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사 공부하면서 알게된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보다는 견한론자에 가까웠음 실제로 학계에서도 그런 해석이 있어
같이 정한론을 주장했다고 알려진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국무회의에서 조선에 즉각 군대를 파견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이고 다카모리만이 "지금껏 조선과의 일에서 외무성 하급 관리를 보내는 등 대충 처리했던 것이 있지 않느냐, 먼저 군대를 파견할 것이 아니라 대사를 조선에 파견해서 대화하는 것이 먼저다, 나를 대사로 파견해라, 내가 조선에 갔다가 죽는다면 그때 군대를 보내도 늦지 않다" 이런 식으로 의견을 냈어
당시 국무회의 책임자였던 태정 대신 산조 사네토미는 그럼 그 전권 대사를 파견할때 호위 병력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는 그것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예의가 아니니 무사의 예복을 갖추고 예의를 갖춰 가야한다고 반대했음...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의 조선 견사 건의를 으깨버린 이와쿠라 토모미의 서한이 공개됐는데 그 안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그(사이고)는 처음부터 결코 정한은 이런 것이 아니고, 사절을 보내 인사를 하고도 상대방이 무례하게 답했다면 그때 내국의 준비를 몇년간 정돈하고 검토할 문제라고 합니다" 라는 구절이 있어
이거 때문에 학계 일각에선 조선 파병에 반대하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자가 맞았던 것일까 하고 의견이 갈리는거 ㅇㅇ 물론 사이고 다카모리는 조선 파병을 완전히 반대한건 아니란 해석도 있음 "내가 조선에 사절로 가서 죽으면 그때 군대를 보내라"는 말이 결국 군대를 보내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해석... 계속 자기가 죽으면 그때 보내도 늦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데 사이고는 그냥 조선에서 가서 죽으려던게 아니냐는 말도 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한 해석은 없어 그때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주장했냐 아님 사후에 그걸 뒤집어썼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역사적 이해관계도 있기 때문에 ㅇㅇ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가 가고시마에서 유명한 건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물이었다는 것보다는... 음 이와쿠라가 최종적으로 채택됐던 사이고의 조선 파견을 아까 언급한 태정 대신이던 센조가 쓰러진 이후에 자기 멋대로 조선 파견을 중단시키고 일단 파병하자던 자기 의견을 밀어붙였어
그 취소된 사안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참의원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가고시마로 돌아가서 개인적으로 무사 학교를 열었어 가고시마에서 사이고가 유명한 이유라면 마을에서 출세한 인물+하야 후 고향에 내려와서 학교를 지었다는 거 그리고 서남전쟁에서 패배를 예상하고 할복해 죽었다는 거(라스트 사무라이 영화) 이정도...
같이 정한론을 주장했다고 알려진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국무회의에서 조선에 즉각 군대를 파견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이고 다카모리만이 "지금껏 조선과의 일에서 외무성 하급 관리를 보내는 등 대충 처리했던 것이 있지 않느냐, 먼저 군대를 파견할 것이 아니라 대사를 조선에 파견해서 대화하는 것이 먼저다, 나를 대사로 파견해라, 내가 조선에 갔다가 죽는다면 그때 군대를 보내도 늦지 않다" 이런 식으로 의견을 냈어
당시 국무회의 책임자였던 태정 대신 산조 사네토미는 그럼 그 전권 대사를 파견할때 호위 병력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는 그것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예의가 아니니 무사의 예복을 갖추고 예의를 갖춰 가야한다고 반대했음...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의 조선 견사 건의를 으깨버린 이와쿠라 토모미의 서한이 공개됐는데 그 안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그(사이고)는 처음부터 결코 정한은 이런 것이 아니고, 사절을 보내 인사를 하고도 상대방이 무례하게 답했다면 그때 내국의 준비를 몇년간 정돈하고 검토할 문제라고 합니다" 라는 구절이 있어
이거 때문에 학계 일각에선 조선 파병에 반대하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자가 맞았던 것일까 하고 의견이 갈리는거 ㅇㅇ 물론 사이고 다카모리는 조선 파병을 완전히 반대한건 아니란 해석도 있음 "내가 조선에 사절로 가서 죽으면 그때 군대를 보내라"는 말이 결국 군대를 보내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해석... 계속 자기가 죽으면 그때 보내도 늦지 않다는 말을 했다는데 사이고는 그냥 조선에서 가서 죽으려던게 아니냐는 말도 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한 해석은 없어 그때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주장했냐 아님 사후에 그걸 뒤집어썼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역사적 이해관계도 있기 때문에 ㅇㅇ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가 가고시마에서 유명한 건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물이었다는 것보다는... 음 이와쿠라가 최종적으로 채택됐던 사이고의 조선 파견을 아까 언급한 태정 대신이던 센조가 쓰러진 이후에 자기 멋대로 조선 파견을 중단시키고 일단 파병하자던 자기 의견을 밀어붙였어
그 취소된 사안에 대해서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참의원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가고시마로 돌아가서 개인적으로 무사 학교를 열었어 가고시마에서 사이고가 유명한 이유라면 마을에서 출세한 인물+하야 후 고향에 내려와서 학교를 지었다는 거 그리고 서남전쟁에서 패배를 예상하고 할복해 죽었다는 거(라스트 사무라이 영화) 이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