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만개한 계절이 지나기 전에 꼭 써보고 싶던 울빌 글
마티가 사랑한 레일라는 더 차고 넘치겠지만 내 안의 레일라 이미지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싶어서 짤털함
마티어스가 언제나 갈망했던 건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레일라였다는 게 좋아
카나리아와 레일라가 같지만 전혀 다른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 이유였고, '아르비스 숲의 새'로 표명되는 레일라의 정체성은 절대적인 생동감으로써 애완용 새처럼 길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 ᵒ ૩ᵕ )৴♡*৹
(브금 버프 받아야 됨 꼭 틀어주삼 ㅇㅅㅇㅋㅋ
포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부지런히 마당을 쏘다니는 레일라가 보이지 않는 집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영지의 정원과 숲,
강가와 들판에서 뛰어놀며 자라난 아이.
이따금 꽃이 핀 정원이나 숲속 오솔길을 총총히 달려가던 그 애와 마주칠 때면 요정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너 걔구나. 숲에 사는 그 애.”
마티어스의 뒤편에 있던 사촌 리에트가 키득거리며 말을 건넸다.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정원사의 등 뒤로 다시 숨었다.
사냥터에서도 아이는 그랬다.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다가도 얼른 나무 뒤로 숨어들었다. 그러다 사냥이 끝나면 엉엉 울며 죽은 새를 묻어 주러 돌아다니곤 했다.
마티어스는 고개를 들어 아름드리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빤히 그를 쳐다보던 작은 얼굴이 떠오르자 또다시 실소가 흘러나왔다.
설마, 여태 나무를 타고 놀 줄이야.
“아저씨! 오늘은 일찍 돌아오셨네요.”
레일라는 춤을 추듯 가볍게 달려왔다.
하나로 땋아 내린 탐스러운 금발이 밀짚모자의 너른 챙 아래에서 흔들렸다.
상기된 두 뺨은 그가 가꾸는 품종 좋은 장미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어떻게…… 이런 짓을, 대체…….”
곧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면서도 레일라는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내뱉었다. 그를 노려보는 눈빛이 형형했다. 눈물이 가득 담겨 있어 더욱 요란하게 반짝이는 듯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에트먼 부인.”
돈이 든 주머니를 내려다보던 레일라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한 가지 말씀에 대해서는 사과해 주세요.”
“……뭐? 사과?”
“네. 제게 하신 말씀은, 그게 진실이 아니라 해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지만 빌 아저씨께 하신 말씀은 꼭 사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애에게서는 장미향과 같은 몸 냄새가 났다.
장미를 키우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정원사가,
가장 공들여 피워 낸 장미처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랬다. 그런데 빌 아저씨만 나한테 괜찮은 어른이 될 거라고 했다.
이상하기는 한데 그게 아니라고 하긴 싫었다. 빌 아저씨는 뭐든 다 아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나는 정말 괜찮은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잠이 잘 안 온다.
내가 멋진 어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막 별처럼 반짝거리는 것 같다.]
빨랫줄에 널려 있는 하얀 시트가 나부꼈다. 창문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열린 문 너머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레일라가 총총 달려 나왔다. 급하게 빨래를 걷는 그 작은 등 뒤에서 땋아 내린 머리채가 흔들렸다.
마티어스는 몸을 일으켜 레일라 앞에 섰다.
그의 긴 그림자 아래에서 레일라는 허둥지둥 쏟아진 물건을 챙겼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멩이와 낙엽까지 주워 담는 걸 보니 아주 넋이 나간 모양인데, 그 모습이 마티어스의 불쾌감을 깨끗이 지워 주었다.
아이는 자신이 쓰고 있던 화관을 벗어 레일라의 머리 위에 살며시 올려놔 주었다. 대사의 흐름을 따라잡는 데만 집중해 있는 레일라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말.멋.진.파.티.야. 하—하—하. 신.난.다.”
요정들의 파티에 초대받은 꽃의 요정이 웃는 장면에서는 결국 마티어스도 웃음을 터트렸다. 레일라의 뺨은 이제 아이가 씌워 준 장미 화관의 꽃송이만큼이나 붉어져 있었다.
마티어스는 고개를 슬쩍 기울여 레일라를 내려다보았다.
물기가 어린 두 눈은 겁에 질렸는데 일그러뜨린 입술에는 이 상황에 대한 불만과 반항심이 가득했다.
아무튼, 성미하고는.
“내가 울면 당신은 즐겁잖아.”
“응.”
“…….”
“그래도 울지 마.”
“…….”
“웃어, 레일라.”
“이제는 내가 웃어야 당신이 즐거운가요?”
“아마도.”
“그러면 난 절대 웃지 않을 거야.”
마티어스는 정체된 도로의 끝을 살피던 눈을 돌려 생긋이 웃는 레일라를 바라 보았다.
눈이 마주쳐도 레일라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수줍은 듯 살며시 시선을 피했다가도 이내 다시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마티어스의 목울대가 느리게 꿈틀거렸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 서 있는듯 목이 탔다.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기억은 흐릿했다.
그냥, 그래 보고 싶었다. 하도 작고 말라 볼품없는데, 그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만 유난스럽게 반짝거리는 아이가 재미있었던 것도 같다.
마티어스는 레일라가 가만히 생각을 긷는 그 시간이 좋았다. 마음을 가득 채운 생각들이 말이 되어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순간은 더욱 좋았다.
좋았다.
레일라가 생각하고 말을 하는 방식.
긴 속눈썹이 드리운 아름다운 그림자.
싱그러운 두 뺨과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좋았다.
이따금 그의 신경을 긁어 대는 맹랑한 태도나 눈치를 살피면서도 또박또박 제 할 말을 이어 갈 때의 그 반짝거리는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레일라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대신 오물오물, 야무지게 음식을 먹는 입술이 귀여워 마티어스는 꽤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작은 입으로 조금씩 베어 물고 꼭꼭 씹는 모습이 지극히 레일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비스의 숲과 강 곳곳의 새 둥지를 찾아다니며 색실을 묶던 레일라가 떠오르자 픽 웃음이 났다.
새가 돌아와 주기를 바라던,
돌아와 주면 그저 그 사실이 기뻐 가슴 벅차 하던,
그러니까 그처럼…… 외로웠던 아이.
‘평생 그늘에 가려진 여자가 되기 전에,
한 번은 그래 보고 싶어요.’
그늘.
그보다 더 그 여자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햇빛을 모아 빚어 놓은 듯한 여자였다. 마티어스는 그 빛에 사로잡혔다. 눈이 멀었다. 그 빛 속에 살고 싶어 움켜쥐었다.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갈망이 결국 너를 그늘 속에 살게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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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그늘 속에서도 너는 지금처럼 반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