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난 모 전문직 동기모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회계사라고 할께. (실제로 회계사는 아니지만 오쁭될까봐 예를 들어!!)
결혼적령기에 아직 인연을 못 만난 나는 개중에서 그 사람이 제일 쓸만하다 여기고 관심있게 봤다.
안 그럴 것 같은 느낌인데 의외로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오다보니까 친분을 쌓을 기회도 많았고.
그 남자도 내가 자길 관심있게 생각하는 걸 아는 모양인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동기모임 파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나한테 따로 연락을 취해서는 둘이서 따로 보자는거야.
그렇게 3차까지 술먹고 노래방 가고 새벽까지 또 술먹이고.
그러면서 팔짱 끼고 어깨에 기대는 등의 가벼운 스킨십이 이어지고.
집에 갈 때 택시타면서 손 꼭 붙잡고 내 어깨에 기대고.
나는 이렇게 우리 시작하는 거냐고 나직하게 물었지.
근데 거기서 갑자기 이 인간이 찬물이라도 맞은듯 현타를 느꼈는지, 급 술깨서 딱 잘라 말하더라.
"아니 우린 그냥 재미나게 논거다, 너나 나나 직장 생활 하면서 서로 설렐 일 없이 그냥 따분한 일상을 보내지 않았냐. 우린 그냥 일상을 깨고 하루 즐겁게 보낸거다.
나는 그리고 이렇게 술먹은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하더니 어쨌든 집에 갔을 때 전화는 해주더라.
처음에는 난 이 남자가 신중한 사람인 줄 알았어. 술먹은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다니 신중한 사람인 것 같다며 주변 친구들도 그렇게 조언을 주고.
일단 "우린 시작하는게 아니라 아직은 즐긴 것 뿐이다"라는 말이 좀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는 가볍게 연락을 서로 하면 좋을텐데,
그렇게 한 번 전화 준 다음에는 아예 연락이 없대?
한달간.
그래서 난 제대로 엔조이 당했다 생각하고 비참해졌어. 안그래도 동갑내기 친구들 죄다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 마당에 나만 남친조차도 몇년 간 안 생기니까 굉장히 불안한데 말야.
이 나이 먹고서까지 누군가의 심심풀이 땅콩 취급을 받은 것 같고.
그리고 한달 후에 또 동기모임이 생겼어.
이 때 카톡 사진 일부러 남친 있는 척 해뒀고, 주변에 남친 있는 것처럼 말을 흘렸어.
그 남자는 안 왔지만 동기들을 통해서 뭔 말을 들었는지,
한 달간 연락도 안 하던 인간이 "원덬아 잘 지내지? 어제는 내가 회사일 때문에 못 갔네~다음 번에는 꼭 보는 걸로~" 이런 식으로 카톡을 보냄.
난 딱히 기분 나쁜 척도, 그렇다고 오랜만에 반가운 척도 아닌 "아^^네^^ 다음 번에는 꼭 봐요^^" 이렇게 사무적으로만 남겼어.
(참고로 3차까지 술마실 때부터 말 놓기 시작했었음)
그리고는 자기가 회사일로 바빴다는 운을 띄우더라.
아무래도 한달간 연락 없었던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핑계거리를 찾아서 내게 이해를 구하고 싶었겠지.
난 또 여기서 사무적으로 "안타깝네요... ㅠ" 이렇게만 보내고.
그 다음에는 아예 전화가 왔어.
뭔가 내게 아쉬운 게 있는 모양이었겠지만 난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는 한 30분 뒤에야
"회계사님, 무슨 일 있어요? 전화하셨네요" 이렇게 거리를 둬서 답했음
(참고로 원래 '오빠'라는 호칭을 쓰고 '회계사님'이라고는 안 불렀음)
내가 진짜 남친이 생겼다면 빅엿이었을텐데
남친이 아니라 남친 생긴 척이었기 때문에 스몰엿으로 끝난 나의 얘기 ㅋㅋ
그리고 여기서부터 질문이 있어!!!
내가 그 남자에게 딱히 절실하지는 않았지만 남 주기는 아까운, 그런 계륵같은 존재였나.
난 그렇게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나를 이렇게밖에 여기는 남자랑은 굳이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밀어내었는데.
근데 내가 덬들에게 묻고 싶은 건.
이런 식으로 인연을 칼같이 정리한 내가 과연 잘한건지 아닌건지 궁금해.
사실 내가 생각한것처럼 그 사람이 날 어장의 물고기 취급한게 아니라
사람이 여자 대하는게 서툴고 연애에 서툴다 보니 이렇게 날 미적지근하게 대한걸수도 있잖아?
남자들이 호감 느낀 여자에게 죄다 직빵으로 들이대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말야. 이것도 다 사람 나름이고.
지도 내일모레면 마흔인 나이에 무작정 열번 찍는게 심한 리스크를 남기는 걸 다 아는 거니까 소심하게 찔러본 걸수도 있을거고.
그래서 그 남자가 확신을 갖고 내게 직접적으로 표현을 할 때까지 내가 한 번이라도 기회를 줘야 했던게 맞는걸까...
나도 이런 식으로 남자가 조금만 실수해도 다시 기회를 안 주고 죄다 쳐내기만 해서 연애를 못하는 건가...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일단 나는 한달간 연락이 없었던 그 때 이 남자에게 느낀 확신도 매력도 죄다 바닥으로 떨어져버렸거든.
이 남자가 이성적으로 끌렸다기보다는, 개중에 조건이 가장 괜찮으니까 만나보면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이 남자의 이런 태도를 보니까 있던 호감도 죄다 날아가 버리고.
그래서 기회조차 주는 것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덬들 생각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