 우승은 힘들 것 같고요. 바이에른 뮌헨이 있어서.(웃음) 안 다치고 한 시즌 보내는 거에요. 팀을 생각하면 내년에는 플레이오프 말고 직접 챔피언스리그 티켓 딸 수 있는 순위 안에 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