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삼년 전이었나
회사에서 나와 백수로 지낸지 사개월
나름 열심히 살겠다며 살을 정말 빡세게 빼고 있었어
그러다 보니 친구 만나는 것도 줄이게 되고 집에서 누구 하나 수다 떨 사람도 없어서
운동이나 하며 너무나 외롭게 지내고 있었지.
서점에나 가서 놀아볼까 하고 운동화를 직직 끌며 나온 어느날이었어.
어떤 되게 촌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 나한테 오더라구
그러더니 자기네가 무슨 심리학과 학생인데 심리테스트를 해달래.
지금같으면 아 이상하구나 생각했을텐데 그때 나는... 정말 심심했어ㅋㅋㅋㅋㅋ
그래서 옳거니 하고 당장하자고 너무 흔쾌하게 대답하니까 오히려 그 사람이 막 당황하는 거야.
그래도 종이 줘서 동그라미도 그리고 세모도 그리고 그러래
진짜 열심히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그렸어
검사 결과가 나오면 연락 준대서 핸드폰 번호까지 적어주고 왔어.
그러고 난 또 운동-집 운동-집 하면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
연락해준다더니 언제 오지??? 그런 생각도 하고 있으려니 며칠 뒤에 연락이 오더라고.
기뻐서 밝게 받았더니 그 사람이 또 엄청 당황을 해
무슨 자기네 선생님 모시고 온다길래 아 더 많이 와도 된다고
어서 만나자고 해서 약속을 잡았어.
카페에 갔는데 세 명이 와 있더라구.
되게 나이들어보이는 여자가 있어서 아 저 사람이 선생님인가보다 했지
그러면서 나의 우울감이 어떻고 막 내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는데
이야기를 진짜 너무 잘 들어주는거야. 난 신났지.
그래서 이 사람이 동그라미가 우울이고 뭐 벗어나려고 어쩌고 하는거
말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나를 알아주지 않는 회사 살쪘다고 욕하는 동료 직원 분하지만 나올수밖에 없었던 이유
운동만 하고 있는데 샐러리가 너무 맛이 없는 원인
왜 고기를 먹고 살을 빼면 안 될까 하는 최근의 고민
같은 걸 정말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나 진짜 너무 수다가 떨고 싶었거든
거의 두 달만에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너무 신이 났어ㅋㅋㅋㅋㅋ
그 사람은 처음엔 다시 막 세모 네모 이야기 하려다가
내가 신나서 막 떠들기 시작하니까 차츰 그냥 예...예...하며 듣더라고
나는 좀 더 떠들고 싶은데 삼십분 지나니까 일어나자더라고?
잠깐만요 하고 좀 더 떠들었어
그 다음엔 가방부터 들고 일어나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철 탄다길래 개찰구까지 같이 걸어가면서도
진짜 쉼없이 수다를 떨었어
어디 가는지 방향을 물어보니까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반대방향이라고 사라짐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집에 오니까 얼마나 수다를 떨었던지 입이 다 아프더라
그땐 너무 신이 나서 잘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신천지였던 거 같음...
분명 내 번호도 알고 있었을텐데
다시는 연락이 안 오더라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