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에서 가장 용감한 캐릭터는 송태섭이다.
그는 단 한 번도 무리를 지어다닌 적이 없다.
https://img.theqoo.net/bwtHD
송태섭과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이 (한나를 제외하고) 어린 시절에 마주친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다시 연결됐던 정대만이라면 송태섭과 가장 유사성이 많은 캐릭터는 강백호다.
강백호가 아버지를 잃었던 것처럼 송태섭 역시 아버지와 형을 연달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자리, 그 공허한 외로움을 핸들링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지만.
강백호가 외로움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연결되는 방식으로(쌈박질) 해소해 왔던 반면에 송태섭은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소속된 적이 없다. 몰려다니면서 사고를 치던 강백호와는 달리 그는 항상 혼자 다닌다. 농구부에 가입한 이후에도 필요한 연습은 충실히 임하지만 방과 후에 몰려다니거나 다른 시간을 같이 보내는 모습이 거의 나온 적이 없다. 사실 저 나이대의 남자아이가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는 송태섭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그는 상처를 타인을 통해 회복하는 타입이 아니다.
가장 감성적으로 유약할 나이. 연달은 비극으로 폐허가 된 집을 정리하며 송태섭의 어머니는 그들과 관련된 것들을 잠시 지우려 한다. 어떤 상실은 흔적만으로도 고통이 되기 마련이다. 함께했던 기억이 담긴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태섭.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엄마와는 달리 그의 빈자리는 고통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고 일부러 남겨두는 여백과도 같다.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느니 그대로 두겠다.
이 공간이야말로 태섭의 건방진 소위 '애티튜드'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전학 간 첫날 무리 짓는 아이들은 그 공간의 힘을 귀신같이 눈치챈다.
"저 녀석 건방져."
꽤 자주 궁금해진다. 정대만이 유독 송태섭에게 발작버튼이 눌리던 이유가 뭘까? 채치수의 어깨에 얹어진 채 서서히 몰락해 가던 농구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들이던 서태웅이나 강백호가 아니라. 왜 송태섭인가?
두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들어다 볼수록 절묘하다는 생각을 한다. 슬램덩크에서 뜨거움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정대만이라면 쿨함을 담당하는 캐릭터는 송태섭이다. 줄곧 재능을 인정받아온 중학교 리그 MVP 정대만. 반면 줄곧 정대만처럼 유망주였던 형의 뒤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고 농구를 계속해온 송태섭. 어린 시절 연습코트에서 마주한 이후로 전혀 다른 성향에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겪은 두 사람은 다시 최악의 인연으로 재회한다.
"너의 짝짝 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 정대만은 싸움으로는 북산의 최약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싸움을 건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예전 기량이 나오지 않자 농구를 포기한 정대만은 예전의 강백호처럼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며 낭비한다. 그런 그의 눈에 채치수가 간신히 유지하던 북산 농구부에 가입한 송태섭은 그야말로 거슬리는 존재다. 그리고 송태섭에게는 유난히 정대만을 자극하는, 강백호나 서태웅에게는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가벼워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송태섭에게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중심이 있다. 그것은 내면의 외로움을 사람이나 농구로 대체하려 했던 강백호나 농구 자체가 좋아서 미쳐있는 서태웅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해석처럼 송태섭에게 농구가 고통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형이 좋아했던 농구를 자신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 그때 죽은 게 형이 아니었다면 더 나았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의로 농구를 그만둬 본 적이 없다. 형의 죽음 이후로 잠시, 정대만 패거리와의 난투 이후 부상으로 잠시. 그 이외에 시간들을 그는 어디에 썼을까?
바다가 보이는 코트가 근사한 오키나와와는 달리 인심도 야박한 도시에서도 그는 공을 들고 연습코트를 찾아 나선다. 예전처럼 100% 즐길 순 없어도 그는 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얻어터지고 가정에서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는 드리블을 하고 상대의 수비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지막 형과의 1on1에서 겨우 찾아낸 단서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의 연습은 매번 형과의 마지막 연습으로 돌아가 정확히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매 위기의 순간마다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해 내면서. 어머니가 농구를 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형을 기억해 내고 또다시 상처받는다 해도 그는 농구를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단지 형 때문일까? 형과의 기억 때문에?
(후략)
전문은 출처 : https://brunch.co.kr/@soulandu/53
그는 단 한 번도 무리를 지어다닌 적이 없다.
https://img.theqoo.net/bwtHD
송태섭과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이 (한나를 제외하고) 어린 시절에 마주친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다시 연결됐던 정대만이라면 송태섭과 가장 유사성이 많은 캐릭터는 강백호다.
강백호가 아버지를 잃었던 것처럼 송태섭 역시 아버지와 형을 연달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자리, 그 공허한 외로움을 핸들링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지만.
강백호가 외로움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연결되는 방식으로(쌈박질) 해소해 왔던 반면에 송태섭은 단 한 번도 어딘가에 소속된 적이 없다. 몰려다니면서 사고를 치던 강백호와는 달리 그는 항상 혼자 다닌다. 농구부에 가입한 이후에도 필요한 연습은 충실히 임하지만 방과 후에 몰려다니거나 다른 시간을 같이 보내는 모습이 거의 나온 적이 없다. 사실 저 나이대의 남자아이가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는 송태섭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그는 상처를 타인을 통해 회복하는 타입이 아니다.
가장 감성적으로 유약할 나이. 연달은 비극으로 폐허가 된 집을 정리하며 송태섭의 어머니는 그들과 관련된 것들을 잠시 지우려 한다. 어떤 상실은 흔적만으로도 고통이 되기 마련이다. 함께했던 기억이 담긴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태섭.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엄마와는 달리 그의 빈자리는 고통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고 일부러 남겨두는 여백과도 같다.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느니 그대로 두겠다.
이 공간이야말로 태섭의 건방진 소위 '애티튜드'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전학 간 첫날 무리 짓는 아이들은 그 공간의 힘을 귀신같이 눈치챈다.
"저 녀석 건방져."
꽤 자주 궁금해진다. 정대만이 유독 송태섭에게 발작버튼이 눌리던 이유가 뭘까? 채치수의 어깨에 얹어진 채 서서히 몰락해 가던 농구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들이던 서태웅이나 강백호가 아니라. 왜 송태섭인가?
두 캐릭터를 들여다보면 들어다 볼수록 절묘하다는 생각을 한다. 슬램덩크에서 뜨거움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정대만이라면 쿨함을 담당하는 캐릭터는 송태섭이다. 줄곧 재능을 인정받아온 중학교 리그 MVP 정대만. 반면 줄곧 정대만처럼 유망주였던 형의 뒤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고 농구를 계속해온 송태섭. 어린 시절 연습코트에서 마주한 이후로 전혀 다른 성향에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겪은 두 사람은 다시 최악의 인연으로 재회한다.
"너의 짝짝 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 정대만은 싸움으로는 북산의 최약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싸움을 건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예전 기량이 나오지 않자 농구를 포기한 정대만은 예전의 강백호처럼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며 낭비한다. 그런 그의 눈에 채치수가 간신히 유지하던 북산 농구부에 가입한 송태섭은 그야말로 거슬리는 존재다. 그리고 송태섭에게는 유난히 정대만을 자극하는, 강백호나 서태웅에게는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가벼워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송태섭에게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중심이 있다. 그것은 내면의 외로움을 사람이나 농구로 대체하려 했던 강백호나 농구 자체가 좋아서 미쳐있는 서태웅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해석처럼 송태섭에게 농구가 고통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형이 좋아했던 농구를 자신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 그때 죽은 게 형이 아니었다면 더 나았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의로 농구를 그만둬 본 적이 없다. 형의 죽음 이후로 잠시, 정대만 패거리와의 난투 이후 부상으로 잠시. 그 이외에 시간들을 그는 어디에 썼을까?
바다가 보이는 코트가 근사한 오키나와와는 달리 인심도 야박한 도시에서도 그는 공을 들고 연습코트를 찾아 나선다. 예전처럼 100% 즐길 순 없어도 그는 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얻어터지고 가정에서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는 드리블을 하고 상대의 수비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지막 형과의 1on1에서 겨우 찾아낸 단서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의 연습은 매번 형과의 마지막 연습으로 돌아가 정확히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매 위기의 순간마다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해 내면서. 어머니가 농구를 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형을 기억해 내고 또다시 상처받는다 해도 그는 농구를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단지 형 때문일까? 형과의 기억 때문에?
(후략)
전문은 출처 : https://brunch.co.kr/@soulandu/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