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후배 민정에게.
고백하자면, 경기가 새벽이라 졸음과 싸우며 계주 경기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어. 동이 트는 아침에 눈을 떠 급히 결과를 확인했지 뭐니. 사실 나는 지금 항암 치료 중이라 체력이 바닥이란다. 치료 막바지로 건강을 찾고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돼. 경기 결과를 알고도 떨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봤어. 네덜란드 선수에게 막혀 넘어질 뻔했을 땐 마음이 철렁했고, 막판에 네가 ‘축지법’ 같은 질주로 기어코 2위 자리를 차지했을 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어. 금메달을 확정했을 땐 쇼트트랙 선배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단다.
올림픽 최다 메달, 쇼트트랙 첫 세 대회 연속 금메달.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서 올림픽을 치르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잘 알지. 나도 올림픽을 앞두고는 방송·신문 등을 일부러 보지 않으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던 기억이 나네. 내가 그 시기를 거치면서 깨달았던 건,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의미가 있다는 것, 결국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거였어. 민정이는 똑똑하니 이미 다 깨닫고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온 것 같아.
문득 너의 대표팀 초년병 시절 생각이 나네. 웃음기 하나 없이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하던 민정이. 내심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나는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 연습으로 그 격차를 메우려 하던 선수였는데, 민정이 너는 누가 봐도 천재성을 갖춘 선수였어. 그럼에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했지. 요즘 국제 무대는 내가 뛰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치열해졌지만, 10년 넘게 한결같이 세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너를 보면 참 뿌듯하고 대견하단다.
특히 올림픽은 실력만으로 되는 무대가 아니잖아. 수많은 변수와 운이 맞아야 하지. 하지만 그 운은 언제나 민정이 같이 준비된 선수에게 온다고 믿어. 아마 하늘도 이번에 너의 노력을 알아준 게 아닌가 싶어. 그동안 네가 보여준 열정은 후배들에게 늘 귀감이 될 거야.
누구는 내 기록을 민정이가 깬 게 아쉽지 않냐고 하는데, 30년 정도 지났으면 이제 깨질 만하지 않니? ^^. 뻔한 말이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고, 훌륭한 후배가 뒤를 이어줘서 정말 아쉬움 하나 없이 너무 기쁘다. 민정아, 너는 이미 한국 쇼트트랙의 큰 자부심이야. 남은 1500m도 늘 그래 왔듯 최선을 다해서 이번 올림픽의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 주길 기대해 볼게. 그간 너무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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