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내가 여주였어봐~
퇴근길에 집 앞에서 기다리는 남주랑 같이 집 들어가는데
싸우고 며칠만에 보는거라 남주랑 현관에서부터 쪽쪽댐.
별안간 저녁으로 양파채 추가해서 먹은 파닭이 생각나 파드득 남주 밀쳐냄.
콜라도 마셔서 속으로 트림 엄청 함..흑 푸..흡 냄새날까봐 숨도 참음.
아직도 삐진줄 알고 들러붙는 남주를 떼어내고 먼저 씻으라고 화장실 눈짓함.
같이 씻고 싶어하는 남주가 불만스럽게 눈을 부라리더니
한숨 한 번 쉬고 넥타이 내리며 욕실로 들어감.
그제서야 허겁지겁 부츠 벗어들고 베란다로 뛰어가
화장실 문 노려보면서 발에다 발을씻자 칙칙 뿌리고 춘궁기 기저귀 빨래하는 아낙처럼 미친듯이 발을 씻음.
하루종일 스타킹 신고 뛰어다닌 부츠엔 그랜즈레미디 파우더 좀 뿌리다가
안되겠는지 종량제 봉투 가져와서 오늘 신은 스타킹과 부츠 채로 넣고 밀봉해버림.
이건 이제 방사성 폐기물임. 영업직 관두든지 해야지 진짜.
아직 남주가 씻고 있을 화장실 문 수시로 노려보면서
현관부터 베란다까지 밟고 지나온 바닥 물티슈로 박박 닦아내고 환기시킴.
방에 들어가서 보풀 안생긴 레이스 속옷 세트로 꺼내놓고
너무 힘준 티 나지 않는, 그러나 벗기기 쉽고 보기에도 이쁜 실크 파자마도 챙긴뒤
널브러져 있는 온갖 잡동사니는 일단 안보이는 붙박이장 안에 죄다 넣고 닫음.
씽크대에서 리스테린 테라브레스 루치펠로 가그린 폭탄주 말듯이 몇번 입 헹궈내니까 그제야 씻고 나온 남주.
남주가 앵기기 전에 화장실로 쏙 들어가 문도 잠금.
이 집은 젓가락으로 밖에서 방문을 열 수 있으나, 그럴 줄 알고 집에 두꺼운 나무젓가락만 두었지.
남주가 들어오지 못하는게 확실하자 물을 틀어놓고
선반 깊숙한 곳에 숨겨둔 질레트 5중날 면도기를 꺼내 다리부터 세심하게 제모 시작함.
이거 꺼내두면 남주가 지껀줄 알고 아침마다 수염 깎고 나간단 말임.
며칠째 남주 안만나서 고새 샤프심처럼 자라난 겨드랑이도 꼼꼼하게 제모해주고
양치도 네번하느라 혀에서 피 남.
준비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와보니 남주놈이 내 방 구경한답시고 붙박이장 열어봤는지
붙박이장이 온갖 잡동사니를 게워내고 있네.
나 여기까지 상상하다 못해먹겠다 하고 때려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