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의 런던 정착기
토트넘은 새 도전의 장…아직은 정착단계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팀 우승 위해 최선
한식 한상 차리고 노래까지…신고식도 했죠
꼭 뛰고 싶은 리우올림픽, 기대하고 있어요
2011년 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2000년대 한국축구의 영웅들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박지성(35)과 이영표(39)였다. 그러나 또 다른 미래의 영웅이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흥민(24). 19세 나이에 아시안컵을 경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그는 향후 10년을 책임질 스타로 도약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에서 성장해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뛰었고, 지난해 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전통의 명문 토트넘으로 떠나 제2의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신태용(46) 감독이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와일드카드(24세 이상)로 일찌감치 낙점했다는 소식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스포츠동아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손흥민을 만나 ▲토트넘을 선택한 배경 ▲영국 생활기 ▲리우올림픽을 향한 열망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었다.
● 토트넘&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첫 시즌. 손흥민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전반기에 비해 다소 주춤한 모양새다. 완벽히 정착한 것도, 전열에서 이탈한 상태도 아니다. 축구를 사랑하고, 아주 큰 열정으로 그라운드를 누비지만 아직까지는 정착 단계다. 그래서일까.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의 차이를 꼽아달라는 첫 물음에 손흥민은 겸손한 답변부터 했다.
“90분 내내 다이내믹한 축구? 흥미진진한 장면이 계속된다. 차이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한 시즌도 마치지 않았다. 뛴 경기도 많지 않다. 좀더 노력하고 더 많이 경험한 뒤 제대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함부르크∼레버쿠젠을 거치며 아시아 최고의 축구 아이콘으로 부상한 터. 토트넘은 클럽 역사상 3번째로 높은 이적료(3000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403억원)를 지불하고 손흥민을 데려왔다. 이에 앞서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이상 독일), 리버풀(잉글랜드) 등이 러브콜을 보냈다는 루머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대개 독일과 영국 매체들이 소문의 진원지였다.
“그 때는 나조차 몰랐던 소식이 많았다. 그래도 관심을 보여준 점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토트넘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고, 팀 전체의 성장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보인 관심이 (여러 제안들 가운데) 가장 진지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레버쿠젠을 떠났을까. 많은 축구인들은 손흥민이 과거 한국선수(이영표)가 뛰었던 토트넘이 아닌, 아직 개척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팀에서 뛰어주길 바라기도 했다. 또 일부는 계속 레버쿠젠에서 차범근 전 수원삼성 감독의 기록을 깨주길 희망했다.
“당장의 기록과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축구 그 자체를 봤다. 지금 돌이켜봐도 분데스리가는 잊지 못할 사랑스러운 무대다. 그런데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스스로 도전의 기회를 찾아가는 게 옳다고 봤다. 내 자신이 행복해야 더욱 좋은 축구로 팬들에게도 행복감을 주지 않겠나?”
이적 직후 손흥민은 뉴 페이스라면 모두가 거쳐야 할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동료들에게 김밥과 잡채, 닭 강정, 불고기, 갈비 등 한식으로 푸짐한 한 상을 차려낸 것도 부족해 걸쭉하게 한 곡 뽑아야 했다. 노래 제목은 물론 비밀. 그렇게 토트넘의 일원이 된 그에게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컬러를 가리게 됐다. 오랜 앙숙인 아스널의 붉은색, 같은 런던 연고의 라이벌 첼시의 파란색을 싫어하게 됐다나? 단, 대표팀 유니폼은 예외다.
● EPL&런던
누구보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굉장히 크지만 손흥민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했다. (어느 정도 완성된) 현 시점에선 없는 능력을 더 갖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워진 잔을 채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행동도 피하고 있다. 지금은 이미 가진 능력을 크게 확대하고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치열한 우승경쟁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레스터시티와 토트넘의 급부상으로 아스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리버풀, 맨체스터시티 등이 주도하던 상위권 구도가 완전히 뒤집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버쿠젠 시절, 항상 꿈만 꾸던 우승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동료들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모두가 우승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훈련장에서의 강렬한 모습이 경기장에서 퍼포먼스로 나타난다. 나 역시 많이 노력한다. 공격수로서 득점하기 위해, 또 그로 인해 우승에 힘을 보태려 한다. 팀 구성원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한다.”
물론 체력관리도 필수. 프리미어리그는 혹독한 스케줄로 정평이 났다. A매치 기간을 제외하면 휴식기도 없다. 크리스마스 무렵, 분데스리가는 겨울 휴식기를 부여하고 심지어 기후 좋은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도 하는데 프리미어리그에선 그럴 수 없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다. 이를 고려해 클럽도 체계적인 체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의 부친 손웅정(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 씨 역시 철저한 관리 프로그램으로 아들이 긴 마라톤을 소화하는 데 지장 없도록 힘을 쏟는다. 더불어 잉글랜드 무대를 누볐거나 누비는 태극전사 선배들과 함께 하는 시간 또한 굉장한 도움이다. 박지성,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 윤석영(찰턴 애슬레틱) 등 영국에 터를 잡은 형님들과 식사를 하고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은 아주 뜻 깊은 ‘힐링 캠프’다.
● 태극마크&올림픽
대표팀에서 손흥민이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슈틸리케 감독도 각별한 애정을 보낸다. 대표팀 훈련 캠프에서 스승과 독일어로 농담을 하고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제자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간 거친 (대표팀) 감독님들마다 조금씩 다른데, 모두가 많이 배려해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슈틸리케 감독님도 리그를 옮기고 첫 해를 보내는 내가 무난히 잘 정착하도록 소집일정 등 여러 가지로 많이 챙겨주신다.”
사실 손흥민은 극히 드문 케이스다. 각 연령별 대표팀을 차근차근 밟지 않고 곧바로 성인 레벨로 뛰어들었다. 오래 전 17세 이하(U-17) 대표팀에 뽑힌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 당시만 해도 그는 U-17 대표팀과 U-20 대표팀, 그리고 U-23 대표팀 등을 차례로 거치고 싶었다. 물론 아쉬워할 틈은 없었다. 팀에 적응하고 정착하고 좋은 활약을 하기까지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올림픽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병역면제 혜택이란 현실적인 부분도 전혀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남성이라면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운동선수들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인터뷰 시기와 살짝 엇갈렸지만, 일단 손흥민의 리우올림픽 출전은 꽤나 무르익었다. 대한축구협회와 토트넘은 3월 A매치 2연전에 손흥민을 차출하지 않는 대신, 올림픽 와일드카드 선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올림픽은) 누구나 뛰고 싶은 무대다. 그저 바란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조심스레 기대를 걸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게 기회가 주어지고, 도움이 된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2018러시아월드컵도 그렇다. 2014년 브라질에 이은 생애 2번째 여정을 보내고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해야겠지만 정말 잘하고 싶다. 4년 전보다 성장했고, 더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할 의미 있는 월드컵이 될 것 같다.”
런던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출처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460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