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달려다가 너무 길어져서 글로 찐당
서울대 대나무숲에서 본 글이얌
우리 모두 최악의 날이 한 번씩은 있잖앜ㅋㅋㅋㅋㅋ 오늘 일진 진짜 더럽게 사납다 하는 날
그런 날은 그냥 기분 나빠서 씩씩대고 만나는 사람마다 불평에 한탄만 늘어놓기 일쑤인데
이 글 보고 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감탄스러워서 공유했던 글이야
다른 덬들은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며:)
오늘은 모든 게 꼬일대로 꼬인 날이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 버스 정보를 확인했는데, ‘1분 후’라고 적힌 이번 버스를 놓치면 2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원래는 배차간격이 6분 남짓한 버스였는데, 일이 생겼는지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헐레벌떡 나와보니, 타야했던 버스는 뒤꽁무니만 보인... 채 저기 앞 신호에 걸려 있었다.
얼른 뛰어가 버스 앞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아저씨는 안된다며 손을 흔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정류장으로 돌아와서 20분을 더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탔지만,
집-버스-버스-지하철-5513-학교 로 오는 길에 하나 같이 바로 바로 환승되는 게 없었다.
내가 등교길에 타는 모든 교통 수단을 바로 눈 앞에서 놓쳤다.
다행히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온 덕분에, 수업에는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수업 뒤에는 바로 과외 일정이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촉박했다.
수업을 다 듣고 나와서 자하연에서 밥을 먹으려고 보니 내가 예상했던 메뉴가 아니었다.
내가 본 것은 치즈돈가스였는데, 그건 점심 메뉴였다.
발길을 돌려 설입 주변 자주 가는 밥집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셔틀은 금방 왔지만, 내 바로 앞 사람까지만 앉아서 갈 수 있었고, 나는 그 버스의 첫 입석 손님이었다.
입구역에 내려서 밥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조금 애매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숨이 조금 헐떡거릴 때 쯤, 그 집 간판이 보였고,
’휴무’라고 적힌 종이가 문 앞에 붙어있는 것도 같이 눈에 들어왔다.
짜증이 나기보다는 신기했다.
‘오늘 무슨 날이긴 날인가봐’,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데 갈 곳도 별로 없어서 그냥 끼니를 거른 채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오늘따라 2호선에는 사람이 많았다.
가방이 무거워서 자리가 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내 앞에 앉아계신 분은 모든 정차역에서 주머니를 확인하고 짐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계셨다.
소지품을 잘 챙기지 못하는 내가 본 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수 차례 희망 고문을 당한채로 내려야 했다.
그 분은 결국 내가 내리는 역에서 같이 내리셨다.
역에서 나와 원래 과외하던 스터디센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학생한테 문자가 온걸 그제서야 봤다.
원래 과외를 하던 곳에 방이 없어서, 다른 센터에서 해야 될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근처겠거니, 하면서 지도를 봤는데 지하철 한 정거장하고도 한 블럭 차이였다.
그래, 이래야 ‘오늘’답지.
재밌다, 재밌어.
같은 호선이라 환승도 안 될 것 같아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바로 옆 도로는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지나다니는 버스들도 모두 만원.
저녁 7시에 행정관.자연대입구에서 타는 5511과 비슷한 정도로, 도로를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버스들이 사람들로 가득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버스 손잡이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짜증은 보이지 않았다.
해맑게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 그 미어터지는 버스 안에서 집중하며 책을 읽고 있는 사람, 멍-하니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체념인지 안도일지 모를 평화로움 마저 풍기고 있었다.
하루 하루 고되고 아프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 사람들은 나에게 답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삶이야. 아니, 너의 오늘보다 더한 것이 '진짜 삶'이야."
오늘 내가 맛본 불운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이라고 불리우는 것일수도, 혹은 어쩌면 행운이라고 불리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것으로 불평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나의 꼬인 하루는 매우 특별했다.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