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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학벌에 대한 미련을 끝내려는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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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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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5년간의 푸념과 23년간의 삶이야기야.
그래서 꽤 길고 지루할거야.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싶었어.



초등학생때의 ㅇ는 문제를 틀려본 적이 거의 없었고, 도에서 15명 뽑는 특정 과목의 영재활동도 했어.
전교부회장, 회장출신이었고.

중학생때는 전교 10위 밖으로 잘 안나갔었고
중학교 3학년때는 좀 떨어졌었지만.
과고 준비하려다가 그냥 내신 생각해서 일반고로 갔는데 사실 막상 준비하면 떨어졌을 성적.

ㅇ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컸을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해.


ㅇ는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예체능도 곧잘해서 이쪽으로 진로를 결정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많이 들었고 관련 상도 많이 탔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화가가 되고싶다던 4~8살때 ㅇ의 말을 달가워하지 않았었어.
그리고 가수가 되고싶다던 8살~13살때 ㅇ의 말은 웃으며 넘기거나 못들은 척을 하곤 했어.

티비에 가수가 나오면 과거의 기생을 빗대어 가수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천함을 논하곤 했고, 과거의 대학가요제 얘기를 하며 '의대생인데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하는 사람'의 얘기나 '노래는 취미로 하는 게 더 멋있다'는 얘기를 곧잘하곤 했지.
그리고 김태희를 얘기하며 연기력보다는 학벌이 성공에 더 큰 요소임을 말하곤 했어.


만화가가 재밌을것같단 말은 해보지도 못했지. 먼저 눈치채신 부모님이 그런건 대학가고 나서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으니까.


은연중에 ㅇ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나중에 부업이나 취미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모든 일에는 학벌 효과과 굉장히 크고, 그것은 굉장히 큰 힘이라고.


그런 ㅇ의 중학생때 최대 고민은 꿈이 없는거였어.
정말 이상하지?
애초에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디자인, 노래는 모두 자신의 꿈에서 배제를 시켜버렸던거야.

넘쳐나는 공개오디션. 내가 잡지 못하는 기회. 저 자리가 내 자리였을 수도 있을텐데라는 아쉬움.

디자이너는 별로인 직업이니까. 에디터가 낫겠다. 김태희가 나왔다는 서울대 의류학과는 예체능이 아니라 자연계열이구나. 여기 괜찮다.

ㅇ도 모르는 사이 ㅇ는 부모님과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진짜 비극은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돼.
공부를 잘하던 ㅇ의 성적이 엉망이 되고서부터야.

1학년때까지는 그럭저럭 보통이었지만, 2학년때부터 성적은 바닥을 쳤어. 3학년때는 복구불가였지.

수시원서에는 지방의 보통이하 대학교 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성적이 됐어. 사실 공부에 큰 취미가 없던 ㅇ는 별 생각없이 엄마께 원서에 쓸 대학을 말했지. 이정도면 괜찮지 뭐. 하면서.


엄마는 ㅇ를 한심하게 쳐다봤고, 화냈던 것 같아. 기억이 잘 안나.

넌 이정도 대학으로 만족이 되냐고 했었던가.
이런델 왜 넣냐고 했었던가. 아무튼 자존심 상하는 말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꽤 많이 얘기했어. 왜 이렇게 됐어. 어디서부터 잘못됐니.

그 때 울면서 말했지. 내가 하고싶은 건 디자인과 노래라고. 근데 이제 엄마아빠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도 좋아하지 않게 돼버렸다고. 엄마가 하던 것처럼 천시하게 됐다고. 꽤 속이 시원했다.

6학년이 마무리 되어갈 때 쯤 발표했던 '나의 꿈 발표하기'.
그 발표를 아직도 기억해. 가수가 되고싶다고 말한 것.
생각해보면 그 때 말고는 사람들 앞에서 가수가 되고싶다고 얘기한 적 없었거든. 말하는 그 순간도 무언가 죄짓는 기분인 것 같았지만 말하고나니 홀가분했어.
그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 그렇게 하고싶으면 해봐라 '디자인'.
했던게 고3 8월 말이었나 9월 초였나.
ㅇ는 2주동안 입시학원에서 실기 준비를 하고, 아이디어 위주로 평가한다고들 믿는 서울대 디자인 실기를 쳤어.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근처 잡대는 가기 싫어. 학벌 못 잃어 서울대 못 잃어, 재수한다.
재수도 탈락.

한 번만 더 하자. 삼수, 서울대 1차 합격, 최저 못 맞춰서 탈락.

지거국에서 1학기 보내고 반수, 탈락.


그냥 휴학해서 빈둥빈둥 있던게 올해 8월까지였어.

게임만 주구장창 하고, 커뮤니티만 주구장창하고. 이미 내가 10대이던 때에 가수가 되었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나를 미워하고 자책하고.

부모님도 그 한 부분만 빼면 정말 다 좋은 분이어서 마냥 원망도 못하겠고. 그리고 나만큼 힘들어하셨을 엄마. 엄마에게도 근 4년은 얼룩 투성이었겠지.
그리고 이제는 다 내려놓았다, 미안하다 하시지만 돌아오지 않는 내 과거. 이미 사라져버린 내 청춘.



몇 달 전 문득 내 책꽂이가 눈에 띄었어. 빼곡하게 채워진 수능교재들.
그리고 내 방을 둘러보니 전부 미련밖에 없는거야.
그 미련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가지고있는 날 보고 알았어.
나는 19살에서 변한 게 없구나.


그래서 올해를 모든 미련을 버리는 해로 정했어.
미련들에 도전해서 그 결과가 어떻든 승복하는 것.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돼서 행복해지는 것.


23살이나 됐는데, 24살 25살에마저 후회하고싶지 않아서
부모님한테 가수하고싶다고 얘기했다가 다시 집안이 뒤집어지고.
결국 허락을 맡아내어 자유롭게 노래연습하고.
수능 재수 삼수 너무 오랫동안 노래를 안해서 망가진 목소리에 좌절하고.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 꽤 괜찮아져서 얼마 전에는 아는 언니 결혼에서 축가도 불렀어.
너무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서 정말 떨렸지만 행복했어.


그리고 2주정도 전에 서울대 디자인 시험을 다시 봤고, 이건 어제 결과 나왔었는데 떨어졌더라.

미련갖지 않기가 목표였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많이 슬프더라고.
그치만 정말 놓아줄거야. 더 행복한 내가 되고싶으니까.

고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을 제외하고선 불합격밖에 못봤던게 못내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내가 더 작아지는 것 같고. 지금 이 새벽의 공기가 날 더 작게 만드는데.

그래도 난 괜찮고싶어. 괜찮을거야. 내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사실 글을 잘 써내려가던 좀전과는 달리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눈물이 계속 흘러.


10월은 연습하고 11월부터 12월까지는 오디션을 볼 예정이야.
이것마저도 불합격의 연속일까봐 무서운데, 내가 무서운건 가수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불합격의 연속속에서 내가 부서지는게 아닐까 싶어.

그리고 내년부터는 복학 준비를 할거야. 복학준비를 하지 못하게 오디션에서 합격했으면 좋겠지만 내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갔던 적이 잘 없으니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할 예정이야.


사실 모든건 내가 만든거야. 그 어떤 것도 치열하게 해본 적 없는 나니까. 모든 건 내가 자초한 일이야. 공부라도 열심히 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못했어. 몇 번의 기회나 더 썼는데도 그러지 못한거지. 그러니 결국 내 푸념은 다 합리화일거야. 그래서 난 내가 너무 미워.


근데 청춘을 미련과 슬픔으로만 보낸 내가 너무 불쌍하더라. 그래서 이젠 고통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자초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었어.

그래서 내가 너무 밉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 날 사랑하려고.



두서없이 정말 하고싶은 말만 나불거려서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까 과연. 만약 있다면 고생했어 읽느라.


너도 나도 결과가 어떻든 행복한 2018년 마무리 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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