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선수가 춘천 강원대학 인근 식당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있다.사진ㅣ권호욱 기자
ㆍ지나가던 대학생들 ‘뜨는 스타’ 보고 플레시 세례
ㆍ“우리딸과 뽀뽀하고 책임져!” 학부모 말에 폭소탄
ㆍ모처럼 한국말 수다에 음식···시종 즐거운 표정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밤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교 후문 골목에 위치한 치킨가게. 10여명의 청소년과 학모형, 가족 등 20여명이 떠들썩하게 가게를 가득 메웠다.
청소년들이 앉은 테이블 한쪽 끝에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첫 태극마크를 단 손흥민(18·함부르크)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날 자리는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운영하는 축구교실 춘천FC 선수들과 학모형들이 손흥민의 대표팀 발탁과 모처럼의 고향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마련한 축하행사였다. 장소도 회원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다.
차려진 음식은 후라이드와 양념치킨, 그리고 과일 뿐인 조촐한 파티였지만 분위기는 성대한 잔치 부럽지 않았다.
이날 오전 조광래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부름받은 ‘주인공’ 손흥민의 인삿말로 행사는 시작됐다. 독일에 가기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수년간 함께 지냈던 손흥민은 쑥쓰러운 듯 “부담스럽고 부끄럽게 왜들 이러세요”라며 슬며시 웃어 넘겼다.
손흥민에게는 1년 여만에 맛보는 한국산 치킨. 모처럼 포식을 즐기려는 식욕도 잠시, 언제 다시 손흥민과 이런 기회를 가질세라, 사인과 기념촬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춘천FC 회원의 여동생이 사진촬영을 요청했을 때는 가게가 떠날갈 듯 일제히 폭소탄이 터졌다.
여자 초등생의 어머니는 “볼에 뽀뽀하는 사진을 찍어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고는 “너는 아직 어리니깐 괜찮다”며 직접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줍움 많은 초등생 딸이 머뭇거리자 어머니의 재치있는 멘트가 압권이었다. “빨리 뽀뽀해, 그러고 책임지라 하면 되잖아.”
회원들의 일가 친척까지 연줄을 동원해 사인을 받아갔다.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던 대학생들도 술 한잔 마시기 위해 가게로 들어섰다가 얼떨결에 ‘뜨는 스타’ 손흥민을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잠시도 쉴틈없이 사인 공세에 시달리던 손흥민은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1년여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잠시 뒤 중국음식점 배달원이 도착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배달원은 어리둥절해 했고, ‘한국축구의 샛별’ 손흥민 앞에 자장면을 놓아주고도 그냥 지나쳤다. 어수선한 상황 탓에 손흥민을 알아보지 못한 그는 ‘본연의 임무’만 마친 채 문을 나섰다. 굴러들어온 행운을 놓친 셈이 됐다.
모처럼 먹어보는 자장면도 입맛만 다시다 말았다. 여기저기에서 걸려온 축하전화와 쉴새없는 사인과 사진 촬영으로 면이 금새 불어 터졌기 때문이다.
아버지 손웅정씨는 아들이 걱정되면서도 흐뭇해했고, 다른 학부형들은 부러운 시선을 멈추지 못했다.
모처럼 동생들과 맘 놓고 한국말을 주고받는 것이 편했던 지, 청소년들 사이에서 쓰는 은어와 농담이 쏟아져 나왔다.
한솥밥을 먹은 ‘축구 패밀리’와 오랫만에 시간을 갖게 된 손흥민은 피곤한 몸이지만 전혀 싫은 기색없이 시종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밤 10시를 훌쩍 넘은 시간. 손흥민은 일가 친척이 모여 기다리는 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출처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44&aid=0000134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