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고교 동창 박찬근 “정성으로 올린 것”…고추 의미는 설명 안 해
송영길 “무슨 고사 지낸 듯…5·18 묘지 싸구려로 소비”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51664

기호 2번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를 뜻한 것일까. 아니면 광주 영령의 도움을 구하는 주술적 소품이었을까.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합장묘 앞에 홍고추 두 개와 쌈장으로 보이는 붉은 장, 정청래 후보 측 최고위원 후보들의 홍보물을 늘어놓은 사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언론인 고일석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확산했다. 고씨는 사진과 함께 “윤상원 열사여, 광주 영령들이시여. 우리 민주당을 굽어살피소서”라고 적었다. 이어 박찬근씨를 태그하고 ‘참배’, ‘국립5·18민주묘지’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사진에는 기호 1번 최민희, 5번 한민수, 6번 이성윤 최고위원 후보 홍보물과 종이컵 두 개, 홍삼젤리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작은 사각 그릇에 담긴 붉은 장에는 홍고추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사진에 홍보물이 놓인 세 사람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팀 정청래’로 묶인 최고위원 후보들이다. 정 후보의 기호는 2번이다. 홍보물이 없는 정 후보를 홍고추 두 개로 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는 기호 1번 송영길, 2번 정청래, 3번 김민석 후보가 출마했다.
사진을 찍고 음식을 놓은 것으로 보이는 박씨는 정 후보와 오랜 인연이 있는 대전지역 인사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전 중구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상식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정 후보와는 대전 보문고 29회 동창이다. 박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보문고 29회장’으로 소개하며 정 후보를 “친구”라고 불렀다. 정 후보가 대전을 방문했을 때는 모교 앞에 “힘내라 친구야”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박씨의 페이스북에는 최근 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시물이 잇달아 올라왔다. “알았어 정청래 찍을게”의 줄임말인 ‘알정찍’을 반복해 사용하고, “정청래 당대표 연임을 부처님 전에 기원합니다”라는 글도 올렸다. 최민희·한민수·이성윤 후보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다만 박씨가 정 후보 공식 캠프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묘역 방문을 정 후보나 캠프가 사전에 알았거나 관여했다는 근거도 현재까지는 없다.
사진이 확산하자 “묘소에서 선거운동을 한 것 아니냐”, “고추 두 개는 무슨 뜻이냐”, “주술 의식처럼 보인다”는 항의가 이어졌다. 고씨가 올린 원문은 12일 현재 그의 페이스북에서 확인되지 않아 논란 뒤 내린 것으로 보인다. 캡처 사진과 다른 계정이 공유한 게시물은 남아 있다.
박찬근씨의 페이스북에도 한 누리꾼이 사진을 올리고 “고추장·빨간 고추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씨는 답글에서 “제사나 묘지에서 지내는 시제, 성묘 음식에는 빨간 고추나 고춧가루를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붉은색이 귀신을 쫓는 양기의 상징이어서 제례음식에서 피한다는 설명을 적었다.
박씨는 “제가 부족한 면이 많다. 전 정성으로 올린 건데 많이 화가 나신 모양”면서도 “개인적으로 화가 나신 것에 대해선 사과드린다”고 했다. 자신이 음식을 올렸다는 사실은 인정한 셈이지만, 왜 하필 붉은 장에 홍고추 두 개를 꽂았는지, 두 개가 기호 2번 정 후보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홍삼젤리를 올린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홍고추에는 실제 주술적 의미가 있을까. 전통 민속에서 붉은 고추는 일반적으로 귀신을 불러들이기보다 부정과 잡귀를 막는 벽사물에 가깝다. 아이가 태어난 집의 금줄에 붉은 고추와 숯을 끼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추와 숯은 부정을 막고 정화시키며,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막는 표시로 사용됐다.
제사음식에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다는 통념도 여기서 나왔다. 조상신이 먹는 제사음식에는 벽사의 의미가 있는 붉은 고추를 피한다는 민간 속설 때문에 고추를 넣지 않은 흰 나박김치를 올리는 사례가 많다. 지역과 집안마다 차이는 있지만, 제례음식에서 붉고 자극적인 양념을 피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관습이다.
전통에 비춰보면 “광주 영령들이시여, 굽어살피소서”라고 혼령의 도움을 청하면서 귀신을 쫓는 상징인 홍고추를 올린 배치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쌈장이나 고추장에 홍고추 두 개를 수직으로 꽂아놓는 방식 역시 확인되는 정형화된 제례나 무속 의식은 아니다. 홍삼젤리도 전통 제물이나 무속의례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물품으로 보기 어렵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황만 놓고 보면 ‘주술’이라기보다 기호 2번 정 후보를 암시한 즉흥적인 정치 퍼포먼스였을 가능성이 크다. 홍고추나 홍삼젤리에 공통적인 붉은색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정 후보가 강조한 ‘개혁’이미지를 담은 것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제기된 비판의 초점도 주술 여부보다는 5·18 열사의 묘소를 당내 선거에 이용한 행위가 적절했느냐에 맞춰졌다. “열사를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원처럼 취급했다”, “추모공간을 정치적 소원을 비는 장소로 만들었다”, “유족에게 먼저 허락을 구했어야 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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